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짓 그만두고 막걸리는 막걸리로 놔두길 바란다.

단디뉴스에 술 이야기를 하고 나서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막걸리는 왜 안 써요?” 와 “막걸리는 언제 쓸 거요?”였다. 사실 내게 막걸리는 맥주만큼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술이다. 막걸리는 일제강점기와 박정희 시대를 지나며 풍비박산, 초토화가 되어버린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이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다.

희석식 소주가 시판되기 전까지 국내 주류 점유율의 90% 이상이 막걸리였으니 한국인에게 술이라 함은 곧 막걸리였다. 원래의 막걸리는 청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다. 고두밥에 누룩을 넣어 밑술을 만들고 발효가 완성되면 위에 뜨는 맑은 것만 따라내어 증류하는 것이 청주나 증류식 소주이다. 하지만 지체 높으신 양반집에서나 청주를 담아 마셨고 하층민들이나 일반 백성들은 남은 “찌꺼기”를 휘휘 저어 마셨는데 그것이 막걸리다. 발효 과정에서 밥알이 완전히 가라앉은 상태인 것을 따라 낸 것이 막걸리고 밥알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떠 있는 상태에서 따라 마시는 것이 동동주다. 마구(막) 걸러 마셔셔, 담근 지 며칠 되지도 않아 막 마신다고 하여 막걸리로 불렀다.

쌀이 귀하던 시절 막걸리는 밥을 대신하는 훌륭한 탄수화물 공급원이었다. 밥보다 적게 먹어도 액체라 금방 배가 불렀고 마신 후 적당한 취기가 고된 노동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었다. 우리는 대대로 막걸리를 밥 대신에 마셨고 일하는 중간 새참으로 약처럼 막걸리를 마셨다.

▲ 백승대 450 대표

일제강점기 일본은 동네마다 집집마다 막걸리를 만들어 마시는 조선인들에게 주세를 걷기위해 다양한 우리 누룩을 못 쓰게 하고 일본의 누룩으로 재료를 통일시켜 버렸다. 허가 받은 자들만 막걸리를 빚게 했고 세금을 물렸다. 이 시기에 조선의 막걸리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지역마다 독특한 특색을 가진 우리의 술이 우리 땅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두 번째 시련은 박정희가 양곡부족을 이유로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 밀가루 막걸리를 만들게 하면서 찾아왔다. 밀가루 막걸리는 우리 누룩과 잘 맞지 않아 술 띄우기가 힘들었고 맛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일본 누룩을 들여와 밀가루 막걸리를 만들게 장려하는 것이었다. 밀가루 막걸리는 국민들에게 외면을 받으며 예전의 사랑을 받지 못하다 희석식 소주의 등장과 국민 소득 증가에 따른 맥주 판매량 증가가 겹치며 나이 든 사람들이나 마시는 술로 전락해버렸다.

십여 년 전 막걸리 붐이 일어나며 막걸리집들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수출까지 하는 등 위세가 대단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막걸리열풍은 오래 가질 않았다. 막걸리는 별도의 멸균과정을 거치거나 방부제를 첨가하지 않으면 유통기한이 일주일이 채 안될 정도로 짧다. 수출하기에 그다지 좋은 상품이 아닌 셈이다.

당시 막걸리 수출에 대단한 기대를 가지고 있던 업계나 정부는 이제 닭 쫒던 개 신세가 되었다. 외국인들이 막걸리를 신기해하고 맛있어 하는 이유는 막걸리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전 세계 어딜 가도 증류를 하지 않고 수일간의 발효만으로 만드는 술은 얼마든지 있다. 외국인들이 막걸리에 느끼는 호기심은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술(음료)이 있는데’, ‘우리 술과 맛이 비슷한데’ 하는 친근함에 지나지 않는다.

땅콩 막걸리는 우도에 가서 마셔야 맛있지 그걸 사들고 집에 와서 산해진미의 안주를 차려도 현지에서 마시던 그 맛이 나질 않는다. 막걸리는 딱 그런 술이다. 여행가서 신기함에 한 두병 마셔보거나 비오는 날 파전이나 두부김치가 당기는 그럴 때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이다. 외국인들이 신기해하고 수출이 조금되다보니 우리는 막걸리에 너무 큰 기대를 가진 것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까지 막걸리를 과대평가 한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의 막걸리가 많은 문제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우선 재료의 선택과 가격책정이 가장 시급하다고 본다. 예전부터 농민과 민초의 술이었기에 막걸리는 싸다는 인식이 소비자뿐만 아니라 생산자들에게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쌀이 남아도는 시대를 살면서도 막걸리 양조업자들은 우리 쌀 보다 저렴한 수입쌀을 이용해서 막걸리를 빚는다. 최근에는 여러 막걸리 제조업자들이 유기농 쌀이나 우리 쌀을 이용한 막걸리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아직 대세로 자리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소비자의 인식을 바꿔 나가기에도 부족해 보인다. 주변에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막걸리가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마시느냐고. 막걸리는 분위기 때문에 마시고 안주 때문에 그리고 추억 때문에 마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추억과 분위기에 술값을 지불하는 것이지 막걸리가 싸고 대단한 음료라 소주나 맥주만큼의 술값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쌀로 된 제대로 된 막걸리를 생산하는 업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가격이 조금 오르더라도 우리 땅에서 생산된 우리 쌀로 만든 술. 몸에도 좋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제대로 된 우리 막걸리를 만들어야 한다.

막걸리 라벨이나 병뚜껑에 뻔뻔하게 써 놓은 korea rice wine 이라는 명칭도 문제다. 사실 이 문구를 보면 나는 욕부터 나온다. 와인은 와인이고 막걸리는 막걸리다. 막걸리를 외국인들에게 어떻게든 쉽게 설명하고 싶어 하는 건 이해하지만 와인을 기대하고 마신 외국인들의 리액션을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멍청하고 미련한 짓이다. 와인과 막걸리가 발효주라는 큰 개념의 틀은 같지만 재료도 다르고 숙성기간도 다르다. 엄연히 다른 술인데 이걸 와인이라고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어 보인다.

쉬운 예를 들자면 남미의 더운 나라 어디쯤에서 그 지역 특산물에 빻은 생선과 고춧가루 등으로 대충 섞어 정글김치나 아메리카김치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라 이런 김치도 있어 라는 호기심이 일어 구입해 맛을 볼 건가 아님 저건 김치가 아냐 하고 무시 할 텐가? 정글김치를 팔고 있는 그 나라 사람들을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지 상상해 보면 rice wine이 얼마나 창피한 작명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제라도 부끄러운 짓 그만두고 막걸리는 막걸리로 놔두길 바란다. 떡은 라이스케이크가 아니고 오뎅은 피쉬케이크가 아니다. 우리 술은 세계의 술들과 경쟁하는 우리나라 대표이며 국가대표인 셈인데 늘 쓰던 좋은 이름을 두고 외국 나간다고 자기 이름을 버리고 엉터리 이름을 다는 꼴은 볼썽사납다. 막걸리 좀 팔자고 스스로 창씨개명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인터넷 검색에 조금만 공을 들이면 전국 각지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막걸리들이 다음날 집으로 배달되어 온다. 오늘은 막걸리를 인터넷쇼핑 해보는 건 어떤가? 좋은 시절을 살고 있지만 남들보다 좀 더 좋은걸 먹고 살려면 조금의 ‘노오오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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