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보존하고 동문, 동장대 복원해야” 한 목소리

- 우수로 등 지으며 훼손된 자국 드러나 안타까움

진주성 촉석문 앞 진주대첩광장 조성 부지에서 외성 남쪽에 해당되는 남체성 일부가 원형을 간직한 채 발굴돼 진주성 외성 복원사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발굴된 외성벽은 조선 시대 성의 축조 방법과 시기, 형태 등을 규명하는데 단초를 제공할 만큼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당초 진주시가 계획했던 진주대첩광장과 지하주차장 건립은 사실상 전면 백지화될 전망이다.

 

▲ 진주성광장에서 발견된 진주성 외성 일부 구간이 11일 오후 3시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사진 = 유근종 사진작가)

문화재 발굴작업을 진행 중인 한국문물연구원은 11일 외성 흔적을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외성벽은 길이 100m에 너비 6~7m, 높이 4m 규모이다. 외성 부지에서는 옛 진주문화원(실크전시관)과 남강으로 물을 빼기 위해 설치된 우수로 등에 의해 외성벽 일부가 훼손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날 외성벽 공개에 참관한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외성 복원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과거 이곳에 건축물을 지으며 외성벽 일부를 훼손시킨 행정당국의 안일함을 성토했다. 

한국문물연구원은 이날 발견된 외성의 하단부와 상단부가 각각 다른 시대에 쌓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한국문물연구원은 하단부는 임진왜란 직전인 선조 24년(1591년)이나 임진왜란 이후인 1603년 경상우도병영이 진주로 이전하면서 다시 수축될 때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상단부는 1603년 지어졌거나 이후 조선 숙종 때 재개축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 진주성 외성 벽면 상층부와 하단부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축조되었음을 볼 수 있다.(사진 = 유근종 사진작가)

실제 이날 공개된 외성벽의 상층부와 하층부는 각기 다른 양식으로 쌓여졌음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문물연구원은 “명확한 축조시기는 아직 알 수 없고 외성의 축조 방법, 축조시기 등을 규명할 고고자료를 확보해 차후 성을 쌓은 시기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문물연구원과 시민들은 진주성 외성벽 일부가 1980년대 지어진 옛 진주문화원(실크전시관) 건물과 1960년대 만들어진 우수로에 의해 훼손된 것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공개된 외성벽 구간 가운데는 우수로의 일부분으로 보이는 콘크리트 벽이 돋아져 있었다. 한국문물연구원은 이에 대해 “1960년대 쯤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아래에 있던 성벽을 생각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발견된 진주성 외성 구간 가운데 옛 우수로 건축물로 추정되는 콘크리트 벽이 발견됐다. 외성은 이로 인해 일부 파괴됐다. (사진 = 유근종 사진작가)

공개된 진주성 외성 구간의 끝자락(촉석문 방향)에는 옛 진주문화원(실크전시관) 터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곳은 아직 발굴작업을 진행하지 않았지만 한 때 진주문화원에서 일했다는 심인경 진주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당시에 건물에는 지하 1층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저 아래에는 외성 건축물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외성 구간이 이어질 것으로 추정되는 구간에는 한때 진주문화원(실크전시관) 건물이 있었다. 이 건물은 지하1층이 있던 건물이다. 해당구간에는 외성이 존재하지 않을 것(파괴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진주성 외성벽이 공개되자 시민단체 회원들은 들뜬 반응을 보였다. 발견된 외성 일부를 보존하면서 외성이 지나던 길목 일부에 진주성 동문, 동장대 등을 복원해 외성의 흔적을 명확하게 남기자는 것이다.

조창래 역사진주시민모임 공동대표는 이날 옛 진주성 외성을 지나던 길이 어디였는지 조목조목 설명하며 “진주성 동문과 동장대 등을 복원해 진주 외성이 지나던 길을 명확히 인식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동문 복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진주성 동문은 진주성 1,2차 전투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1차 진주성 전투 당시 김시민 장군이 총탄을 맞았던 곳이자 2차 진주성 전투 당시 충청도 병마절도사이던 황진이 유탄에 맞았던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문을 복원해 진주성 전투와 관련한 스토리텔링을 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시민 장군과 병마절도사 황진은 진주성 1,2차 전투 당시 각각 진주성 동문에서 부상을 입고 사망했다. 진주성 동문은 지금의 장대동 어린이 놀이터 뒤편으로 추정된다.

 

▲ 진주성 외성을 견학중인 시민들

한편 진주성광장 부지 발굴조사는 내년 4월까지 진행된다. 현장조사는 올해 12월말까지로 예상된다. 한국문물연구원은 “현재 외성이 드러난 곳에서부터 촉석문 쪽으로는 발굴이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차후 또 다른 발견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했다. 그러면서 “그간 발굴과정에서 조선시대부터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유물 다수를 확보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진주성광장 부지에서는 지난해 11월 외성 기단석(건물의 기초가 되는 단을 쌓은 돌)이 발견되기도 했다.

진주성광장 부지에서 진주성 외성 일부 구간과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진주시는 기존의 지하주차장 건설 계획을 철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진주시는 본래 이곳에 지하주차장 건설을 강행하려다 지난 4월 문화재청의 발굴조사가 시작되자, 발굴조사 결과를 보고 광장 조성사업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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