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중심에서 정당과 정책중심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불패의 사업’이 몇 가지 있다. 교육사업, 종교사업, 보험사업, 그리고 부동산이다. 물론 속설일 뿐, 무한경쟁 시대에 ‘절대’ 망하지 않는 사업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개별 사업가들의 흥망성쇠는 있을지라도 이 네 가지 사업 영역은 이 지독한 불황 속에서도 여전히 ‘건재’하다.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 네 가지 사업은 실은 모두 같은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바로 사람들의 ‘불안’이다.

교육은 인격 형성과 학문 탐구라는 본래 기능 보다는 자녀의 계급 상승 또는 계급 수호를 위한 ‘투자처’로 기능하고 있다. 종교도 깨달음이나 수양을 얻기 위한 목적 보다는 내세를 보장받고 현세에 ‘복’을 얻기 위해 절대자와 거래를 맺어 주는 중개자 역할을 하는 느낌이다.

대한민국 사람 100명 가운데 94명이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사보험에 가입했다고 한다. 2011년 통계에서 이미 대한민국 전체 사보험 시장은 33조원 규모로 공보험 보다 9조원이나 큰 것으로 조사됐다. 부동산 시장은 어떤가. ‘대한민국 땅을 모두 팔면 캐나다 6개를 살 수 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실제 가격이 그렇다. 달리 말하면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같은 크기의 집을 사려면 캐나다 사람보다 6배 더 오래 일해야 한다는 말이다.

▲ 서성룡 편집장

이들 사업이 성장할수록 그 사회의 빈부 격차는 커진다. 부자들에겐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이지만, 가난한 사람에겐 죽도록 일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가 된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치고자 미친 듯이 이들 사업에 ‘투자’ 하지만 그럴수록 사회는 더 나빠지고 삶을 더 팍팍해진다. 마치 열심히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개미지옥 속 개미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돈으로 막으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근원적으로 ‘불안’을 걷어낼 수는 없을까?

이를 해결할 키는 '정치'가 쥐고 있다.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정치선진국일수록 국민들의 종교에 대한 의존도는 떨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눈에 보이지 않는 신(神)보다는 눈에 보이는 정치나 사회 조직에 맡긴다.

사회가 평등해질수록 교육은 계급이동을 위한 계단 역할에서 학문 탐구와 전인적인 인격 형성이라는 본래 기능을 찾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들은 한결 같이 부동산 시장을 억제해 국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한다. 보험 또한 재벌 기업의 자금줄인 사보험이 활개치는 대신 상호부조와 사회 안정성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보험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떤가. 다수의 국회의원들은 교육개혁과 종교개혁에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국민들의 주거권 보다는 부동산 부자들의 수익을 보장하는 일에 앞장서 왔다.   

국회의원들이 ‘특수활동비’라는 이름으로 매해 60억원에서 80억원을 받아 영수증 처리 없이 사적인 용도로 사용해 왔다는 뉴스쯤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해외 출장 때 마다 전체 경비를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도 모자라 1인당 7천만원씩 특활비를 받아 챙겨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분노에 찬 사람들은 국회와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도움 보다는 해악만 끼치는 존재라며 ‘국회를 해산하라’는 과격한 주장도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그런다고 부패한 정치가 나아질까.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힘은 국민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했던 말이다.

노무현 이후 사람들의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관심은 그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커졌다. 한국인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와 참여도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만큼 높은 편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정당과 정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사람에서 머무르고 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16개 정당에 등록된 당원은 524만여명이다. 전체 유권자의 약12%가 소속정당이 있다는 말이다.

자유한국당의 경우 2015년 기준 302만명 당원 중 37만명이 당비를 납부해 12.7%가 권리당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해 기준 민주당은 267만명 당원 중에 25만명이 당비를 납부해 9.6%가 권리당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치 참여도와 기여도는 결코 낮지 않다. 유럽 등 정치 선진국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는 수치다.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거대 양당인 자유한국당과 민주당의 최소 당비가 각각 2천원, 1천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1년에 6개월 이상만 납부하면 당원으로서 모든 권리가 유지된다. 더구나 당비 내는 진성당원(권리당원) 비율이 낮기 때문에, 전체 유권자 대비 권리당원 비율은 1%대라고 한다.(2014년 기준)

못마땅한 정치를 개혁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투표만 잘한다고 정치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있다. 정치 제도와 선거제도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도록 개혁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일반 국민들의 정치 참여와 기여도가 높아져야 한다. 잘라 말하면 정당에 한달에 1만원이라도 돈을 내는 힘있는 개미 당원들이 늘어나야 한다.  

보수양당이 유권자 눈치를 보기 보다는 자본의 눈치를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수 노동자 보다 자본이 정치 자금을 절대적으로 많이 내기 때문이다.

드루킹 특검이 벌인 별건 수사로 노회찬 의원이 허망하게 떠난 뒤 정의당에 대한 지지도와 당원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16%를 웃돌아 진보정당 사상 최고점을 찍었다. 아래아 한글을 개발한 이찬진 대표나 참여정부 국민경제 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소장 같은 유명인들이 나서 당원가입 물결에 동참했다. 고 노회찬이 생전에 주력했던 연동형비례대표제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인물 중심에서 정당과 정책으로 흐름이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 

정치를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앉아서 욕하는 대신 당원이 되어 보는 게 어떨까.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