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33년간 지역서점을 지켜온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

인터넷 서점의 발전으로 동네책방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하지만, 33년간 한결 같은 모습으로 경남 진주에서 서점을 운영해온 인물이 있다. 그는 많은 서점이 사라지는 과정에서도 매번 위기를 극복하며 이 서점을 진주의 대표 서점으로 자리잡게 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이다.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는 1986년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전문적으로 다루던 ‘개척서림’으로 서점업을 시작했다. 그는 1988년 ‘책마을’을 거쳐 1992년부터 ‘진주문고’를 운영해왔다. 진주문고는 진주시 평안동 일대에서 운영되다 2000년대 들어 진주 평거점, 엠비씨네점 두 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진주 평거점은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고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태훈 대표는 “고객들의 변해가는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그는 리모델링을 통해 책만 들어서있던 공간에 어린이, 청소년 공간을 만들고 그와 함께 인문학 강좌가 거의 매일 열리는 ‘여서재’를 도입했다.

여서재는 책에 깃든 콘텐츠를 강의로 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역민들의 적지 않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간 여서재에는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 이 시대의 어른이라 불리는 채현국 선생,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 철학자 허경, 고음악연구가 박창호 등 여러 사람이 다녀가기도 했다.

여 대표는 지난 9일 ‘서점의 날’을 맞아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수상 이유는 ‘서점업에 종사하며 서점발전 및 활성화에 기여하고, 서점을 문화공간과 연계해 독서문화 활성화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여 대표는 이 같은 수상 소식에도 이를 알리는 것에는 손사래를 쳤다. 겸양의 미덕이다.

<단디뉴스>는 12일 진주문고를 방문해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에게 진주문고와 그가 운영하는 출판사 ‘펄북스’의 현재와 미래를 전해 듣고, 또 지역서점, 지역출판사가 중요한 이유를 물어봤다. “진주문고는 시민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인터뷰 중간중간 “소박하게 하자”고 강조하던 그는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을까?

 

▲ 12일 진주문고 5층에서 단디뉴스와 인터뷰를 진행 중인 여태훈 대표

다음은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와의 일문일답.

- 1986년 개척서림으로 출발해, 지금까지 서점업을 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밥벌이지 뭐(웃음), 누구나 노동을 해야 하는데, 노동의 방편으로 서점업을 선택한 거다. 노동을 해야 그에 맞는 대가가 있는 법이다. 장애인이다 보니 공무원, 자영업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근데 공부하기는 싫었다(웃음). 책을 좋아하기도 했고, 시대상황도 서점을 택하게 했다. 암울했던 독재시대, 모든 사람이 열혈 청년, 민주투사였고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붐도 크게 일었다. 당시 개척서림을 했던 경상대학교 앞에는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이 두 개 있었다. 다른 대학가 앞도 마찬가지였다. 적으면 둘 셋, 많으면 5개 정도.

- 인터넷 서점이 등장하면서 청구서림 등 많은 동네서점이 문을 닫았다. 진주문고는 살아남았고 오히려 규모가 커졌다. 비결같은 게 있을까?

“33년 전에는 진주에 60개 이상의 동네서점이 있었다. 지금은 15개 정도 남았다. 청구서림도 인터넷 서점이 출연하던 시기에 문을 닫은 걸로 안다. 아무래도 절박했다. 서점이 아니면 제2의 직업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나이도 많이 들었고, 신체도 그렇고 약점이 많지 않나.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서점을 확장했다. 앞만 보고 갈 수밖에 없었다. 전국적으로 서점이 자꾸 대형화, 고급화되는 데 예외일 수는 없지 않나. 고객의 눈높이, 책에 대한 질적인 접근, 서점 공간에 대한 눈높이가 달라져 있었다. 거기에 맞추려 확장을 했고,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서점의 질적 변화를 시도해 온 거다.

- 그렇게 해도 실패하는 곳이 적지 않다.

“한 걸음 정도는 우리가 앞서 나갔던 것 같다.”

- 서점을 운영하며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IMF 때 참 힘들었다. 그리고 리먼브라더스 사태(2008년쯤) 때도 서점이 휘청거렸다. 사실 지금이 3번째 위기다. 이전의 두 위기와는 규모나 질이 다른 위기다. 이전까지는 내부적으로 단단히 하면 됐는데 지금은 색다르다. 인구절벽과 함께 인터넷 서점의 도약, 대형 기업형 서점의 범람, 거기다 영상이 주류인 세대가 됐다. 매출 하강곡선이 심한 상황이다. 이제 서점은 일상의 공간이 아닌 특별한 공간이 돼야 한다. 해답을 찾고자 리모델링을 하게 된 거다.

- 평거점이 리모델링하며 인문학 강좌가 열리는 여서재가 도입됐다.

“서점은 책이 중심이다. 그런데 책을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최근 리모델링을 하며 변화를 줬지만 책을 뺄 수는 없었다. 책을 그대로 두면서 고객이 요구하는 눈높이에 맞추려 했다. 공간을 좀 더 모던하고 고급스럽게 바꿨다. 그러다보니 고객 요구에 따라 공간을 늘릴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포인트를 둔 곳 중 하나가 여서재다. 책을 팔지만, 책 속의 콘텐츠를 강의를 통해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다. 여서재는 한 달 내내 불이 켜진다. 매일 저녁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문화프로그램의 향연이 열리는 곳이다.”

두 번째로는 지역민의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역 콘텐츠관을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진주지역에서 만들어진 수제 아트 작품을 전시, 판매 한다. 또 진주관련 도서를 판매한다. 반응이 상당히 좋다. 진주문고에 와야만 볼 수 있기 때문일 거다. 평거점 1층에 작은 카페도 만들었다. 꼭 책을 사지 않더라도 책이 품어내는 향기에 젖어 차 한 잔들고 서점을 어슬렁거리며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공간을 확자앟며 어린이들이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청소년 공간도 넓혔고, 3층에 의자를 촘촘히 배치해 거기서 책을 볼 수 있게 했다.“

 

▲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사진 = 경남도민일보)

- 여서재는 등장과 함께 꽤 유명세를 탔다. 좋은 강의를 볼 수 있으니. 한데 진주에서는 좋은 강사를 초청하는 데 어려움이 좀 있지 않나?

“외부강사 섭외에 큰 어려움은 없다. 진주문고가 그간 해온 여러 프로그램을 강사가 신뢰하기 때문이다. 강사들은 방문을 요청하면 호의적이다. 다만 여서재를 운영함에 있어 경제적인 어려움은 따른다. 진주문고가 지역에 있다 보니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어 좋은 강의를 진행하기 위해 과다한 경비가 지출된다. 이 때문에 현재 여서재는 모든 프로그램을 유료로 진행한다. 최소한의 유료화이다. 초청되는 강사들에게 강의에 합당한 대가를 주기 위해서다. 사실 여서재에는 전담직원이 2명 있다. 이분들 월급도 줘야한다. 일단은 내년 상반기가지 여서재를 재미있게 운영해보자는 계획이다.”

- 그간 특별한 강사가 있었나?

“최근 온 김형민 작가부터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채현국 선생, 공지영 작가, 철학자 전호근, 허경 씨 등 너무 많다. 좋은 영향력을 가진 분들이 많이 왔다.

- 엠비씨네점도 리모델링 중인 걸로 안다. 어떤 모습을 선보일건가?

“한 달 간 부분 리모델링을 진행해 현재 부분 가동 중이다. 하루 9시간 정도만. 고객의 요구에 맞춰 리모델링했다. 서점이면서 도서관 역할을 하도록 긴 테이블을 넣었고, 책도 일반 진열방식에서 존(Zone)방식으로 바꾸었다.”

- 평거점, 엠비씨네점 외에도 혹시 분점을 열 계획이 있나?

“지금 있는 2개점을 잘 지키려면 확장을 할 수 밖에 없다. 그간 충무공동에서 단골고객들의 요청이 들어왔다. 충무공동에도 분점을 내달라고. 그런데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 책방을 해서는 임대비가 감당이 안 된다. 그래도 자주 가보고 있다. 때가 되면 충무공동 시민들에게도 진주문고의 책을 보여주고 싶다. 도시 하나가 형성되려면 많은 인프라가 필요하다. 서점은 공간 인프라 가운데 단연 최고다. 남녀노소 누구나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교양과 지식도 쌓을 수 있다. 청소년들에게 안전하게 시간을 보낼 세이프존 역할도 한다. 이왕 인터뷰를 하는 마당에 좋은 공간이 비어 있다면 연락을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웃음).”

- 펄북스라는 출판사도 운영하는 걸로 안다.

“4년 정도 됐다. 인구 30만이 넘는 도시에 우리 이야기를 책으로 담아내는 그런 출판사가 있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또 최근 책들의 순환기간이 너무 짧아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너무 빨리 품절되고 절판되니까. 그래서 품절되고 절판된 책 가운데 좋은 책을 살려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책을 파는 것에 더해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간 23권의 책을 냈다. 11월, 12월에 2건의 책이 더 나올 거다. 사실 힘든 상황이다. 적자의 늪을 헤어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가능성을 봤다. 우리 책 가운데 7권 정도가 세종도서를 비롯해 다른 사업들에 당선됐다. 그런 데서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 펄북스가 낸 책 중에 좋은 책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전부 다 좋은 책이다(웃음). 그 가운데 첫 번째가 박남준 시인의 ‘중독자’라는 시집이다. 처음 낸 책이라 애정이 간다. 두 번째는 단편소설집 ‘그 산, 그 사람, 그 개’이다.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세 번째는 최근 나온 ‘앙코르 인문기행’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앙코르와트와 관련된 끝장판 성격의 책이랄까. 물론 우리가 낸 모든 책이 다 좋다(웃음)”

 

▲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사진 = 경남도민일보)

- 지역서점, 지역출판이 중요한 이유가 뭘까?

“한국적 상황에서 봐야 한다. 소위 한국에는 딱 두 개의 도시가 있다고 한다. 서울, 그리고 그 외의 도시. 대학도 마찬가지다. 인 서울 대학과 그 외의 대학. 모든게 서울에 집중돼 있다. 지역은 식민화됐다. 지역민이 지역의 소리를 스스로 내야 한다. 지역민 외에는 어느 누구도 우리 지역의 삶을 이해하려는 관심이 없다. 애정도 없고. 지역을 위해 지역민이 나서야 한다. 나는 그간 책으로 삶을 버텨왔다. 그럼 책으로 뭔가를 해야 한다. 지역에서 작은 역할을 찾는 것, 또 하는 것. 그래서 책과 출판에 집착하는 거다.

- 책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책을 한 마디로 뭐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책은 지식, 지혜의 보고라고도 하고 또 다른 자신이라는 해석도 해본다. 책에는 다른 누군가의 삶이 닮겨 있지 않나. 그런데 책방 주인에게는 책방이 뭔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웃음)?

- 그럼 책방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지금 인터뷰를 진행하는 차실 앞에 창문이 있다. 책방을 세상을 내다보는 창과 같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두 번째는 더 없이 좋은 학교다. 나는 세상의 이치를 학교가 아닌 책방에서, 책을 통해 배웠다. 세 번째는 만남의 장이다. 따르고 싶은 스승, 만나고 싶은 후배, 이런 분들을 다 서점에서 만났다. 제 관계의 대부분, 90% 정도가 서점에서 맺어진 사람이다. 저에게 서점은 더 없이 좋은 만남, 관계의 장이었다”

- 33년간 지역에서 서점을 해왔으니 지역민에게 드릴 말씀도 많을 것 같다.

“청년기부터 중년까지 서점업을 했다. 한 때는 제가 잘나서, 똑똑해서 서점이 지금까지 운영돼 온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저는 단지 책을 판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니 책을 판 것보다 지역민과의 관계를 쌓아온 세월이었다. 지역민들은 책을 사면서 내게 ‘관계’도 덤으로 줬다. 반면 나는 ‘관계’를 우선 사고, 책을 덤으로 팔았더라(웃음). 시민들과의 관계가 지금까지 진주문고를 운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다.

적어도 책동네(서점업 종사자들을 그렇게 부름)에서 진주는 특별한 곳이다. 우리가 작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33년 이라는 시간을 확장과 부침을 거듭하며 살아남았다. 이건 모두 지역과 지역민과의 관계에 기대어서였다. 지금도 하루 80~90%의 책은 단골고객들이 사가신다. 3대에 걸쳐 진주문고를 오시는 분들도 생겨나고 있다. 진주문고를 지켜주는 힘이다. 그것을 잊지 않고 감사하려 한다. 잊지 않으면 잃지도 않는다고 한다. 진주시민들이 잃지 않도록 이 터를 지키겠다. 끝까지.

한편으로는 부탁도 드린다. 진주문고뿐만 아니라 동네 책방들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해주시라. 약간 불편하고 손해보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우리 지역을 살아갈 주민들, 우리 이웃을 위해서기도 하다. 서점을 대신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거리 풍경에서 서점이 없다고 생각해보면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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