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대를 생각한다.

1604년 경상우병영이 진주로 옮겨 오면서 새로 쌓은 성(이하 1604년 성)에는 외부로 통하는 문이 모두 네 곳(남문, 서문, 구북문, 신북문)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의 다섯 곳에 비해 동문이 하나 줄어든 것이다. 그 이유는 1604년 성을 동쪽의 저지대에서 서쪽의 언덕지대로 물러나게 쌓으면서, 동쪽에 문을 둘 필요가 없어진 탓이다.

성문이 없어진 동쪽에는 장대(將臺)를 만들었다. 장대란, 유사시 장수가 군대의 지휘와 관측을 하도록 하기 위해 지은 누각이다. 진주성에는 네 곳의 장대가 있었다.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남장대(촉석루)와 북장대(진남루), 서장대 그리고 현재는 무너져 사라져 버린 동장대이다. 동장대는 일제강점기에 이주한 일본인들이 관청과 상가 및 주거지 개발을 목적으로 1604년 성의 외성을 파괴하면서 함께 파괴돼 사라져 버렸다. 알려지기로는 1911년 어느 날 밤중에 무너져 버렸다고 한다.

▲ 조창래 역사진주시민모임 대표

최근 역사광장 예정부지 발굴과정에서 외성의 일부가 모습을 드러내자, 시민들 사이에서 외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외성을 복원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만약 복원을 한다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그중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상 가운데 하나가 동장대이다.

왜냐하면 동장대는 비교적 그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고 복원 시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으며, 시내 중심지에 있어 동문과 더불어 복원에 따른 상징적 효과가 클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을 왜 축소했는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기 때문에 진주성 전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면 동장대가 있던 곳은 어디일까? 정확한 위치는 발굴을 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중앙동 주민센터 앞에 있는 ㅈ 주차장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면 ○○장이라는 간판이 보이는데 그 부근이 아닐까 추정된다. 그곳은 부근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마침 그 동쪽은 건물들이 철거되어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동장대를 복원하면 전망도 괜찮을 것이다. 또 주차장 부지를 사들여 광장으로 활용하면 시민뿐 아니라 방문객들에게도 유익한 시설이 될 수 있다.

동장대가 있던 곳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호텔과 시외버스 주차장이,  북쪽으로는 청과 시장이 보인다. 이 지역은 저지대여서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던 곳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습지나 모래밭이 형성되어 있었고 지반이 약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그런데 1970년 남강댐이 완공되면서 홍수의 위험이 사라지자 이 저지대는 둑을 쌓고 택지로 개발되었다. 그때 ‘동네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던 사람들은 과거의 동장대를 기억하고 ‘장대동’이라 이름 하였다. 역사의 흔적을 남긴 셈이다. 하기야 그 이름마저도 행정구역 개편으로 사라질 처지에 놓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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