진주가을문예 1995년 시작 24회 맞아, 옛 진주신문에서 출발

올해로 24회를 맞은 ‘진주가을문예’ 당선자가 가려졌다. 시 분야에서는 <경야(經夜)> 외 9편을 낸 김세희 시인(46, 김해), 소설 분야에서는 중편 <런 웨이>를 낸 오성은 소설가(34, 부산)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시 분야 당선자에게는 5백만 원, 소설 분야 당선자에게는 천만 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시상식은 12월15일 오후4시 진주 ‘현장아트홀’에서 열린다.

 

▲ 진주가을문예 당선자인 오성은 소설가(왼쪽)와 김세희 시인(오른쪽)

올해 진주가을문예는 지난 10월31일 공모를 마감했다. 시 분야는 180명(1278편), 소설 분야는 116명(210편)이 응모했다. 심사는 예심과 본심 과정을 거쳤다. 시는 송찬호 시인이 본심, 김륭 시인과 임재정 시인이 예심을 맡았다. 소설은 백가흠 소설가가 본심, 원시림 소설가와 정용준 소설가가 예심을 봤다.

송찬호 시인은 당선작 <경야> 에 “섬세한 언어의 결을 갖고 있다. 이런 정련된 언어는 죽음으로 다가가는 엄숙한 삶의 제의를 묘사한 ‘아빠, 우린 서로를 지나가야 하잖아요 / 일요일에 올게요 못다 쓴/ 당신 얼굴 가지러’와 같은 빼어난 시구를 탄생케 한다. 언어와 시적 대상을 의도적으로 불일치 시켜 사물을 새롭게 탐구하고 세계를 낮설게 환기하는 감각도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백가흠 소설가는 당선작에 <런 웨이>에“작가의 능수능란한 창작솜씨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중편임에도 불구 가독성이 뛰어났다. 많은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임무를 저버리지 않고 활발히 움직이고 말하며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얽히고설켰다. 작가의 플롯 장악령이 훌륭할 뿐 아니라 작품이 치밀하게 준비된 소설임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평가했다.

당선자들은 소감문에서 기쁨과 각오를 나타냈다. 김세희 당선자는 “아빠가 돌아가시기까지를 보며 시 <경야>를 썼다.”며 “주시는 상은 매일을 마지막처럼 최고의 노력을 하라고, 최고의 시를 뱉어 내라고 하는 견적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성은 당선자는 “함께 소설을 공부했던 아내는 (수상소식에) 울먹이며 전화를 받았다. 소설은 우리를 연결하는 끈”이라며 “비로소 무대에 선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나의 첫 번째 런웨이”라고 말했다.

김장하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은 “저만치서 찬 겨울바람이 다가와 우리의 속살을 헤집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훈훈하다. 그것은 진주가을문예 새가족을 맞이하기 때문”이라며 “진주가을문예가 올해 스물 네 번째를 맞았다. 공모와 심사과정을 거쳐 참신하고 의욕넘치는 새 시인과 소설가를 뽑았다. 큰 박수로 격려해주시면 고맙겠다”고 했다.

한편 ‘진주가을문예’는 남성문화재단이 1995년 기금을 마련해 옛 <진주신문>에서 하다 지금은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가 전국에 걸쳐 신인 공모를 벌여 운영하고 있다.

 

■ 소설 당선작 <런 웨이> 줄거리

세상에 없는 화장을 해내려는 유미는 자신의 얼굴을 캔버스 삼아 붓을 드는 화가와 다름없다. 굴지의 화장품 회사를 마다하고 들어간 모델 에이전시에서 자유분방한 작업방식으로 새 프로젝트를 준비하는데 그녀가 원하는 모델은 낙타처럼 걷는 사내다. 유미의 지목을 받은 ‘나’는 고된 훈련으로 차차 모델로 성장해 나가지만 쇼가 성사되기 직전 모든 것이 무너진다. 모델 동기인 창기의 권유로 호주에서 농장생활을 시작한 ‘나’는 그곳에서 마호와 나오를 만나게 되고 일상의 즐거움에 취한다. 하지만 달콤함도 잠시, 낯선 타지의 백화점에서 유미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녀의 자살기도로 혼란스러운 여정에 휘말린다. 사막을 향해 달리는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그들의 런웨이는 비로소 시작된다.

 

■ 시 당선작 <경야> 전문

일요일에 왔으니까요

일요일에 가는 게 어때요 아무 부담 없지 않을까요

틀니조차 걸 수 없다고요 입 벌려 억억거릴 때

차곡차곡 다져진 미련, 내가 다 봤어요

꿀꺽 삼켜요 그거

 

똥이 질면 질다고 때린대요 볼기를

되면 되다고 때린대요

볼기짝이 원숭이 같을 거라고요

요양보호사를 원망하나 봐요 그러지 마세요

손은 잡고 가야 하나요 놓고 가야 하나요

 

팔다리가 투명해지고요

껍데기를 나온 껍데기처럼 쫄깃해 보였어요

뭐라도 씹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시계를 보다가요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하루살이 한 마리 눌러 죽이고 돌아 나왔어요

일요일에 다시 올게요

침대보다 더 납작해진 사람들이

딱딱한 제 그림자에 등을 기대고 있어요

 

당신은 나를 얼마나 기다렸던가요

나는 당신을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부채질중이에요 잘 타버리라고요

 

아빠, 우린 서로를 지나가야 하잖아요

일요일에 올 게요 못다 쓴

당신 얼굴 가지러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