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봉의 산촌일기] 어머님 전상서

늦은 가을, 나뭇잎 다 떨어진 지리산에서 어머니의 둘째 아들 올림 김석봉 농부l승인2018.10.31l수정2018.10.3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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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새벽닭이 울었습니다. 나도 잠을 깼고요. 그곳 병실도 여기처럼 많이 고요하지요?' 

어젯밤 꿈에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고향집도 보았고요. 방죽 옆 우리 논에서 모내기를 하는 어머니, 거머리에 물린 종아리에서 피가 계속 흐르는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못줄을 잡다말고 ‘출근을 해야 하는데 깜박 잊고 있었네. 이거 큰일 났다.’며 놀라 꿈을 깼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누워 그을음처럼 어둠이 웅얼웅얼 붙어 있는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집사람이 깰까봐 살금살금 밖으로 나왔습니다. 요즘 집사람은 낮잠 자는 서하 본다고 서하 곁에서 함께 낮잠을 자므로 저녁잠이 통 없습니다. 그래서 늦게까지 텔레비전 드라마 본다고 새벽잠을 곤하게 자거든요. 밖으로 나와 마당에 섰습니다.

▲ 김석봉 농부

하현달이 밝습니다.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살아생전 저 달을 볼 수 없겠구나싶었습니다. 병실 유리창이 옆 건물에 가로막혀 창문 너머로도 볼 수 없겠지요.

다시 들어와 새벽닭이 울 때까지 눈을 감은 채로 누워있었습니다. 그렇게 누워서 간밤에 꾸었던 꿈을 생각하고,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나를 서른두 살에 낳았으니 올해 아흔넷이군요. 힘들고 서러운 세월을 참 오래 사셨습니다. 올망졸망 어린 우리 사 남매가 비좁은 방에서 서로 팔베개 차지하려고 다투던 겨울밤, 그 잠깐 동안이 어머니께서 기나긴 세월을 버텨내신 힘이었겠지요.

누나가 먼저 죽고, 이제는 부산에서 사는 형과 마산에서 사는 동생과 내가 고향과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 따로따로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제각각 자리를 잡고 다른 사람들과 가족을 꾸려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엎치락뒤치락하다 문득 어머니께 드릴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자를 모르시니 여태껏 편지 한 통 쓸 생각을 못했거든요.

군대에서도 펜팔 한다고 낯모를 아가씨께 연서는 써댔으면서 정작 어머니껜 편지 한 장 써 보내드리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그래, 어머니께 편지나 한 장 쓰자.’는 생각을 하는데 왜 그렇게 실실 실한 헛웃음이 나는지, 그러다가도 왜 그렇게 그리움이 밀려드는지 한참을 궁상에 떨었습니다. 그리고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부치지도 않을, 그래서 어머니께서 받아보지도 못할 편지를 이처럼 써보는 겁니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소풍을 다솔사로 가는데 하필이면 하루 전날 어머니께서 맹장염으로 진주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셨지요. 나는 소풍을 포기하고 진주 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갔고, 거무튀튀하고 핼쓱한 얼굴로 나를 맞으시면서 내 소풍을 걱정해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나는 중학교를 도시로 나갔고, 자취방으로 쌀자루를 머리에 이고 찾아오신 어머니, 달걀이 깨질까봐 쌀 속에 몇 알 넣어 와서는 저녁반찬으로 달걀찜을 해주셨지요. 그때 내가 그걸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어머니, 지금도 기억하시지요?

어머니께서 형과 다툴 때 형 편만 든 것 같아 지금도 미안해요. 고집을 부린다며 성화를 하던 내가 몹시 서운했지요?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용서를 빌고 안 빌고 하는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지나가는 세월이 다 용서의 세월이니 그저 이렇게 그리워만 하면 되는 거지요.

지난달엔 나는 못가고 집사람만 병원으로 보냈네요. 다녀와서는 ‘어머니 정신이 영 상한 것 같더라. 잘 알아보지도 못하고, 엉뚱한 말씀만 하시더라.’고 전합디다. 내가 무슨 장사를 했다고 ‘그 애 장사는 잘 되냐.’는 말씀도 하셨다지요.

아마 ‘너희는 잘 사냐.’는 말씀이었겠지요. 우리는 잘 살아요. 걱정 마세요. 농사지은 고구마도 다 팔았고, 어젯밤엔 평일인데 민박도 방이 두 개나 나갔어요. 며느리와 아들놈이 어젯밤 민박손님과 사진도 찍고 그랬어요. 잘 생긴 청년이 어머니와 민박을 왔는데, 그 청년이 아이돌그룹 리더래요. 아이돌그룹 잘 모르시죠. 젊은이들이 몇몇 모여서 악기연주도 하고 노래도 하는 가수를 그렇게 불러요. 아직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는데 그 청년의 당찬 모습을 보니 곧 유명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요.

또 다른 방에는 아가씨가 혼자 여행을 와서 묵는데 며느리가 카페에서 낚았대요. 며느리 카페를 찾아온 아가씨가 어찌나 예쁘고 참하던지 며느리가 하루저녁 같이 지내고 싶었대요. 우리는 이리 오순도순 잘 삽니다.

이제 말문이 열리기 시작한 서하, 어머니의 증손녀지요. 서하 재롱이 보통이 넘어요. 리라리라리라 장단만 열면 폴짝폴짝 뛰면서 마음껏 춤도 추고, 무등을 태워주면 옹알옹알 알아듣지 못할 노래도 곧잘 불러요.

먹는 것은 나를 좀 닮은 것 같아요. 생선 좋아하고, 우거지국 건더기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특히 국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어머니도 내가 국수 좋아한다고 옛날 옥종장날이면 나를 데리고 장에 가서 희멀건 돼지국수도 먹여주고 그러셨지요.

오늘은 산마 캐고 마늘을 심을 거고, 내일은 들깨 털고 우엉 캐고, 모레 팥 거두면 가을일 다 끝나요. 김장배추 속이 차는 게 더뎌 애를 태우지만 아직 속 찰 날이 많이 남았으니 다 잘 되겠지요. 다음 주부터 화목보일러 틀어볼까 하는데 제발제발 고장 없이 물 많이 새지 않고 잘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어요.

부산 형은 여전히 구청 기간제로 일하고 있고, 형수는 느지막이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공부한다고 그러네요. 조카는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 하고, 마산 동생은 정서방 하는 사업이 바빠서 거든다고 통 짬을 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고구마 팔고 남은 거 부산과 마산에 큰 박스로 하나씩 보내주었는데 마산 동생이 다시 멸치하고 생선을 많이 보내왔네요. 어머니 자식들 크게 잘되지는 못했어도 다들 평범하게 그냥저냥 잘 먹고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공한 자식도 없지만 크게 실패한 자식도 없으니 어머니께서 잘 하신 겁니다.

이 정도면 어머니, 편히 눈 감으셔도 되겠어요. 애 많이 썼습니다.

가진 것 없는 서러움, 지아비 일찍 여윈 서러움, 못 배운 서러움, 자식께 많이 못 물려준 서러움, 자식 성공시키지 못한 서러움에 속 많이 썩었겠지만, 더는 흘릴 눈물도 남아있지 않겠지만 그간의 세월은 다 잊어버리세요.

저승이 아무리 험하다 해도 어머니가 살아오신 이승의 세월보다야 못할까요.

자식이 어버이를 해코지하고, 부부가 칼부림을 하고, 구석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이 세상보다야 못할까요.

어머니, 벌써 창이 밝아옵니다. 또 하루 열심히 살아볼게요. 지역번호 051이 찍힌 전화가 오면 어머니 계신 병원인가 싶어 괜히 마음이 쿵 합니다. 그러면서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승에서도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딱 이만큼만 살아야지 하는 생각.

그래도 어머니는 이승의 어머니로는 살지 말았으면 해요. 훌륭한 지아비와 함께, 성공한 자식 두고, 좋은 집에서 돈도 많이 가지고, 항상 넉넉하고 행복하게 살기 바래요. 꼭 그렇게 사세요. 꼭.


김석봉 농부  ksb@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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