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미발표 시 '진주라는 곳' 공개

고 허수경 시인을 기리기 위한 추모모임이 27일 저녁 7시 진주문고 여서재(평거점)에서 열린다. 독일에 살던 허수경 시인은 지난 10월3일 암 투병 끝에 별세한 바 있다. 그는 진주가 낳은 대표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날 모임에서는 고 허수경 시인의 모습을 기억하는 지인과 독자가 모여 허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고 고인과의 일화를 나눈다. 고인의 시 세계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고인의 시 낭송, 독자가 바라본 고인의 시, 고인과의 추억나누기,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묵념 등이 이어진다.

특히 이날 모임에서는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가 소장한 고인의 미발표 시 '진주라는 곳'과 고인의 책이 함께 전시된다. 고인은 생전 '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라는 부제를 달아 자신의 시를 진주 사투리 버전으로 다시 써 나란히 실을 만큼 고향과 모국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고인은 지난 10월 3일 암투병 끝에 별세, 같은 달 27일 독일 뮌스턴 외곽에서 수목장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유해는 국내로 송환되지 않았다. 이에 그와 그의 시를 기억하기 위해 오는 27일 진주문고 주최, 경상대학교 출판부, 지역쓰담 주관으로 이번 모임을 열게 됐다.

 

▲ 고 허수경 시인의 추모모임이 27일 저녁 7시 진주문고 여서재(평거점)에서 열린다.

<진주라는 곳>

진주라는 곳

내가 태어나 자란 곳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학과 고등학교를 다니고

그리고 대학을 다니고

아버지를 여읜 곳

 

진주라는 곳

거리에 여자아이들이 몰려다니며 깔깔거리는 곳

거리에 사내아이들이 몰려다니며 딱지를 놓던 곳

갈증을 풀 길 없는 청년들은 작은 술집에 앉아

먼 세계의 빛을 이야기 하던 곳

 

작은 강이 흐르고

강 옆에는 대숲이 있고

늙어가는 여자들과 남자들이 대숲 아래에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곳

 

뒤돌아보면 긴 긴 장강 같은 지나간 시간이 있고

다시 뒤돌아보면 장강을 이루던 시간이

신화 자체가 되는 곳

 

눈물 많은 시인이 있던 곳

빛 많은 사람이 있는 곳

그 안에 작은 서점 하나 사람을 모으는 집을 짓는 곳

 

대륙 두 개를 넘어 독일에서 나는 그곳을 생각한다.

 

어스름한 빛 하나 작은 집을 내 마음에 짓는다

오 진주라는 곳

 

고 허수경 시인은 1964년 진주에서 태어나 경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등단 이듬해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와 1992년 두 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집>을 발표한 후 유학길에 올랐다. 독일에서 고대동방고고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고 현지인과 결혼, 줄곧 독일 생활을 해왔다.

고인은 독일 생활 중에도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2001년 세 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2005년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2011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2016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차례로 발표, 심화 발전하는 시 세계를 보여주었다. 동서문학상, 전숙희문학상, 이육사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고인은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 <너 없이 걸었다>와 장편소설 <박하>, <아틀란티스야, 잘 가>, <모래도시>, 동화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마루호리의 비밀>을 발표했으며, <슬픈 란돌린>,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그림형제 동화집> 등을 번역하기도 했다.

한편 진주문고와 경상대 출판부, '지역쓰담'은 앞으로도 허수경 시인을 기억하는 일을 계속해나갈 예정이다. 이날 모임에서 판매된 시집의 수익금과 모금액은 전액 추모기금으로 조성, 활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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