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는 독일 현지에서 수목장으로.. 10월말 쯤 진주에서 추모행사

“사는 힘도 힘이지만 죽음으로 가는 힘도 힘인 것을..” - 허수경, <길모퉁이 중국식당> 중에.. -

“자주 지나다니는 길은 잊어버릴 수 없어. 우리가 잊어버릴 수 없는 이유는 마음속으로 서로 자주 지나다녔기 때문이야” - 허수경, <너 없이 걸었다> 중에.. - 

“당신, 이 저녁 창에 앉아 길을 보는 나에게, 먼 햇살, 가까운 햇살, 당신의 온 생애를 다하여, 지금, 나에게 스며든다, 그리움과의 거친 전쟁을 멈추고 스며드는 당신에게 나 또한, 스며든다.” - 허수경 <나의 저녁> 중에.. -

허수경 시인(54)이 3일 저녁 독일 뮌스터에서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허수경 시인은 등단 초창기부터 역사의식과 시대감각을 녹인 작품을 써왔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 시문단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그는 1992년 독일로 건너간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펼쳐왔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전쟁과 테러, 이산과 난민 문제를 담은 시집을 통해 한국 시가 국제적 감각과 맥락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 고 허수경 시인 (사진 = 문학동네)

허수경 시인은 1964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상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방송사 스크립터 등으로 일하다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그는 20대에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등의 시집을 펴내며 한국 시문단의 중심에 섰다.

특히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는 역사의식과 시대감각을 녹여낸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두 번째 시집인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직후인 1992년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대학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독일인 지도교수와 결혼해 독일에 자리 잡았다.

그는 독일에서도 문학활동에 힘써 모국어로 된 시집, 산문집, 동화, 소설 등을 꾸준히 발표했다. 특히 2001년 펴낸 세 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는 자신의 외국생활과 모국에 대한 그리움, 자신의 전공인 고고학적 사유를 결합한 역작으로 꼽힌다.

허수경 시인은 2000년대 들어 전쟁과 테러. 이산과 난민 문제를 담은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등을 통해 한국 시가 국제적인 감각과 맥락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그는 동서문학상(2001), 전숙희문학상(2016), 이육사 시문학상(2018)을 수상했다. 

허수경 시인의 별세소식이 전해진 4일 시인과 돈독한 관계에 있는 권영란 전 단디뉴스 대표는 SNS를 통해 “아침에 날아든 소식으로 인해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연에 빠져든다. 깊은 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12월이면 그녀에게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너무 이른 부고를 받았다”며 슬픔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그녀는 길 위에서 참으로 열심히 싸웠고, 울었고, 놀았다. 노동자와 민중, 민족과 통일을 이야기할 때도 그녀는 자신의 시와 문학을 치켜들어 깨춤을 추었다”며 그녀의 삶이 마지막 순간까지 시와 함께였던 점을 강조했다.

한편 허수경 시인의 장례는 독일 현지에서 수목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유해는 국내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10월 말쯤 경남 진주에서는 허수경 시인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권영란 전 대표는 “축제기간 추모행사를 열면 번거로울 것 같아 축제가 끝나는 10월말 쯤 시인과 시인의 시를 기억하는 지인들이 모여 추모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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