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든 남성이든 ‘누구의 00’가 아니라 ‘누구’가 되는 게 성평등한 사회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안수산’이라는 한국계 미국인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안수산에 대한 연구로 학위논문을 쓴 연구자에게서 들은 그의 삶의 여정, 그리고 그의 도전과 성취는 잔잔하게 감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안수산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15년 미국에서 태어나 2015년 100세로 돌아가시기까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며, 조국 한국에서 온 한인들의 공동체를 위해 많은 기여를 했던 여성이다. 2016년 타임(TIME)이 선정한 '이름 없는 여성 영웅(Unsung Women)'에 포함된 것만 봐도 미국 사회와 한인 공동체에서 그녀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 강문순 칼럼니스트

그녀는 독립운동과 애국계몽활동으로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일으켜 세우는 것에 평생을 바친 도산 안창호의 장녀이다. 그런데 우리는 안수산이라는 이름을 통해 그녀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 ‘안창호’를 기억하게 된다.

연구자는 역사에서 대부분 누락되어버린 여성들의 삶을 복원해 내는 작업의 일환으로서 이 논문을 기획했다고 한다. 역사 속 여성 개개인의 삶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이런 작업은 우리의 역사를 더 온전히 채워가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그 작업을 열정적으로 해주신 연구자에게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연구자는 안수산이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당연한 듯 여겨지던 당시의 미국에서 소수민족 출신 여성으로서 그 차별적 장애들을 극복해 나가면서 최초로 미 해군 여성포병장교와 미국 국가안보국(NSA) 비밀정보 분석요원으로 활동했던 분이라고 전한다.

그러면서 안수산은 대한민국에 뿌리를 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우리 역사에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그녀를 ‘안창호의 딸’이라는 한정적인 틀로만 볼 것이 아니라 미국과 한국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다 가신 한 사람의 여성으로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논문이 발표된 후의 기사들을 보면 극히 적은 예를 제외하고 그는 여전히 ‘안창호의 딸’로만 소개되고 있다. 물론 아버지의 그늘이 너무나도 넓고 크다 보니 거기에서 벗어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여전히 개인 ‘안수산’이 아닌 ‘안창호의 딸’ 안수산인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누구의 딸’,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라는 호명은 과거 우리 대부분의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불리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여성들이 온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이제야 여성은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 여성이 대상이나 객체가 아니라 주체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 즉 주체가 된 여성들에게 사회는 아직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으며 여성을 주체로 호명하는 데에 인색한 부분이 있다. 지난 지방선거 때 도전적인 눈빛의 사진을 선거벽보에 내건 서울시장 후보 신지예 씨에 대한 인터넷상의 반응들이나, 여성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처벌하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예방하라고 6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내는데도 그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그리고 신속하게 수립되지 않는 것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많은 곳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이름보다는 ‘누구의 00’으로 불리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 안수산과 같은 자신의 사회에서 큰 업적을 남기며 살아 온 여성마저도 ‘안창호의 딸’로 불리는 실정이니, 이름 없이 살다 갔거나 살고 있는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누구의 00’로 불리고 기억되고 있다고 해서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누구의 00’가 아니라 ‘누구’, 주체가 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게 성평등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사회가 조금이라도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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