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익 칼럼] 자유한국당의 변화 거부는 몰락의 전조인가

<9월 평양선언>이 초래한 ‘공룡’ 보수당의 ‘막말 악순환’의 미래는?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l승인2018.10.11l수정2018.10.1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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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평양공동선언>으로 남북한이 평화 정착의 대로로 나가겠다고 다짐하는 계획이 발표된 후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문제로 주변 국가 사이에 ‘분란’이 일고 있다.

먼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24 대북 제재조치 해제를 검토한다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기자들이 “그들(한국)이 당신과 (5·24 조치 해제와 관련해) 접촉해왔느냐”고 묻자 “그렇다. 그들은 우리 승인 없이는 아무 것도 안 한다(They do nothing without our approval).”고 못 박기도 했다.

지난 2010년 일어난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응해 당시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5·24 조치는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 중단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불허 ▲개성공단과 금강산 제외 방북 불허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 불허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이후 하나둘씩 해제돼 현재 ‘남북교역 중단과 신규투자 불허’를 제외하고는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비근한 사례를 들면, 올해 들어 한반도 정세가 바뀌면서 남북교류 행사를 위해 한 번에 백 명 이상씩 방북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불허’ 조치도 지난달 채택된 군사분야 합의서에 ‘쌍방은 북측 선박들의 해주 직항로 이용과 제주해협 통과 문제 등을 남북군사공동위에서 협의하여 대책을 마련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이 들어가면서 해제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남북교역은 유엔 차원의 포괄적인 대북제재에 막혀 있기 때문에 5·24조치가 해제된다하더라도 당장 시행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트럼프의 발언은 사실상 ‘미국 허락 없이 제재를 풀지 말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 제시의 성격이 짙다. 그동안 미국 정부가 밝혀온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 비핵화와 함께 가야 한다.”는 자신들의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팽팽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 정부의 독자적인 대북제재 조치에 대해 ‘미국의 승인이 없는 한, 한국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식의 고압적인 기류도 감지된다. 한국전쟁 이후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승만 대통령의 맥아더 유엔 사령관에 대한 전시 작전통제권 헌납 등) 한미간의 상하관계에 기초한 주권 침해 요소가 농후한 내용을 서슴없이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트럼프가 종종 저지르는 특유의 즉흥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대북 제재 해제 검토를)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할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은 주권국가 대한민국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친다.”며 “보다 신중한 단어 선택을 바란다.”고 비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유엔의 제재 사항과 관계없는 대한민국의 5·24 조치 등 개별적 결정 사항은 상호 ‘협의’ 사항이지 누구의 ‘승인’을 받아야 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송영길은 “동맹은 상대국의 법질서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며 “‘승인’이 아니라 ‘긴밀한 사전협의(close prior consultation)’ 취지였음을 트럼프 대통령이 명확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 3국은 외교차관 회담을 마친 뒤 공동성명을 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대북 제재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 나라가 ‘3자 회담’ 형식으로 대북 제재 문제를 공식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성명은 북한의 요구를 중러가 함께 뒷받침하고 나선 셈이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달 29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한 지 “1년이 되는 오늘까지 제재 결의는 해제되거나 완화되기는커녕 토 하나 변한 것이 없다”며 제재 완화·해제를 공식 언급했었다. 공동성명은 이와 함께 “한반도 문제는 평화적으로, 정치·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입장을 공유했다”며 “관련국들의 대화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상호 우려 해소와 관계 정상화를 위한 북미, 남북 회담에 지지를 표명한다”고 했다.

남북분단 70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9월 평양공동선언>이 세계만방에 천명됐으니 기존의 제도와 규범, 관행과 습속에 익숙해 있던 주변국가들이 당황하고 헷갈리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70년 간 한국의 멘토이자 ‘오야붕’으로서 갑질을 자행했던 미국으로서야 남북한이 ‘자기들 멋대로’ 평화선언이니, 군사분야 합의니 하면서 독자적인 평화통일의 길을 만들어나가겠다고 선언, 행동에 옮기겠다고 하니 느껴지는 아쉬움이 대단히 클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세계 1위의 미국 무기 수입국으로서 군산복합체의 주머니를 수십 년간 두둑하게 불려줬던 한국이 북한과 사실상의 불가침선언이자 평화체제선언인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해버렸으니 말이다. 미국 입장에서 ‘북한의 도발’은 ‘적대적 공존체제’를 유지시키는 지렛대로서, 확실한 수입을 챙길 수 있는 필요악이기도 했던 것이다. 어쨌든 한반도와 동북아를 지배해온 오래 된 구질서-주로 증오와 자폐, 냉전반공주의에 기반해 형성됐던-는 약간의 소동과 마찰, 때로는 작은 충돌을 불러일으키면서 서서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 틈새를 비집고 신질서-개방과 화합, 민주주의에 기반해 형성될-가 점차 뿌리를 내릴 것임은 분명하다. <9월 평양공동선언>은 세계인들이 모두 바라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진행된, 따라서 되돌리려고 해도 되돌리기가 어려운 ‘불가역적’인 평화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남북의 한민족 대다수가 찬성하는 ‘평화로 가는 길’을 거부하고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똑같은 소리만 외쳐대는 ‘외눈박이 색깔론’ 세력이 여전히 존재한다. 바로 자유(한국)당과 조중동 등 수구냉전 친화세력이다.

자유당하면 반사적으로 ‘막말과 독설의 악순환’이 떠오른다. ‘남북정상회담은 위장평화쇼’라는 전 대표 홍준표의 극단적인 막말공세가 지방선거 참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게 불과 넉 달 전이다. 하지만 변한 게 없다. 홍준표를 대신한 원내대표 김성태는 ‘<9월평양선언>은 속빈 강정이다’, ‘군사분야 합의는 무장해제다’, ‘송이받고 땅 내줬다’ 등으로 막말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판문점선언 비준동의 등 한반도 평화를 제도화하는 작업에는 귀를 막고, ‘남북 국회회담’에도 갖은 이유를 대며 불참을 공언하고 있다. 이러니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한반도 평화 장정’에 제동을 거는 세력이 한국당”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당이 ‘국회회담’에마저 불참한다면 ‘국회 내의 희귀동물 집산지, 갈라파고스섬’으로 전락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강경화의 ‘5.24 조치 해제 검토’ 발언이 나오자 조선일보는 사설 제목을 “북 대신 ‘제재 해제’ 총대 멘 한(국) 정부”라고 뽑고 “지금 북을 북핵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낸 것은 전례 없이 강력한 대북 제재 덕분”이라며 이 발언이 “북한 외교부의 주장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중앙일보도 “한국이 대북제재의 정신을 훼손하는 분위기를 자꾸만 조성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대북 상징성과 정치적 민감성을 모르는 여당 대표의 안이한 인식에 외교 수장이 장단을 맞춰준 ‘합작 자책골’”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나마 동아일보가 5‧24 조치가 유명무실해졌다는 건 인정한데 반해, 조선과 중앙은 그조차도 언급하지 않았다.

현실이 바뀌면 반성과 성찰을 통해 생각을 바꾸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이들은 그렇게 하질 못한다. 아직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만 떨어지면, 영남과 중장년 등 콘크리트 지지충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는 것 같다. 즉 판 자체가 변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냉전적 사고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한반도의 평화체제 이행이라는 대격동기에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도 없으며 외교, 안보도 미국에 의존하는 데 익숙해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국제 정세의 변화를 읽어내는 통찰력과 담대한 전략을 기대한다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다.

역대로 자유당과 공화당에 이어 민정당, 민자당, 한나라당, 그리고 새누리당 등 수다한 간판을 바꿔가면서 집권여당으로 행세하며 잘 먹고, 잘 살게 해줬던 ‘색깔론’은 힘을 잃었다. 너무 오랫동안 고생없이 부잣집 철부지로 살아온 격이니 상실감은 더 클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 1번지가 평양이 될 지경” 등 상궤를 벗어난 경박, 천박한 말들은 이판사판에서 나온 절규로 봐야 할 것인가. 거듭 태어나기 위한 뼈아픈 성찰이나 진통은 없이 지금까지 고비마다 적당히 넘어왔기 때문에 그게 체질화되고 타성이 돼버렸다는 지적은 백 번 타당하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공룡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그 큰 몸집을 미처 주체하지 못하고 멸종의 길로 추락하고 말았다. 2020년 총선 후, 자유당의 미래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예단일까.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choihan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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