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등 국제인권기구 '대체복무는 징벌적 성격이 아니어야 한다'

-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아닌 비양심적 병역기피자가 문제

- 4급이상 고위공직자 병역 면제 비율 일반인의 33배

병역거부로 연간 6백여 명의 청년이 교도소에 수감되던 일이 곧 과거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규정은 합헌이나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은 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다. 이에 국회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입법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부 국회의원들이 보이는 모습은 대한민국이 인권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대체복무가 장기간, 고강도로 이루어지게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나선 이유다.

지난 14일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을 비롯한 윤상형, 정종섭, 이주영, 황영철, 조경태, 신보라 의원 등은 장기간, 고강도의 대체복무안을 담은 병역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개정안에서 대체복무기간을 44개월로 하고, 대체복무를 택하는 청년들을 비무장지대 지뢰제거작업에 투입하도록 했다. 이들은 이 같은 개정안을 발의한 이유에 대해 대체복무자들이 비폭력·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만큼 인명 살상무기인 지뢰 제거에 종사하는 게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개정안은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이다.

▲ 김순종 기자

유엔 등 국제인권기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민간성격의 대체복무를 하게 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1998년 UN인권위원회는 '대체복무는 징벌적 성격이 아니어야 한다'고 의결했고, 2006년 한국인권위원회는 대체복무기간을 현역의 1.5배로 하고 부작용이 없으면 그 기간을 점차 단축하라고 권고했다. 2015년 유엔 인권위원회 제4차 한국 정부보고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법적으로 인정되게 하고, 병역거부자에게 민간 성격의 대체복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이 같은 권고사항을 다른 나라들은 대체로 준수하고 있다. 분단을 겪었던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 패한 후 1960년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독일은 대체복무자가 재해구호 활동이나 봉사활동 등의 업무에 종사하게 했다. 복무기간은 대체복무기간 도입 후 점차 줄어 들어 지난 2011년 징병제와 함께 대체복무제가 폐지될 때는 현역과 복무기간이 같았다. 대만의 경우도 2000년부터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이들은 군사훈련 대신 긴급구조, 체력훈련, 업무과정 등에 대한 실용적 교육을 받고 주로 사회치안, 사법행정, 공공행정 분야에서 복무한다. 군복무기간이 단축되면서 대체복무기간도 줄어 최종적으로 군복무기간과 같아졌다.

세계 어느 곳을 둘러봐도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매우 높은 수준의 위험이 있는 작업에 대체복무자를 투입하는 경우는 없다. 그리스의 경우 대체복무자를 벽지에서 근무하게 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한 업무에 투입하지 않는다. 대부분 행정분야, 치안분야에서 복무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복무자를 지뢰제거작업에 투입하겠다는 건 우리 스스로 인권후진국임을 자임하는 것에 다름 없다.

물론 독일의 경우처럼 대체복무제 초기 6천여 명에 불과했던 대체복무자가 10년만에 7만 명에 이르는 수준으로 확대될 여지는 있다. 하지만 현역의 1.5배에서 2배에 달하는 기간을 복무하게 하고, 합숙근무를 원칙으로 한다면 크게 문제될 소지는 없어 보인다. 그래도 문제가 된다면 대만처럼 대체복무제 심사제도를 도입해 병역기피를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을 차단하면 된다. 굳이 대체복무자에게 징벌적 성격의 업무를 맡길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양심의 자유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자들이 대체복무제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조처는 헌법에 따라 응당 해야 할 일이다. 우리 헌법 19조는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체복무자에게 반인권적 업무를 담당케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김학용 의원을 비롯해 징벌적 성격의 대체복무제 도입안을 내놓은 자들이 따져봐야 할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문제가 아닌 비양심적 이유로 군복무를 기피했던 자들의 문제이다. 2016년 국민의당 김중로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4급 이상 고위공직자 가운데 병역면제자 비율은 9.9%로 일반인 군 면제자 비율의 33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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