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주는 기쁨과 환희를 잊지 마시라.

바야흐로 혼술의 시대이다. 불경기가 지속되고 고령화가 가속되며 늦은 결혼과 사회진출로 인해 1인가구 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에 따른 현상으로 혼밥과 혼술(혼자 마시는 술),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이 대중화되고 일반화 된다는 평가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나온다.

어릴 적부터 귀가 따갑도록 아버지께 들었던 소리는 술은 어른께 배워야 하니 술을 마실 때가 되거든 어려워 말고 아버지께 얘기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술은 중2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내게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주신 용돈을 아껴 친구들과 술 담배를 합니다’ 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자 한 잔 하거라’, ‘술잔은 이렇게 들고.. 술을 따를 때에는 두 손을 이렇게 하고...’ 등의 가르침을 받을 때 난 이미 선배 형들로부터 술자리 예의를 어느 정도 익힌 후였다. 하지만 짐짓 모르는 척 아버지 앞에서 조신하게 술잔을 홀짝거리며 마셨다. 아버지 가르침은 “술자리에서 예의 없이 굴지 마라”, “술 마시고 남들 앞에서 실수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 백승대 450 대표

낮에 아무리 출중한 사람이라도 술자리에서 실수라도 한 번하면 다음부터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달라진다. 같이 일하고 밥 먹기는 좋아도 같이 술 마시기는 싫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대학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함께 마시는 문화는 사회에서 회식으로 이어지고 그에 따라 술자리 접대와 처신은 업무능력 만큼 중요한 능력으로 치부된다.

술은 밖에서 여럿이 함께 마시는 행위일 뿐, 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사람은 험한 일을 하거나 무능력한 사람이라 치부하던 그런 시절은 지났다. 시간이 흐르며 사회적 기준과 가치관이 달라졌다. 언론에서 혼술의 사회학적 이유를 아무리 그럴듯하게 설명해도 내가 느끼는 ‘혼술’에 대한 감정은 간단하다. “혼자 마시는 것이 편하다”

잘 맞지도 않는 직장상사, 동료들과 억지스러운 술자리를 갖는 것보다 편안한 차림으로 집에서 혼자 마시는 술이 더 좋은 사람들이 많다. 혼술을 하다 좀 취하더라도 눈치 볼 사람이 없고 취하고 졸리면 그대로 뻗어 자면 그만이다. 안주는 무엇으로 할까라는 고민도 없다. 대리운전을 부르고 택시를 잡아 태워 보내야 하는 사람도 없으니 이 얼마나 편하고 경제적인가.

하루 종일 밖에서 사람과 업무에 시달렸는데 퇴근 후 만난 친구나 동료의 쉴 새 없는 넋두리와 푸념을 억지로 들어줘야 하고 자식자랑 손자자랑에 며느리 사위 자랑까지 해대는 친구와의 술자리가 반가울 리가 있겠는가? 이것도 사회생활이니 억지춘향, 좋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술잔을 함께 들지만 머릿속에는 우리 집 냉장고속 캔 맥주와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다.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 편의점으로 달려가는 상상을 하며 버틴다.

젊은 애들은 더치페이라는 걸 잘도 하더니만 우리에게 나눠 내는 건 아직 낯설다. 1차를 네가 사면 2차를 내가 사고 지난번에 네가 샀으니 이번에는 내가 산다는 것이 익숙한데 어딜 가서 무얼 먹고 마시느냐에 따라 지출 정도는 달라진다. 이것도 참 부담스럽다.

얇아진 지갑 때문에라도 혼자 마시는 것이 편할 때가 있다. 집 앞 편의점이나 마트만 가도 외국 캔 맥주가 4캔, 6캔에 만원 밖에 안하니 이게 무슨 횡재인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은 이미 혼술하기 좋은 사회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일본사회를 닮아가듯 혼밥과 혼술이 보편화되고 그들을 위한 간편식과 소용량 주류제품들의 매출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식당에서 벽을 보고 혼자 밥을 먹거나 bar나 선술집에서 혼자 앉아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건 더 이상 이상한 것이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혼자 먹고 마시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혼자 먹는 밥이나 혼자 마시는 술이 맛있어봤자 얼마나 맛있겠어’ 혹은 ‘저 사람은 친구도 동료도 없나봐’라고 얘기하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어떤 이유에서든 혼자 먹고 마시는 사람들을 ‘왜 저럴까’가 아니라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이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밥도 술도 여럿이서 유쾌하고 기분 좋게 먹고 마시는 것이 혼자의 그것보다 더 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잘못된 술버릇이나 꼰대질이 사람들을 혼술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혹은 내가 그런 사람이라 혼술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술을 만들고 파는 입장에서 당부하건데 혼술이 익숙하고 좋아지고 타인과의 술자리가 무의미해지더라도 술이 인간에게 주는 긍정적 측면 즉 술이 주는 기쁨과 환희를 잊지 마시라. 무엇이든 과하면 백해무익이요 아니한 것 만 못하지만 내가 어찌 하느냐에 따라 술은 밥처럼, 약처럼 먹고 마실 수 있다.

글을 다 쓰고 시간을 보니 혼술할 시간이다. 나는 오늘도 약처럼 술을 챙겨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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