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활동비 파문과 ‘공영방송 이사 꽂아넣기’

문희상 국회의장이 모처럼 국민을 웃겼다. 민주당과 자유당 등 거대정당 원내대표들을 배석시킨 가운데 문희상은 “말썽 많은 특수활동비(특활비)를 없애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이것은 의정사에 남는 쾌거”라고 낯 뜨거운 공치사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진실이 아니었음이 곧 드러났다. 특활비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62억 원의 특활비 가운데, 15억 원에 해당하는 교섭단체에 대한 특활비만 폐지하는 안이었다.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회 몫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실제로는 4분의 1만 폐지하면서 겉으로는 ‘완전 폐지’한 것처럼 과대포장, 발표한 것을 두고 ‘의정사에 남는 쾌거’가 아니라 ‘의정사에 남는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된 것은 자업자득이랄 수 있다. 게다가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올해 7월부터 교섭단체 특활비를 받지 않고 있다”고 한데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 받지 않겠다고 밝힌 특활비는, 15억 원 중 하반기 지급분인 7~8억 원, 즉 전체의 8분의 1에 불과한 액수였다.

국회 내 의석수 제1당과 2당이 특활비 ‘완전 폐지’에 합의했다고 생색을 냈으나, 실제로는 일부 삭감일 뿐이고 업무추진비 등 명목만 전환하는 편법의 여지도 남아있어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질타는 계속됐다. 언론들의 융단폭격과 더불어 바른미래당과 정의당 등 소수 야당의 이탈도 거대정당의 ‘꼼수논란’을 부추겼다. 이들은 “교섭단체 특활비만 폐지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며 “의장단과 상임위원회 특활비도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른미래당은 “특활비 유지 꼼수로 더욱 큰 국민들의 분노만 불러올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과 여론의 뭇매도 적폐 양당이 나눠서 맞으면 별문제 없다는 뻔뻔함이 바로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현주소“라고 맹비난했다.

▲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특활비를 둘러싼 국회의 석연치 않은 태도는 정보공개를 하라는 사법부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공개를 꺼리는 폐쇄적인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국회는 2011~2013년 특활비 내역은 공개 했으나, 그 이후에 사용한 특활비 및 업무추진비 정보를 공개하라는 요구는 거부하고 있다. 대법원은 2004년 판결을 통해 "(특활비와 업무추진비를 비롯한 국회 예산은) 기밀로 볼 만한 내용이 없으며, 국회 활동은 공개해서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이 이뤄져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여론에 떠밀린 국회는 마지못해 새로운 특활비 폐지안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은 정확히 정해지지 않은 특활비 삭감 기준으로 국회가 비판 받았다고 불만을 터뜨렸지만, 여전히 정확한 삭감 기준을 밝히지 않았다. 유인태는 “국회라고 왜 특활비 쓸 일이 없겠느냐”며 되려 목소리를 높였다.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유인태의 설명대로 하반기 특활비를 최대 80% 삭감한다 해도 국회는 올해도 특활비를 6억 원 이상 쓰겠다는 말이 된다.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고 한다. 국가기밀과 관련된 국정활동을 위한 예산인 특활비는 지출내역의 외부감사가 불가능해 ‘묻지마 예산’, ‘깜깜이 예산’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부분의 국민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을 통해 그 실체를 인식하게 됐다. 특활비는 정보기관이 그 내역을 특정하기 힘든 ‘특수한 활동’을 하기 위해 쓰는 돈으로 설치, 운영돼왔으나 언제부터인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권력층의 ‘쌈짓돈’으로 오‧남용되고 있다. 심지어 뇌물의 용도로 쓰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는 사실이 이번 박-최 게이트 수사결과 밝혀졌다. 대통령이 군부대나 복지시설을 방문해 전달하는 금일봉이나, 청와대를 떠나는 직원에게 주는 전별금 등에 쓴다는 돈이 기밀유지와 무슨 관계가 있는 일인가? 또 과거 정통성이 부족했던 군사독재 정권시절에는 외국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 특활비가 사용됐다고도 한다.

한 마디로 특활비란 국민의 혈세를 걷어서 권력자들이 흥청망청 제멋대로 써왔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눈먼 돈’이니 자유당 대표를 했던 홍준표가 특활비를 생활비로 썼다고 실토했는데도 상응하는 징계나 처벌 논란이 없었던 것 아닌가. 이제 민주화도 어느 정도 달성되고 있는 시점에서 특수활동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가? 내역을 공개해서 떳떳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든가, 아니면 없애버려야 할 것이다.

국회 내 거대정당의 적폐가 드러난 또 다른 사례는 얼마 전 결정된 MBC의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선임과정에서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은 “김성태 자유당 원내대표가 야당 몫의 이사진 선임 책임(?)을 맡고 있는 방통위원에게 최기화·김도인 등 두 명을 반드시 뽑으라는 오더를 내렸다”고 폭로했다. 방송법상 방문진 이사 임면권은 방통위에 있지만, 그것은 형식적일뿐 사실상 정치권에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으며 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폭압적으로 공영방송의 이사진을 뽑아왔나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에피소드다.

여기서 지적돼야 할 것은 정치권, 특히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려는 거대정당의 간섭과 개입 같은 정치권의 농간에 저항할 생각대신 사냥개처럼 시키는 대로 굴복하고 만 방송통신위원장 이효성 등 고위직 인사들의 비겁하고 누추한 모습이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수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방통위가 제 구실을 못하는데는 위원장과 위원들의 무소신과 보신주의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MBC 보도국장을 하면서 박근혜 정권에 대한 편향적인 보도로 충성을 다한 최기화는 삼성그룹 사장 장충기와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로도 유명해졌다. “형님, 귀한 선물 감사합니다. 별로 보탬도 되지 않는데, 늘 신세만 집니다.”, “형님, 문화적 소양을 키울 수 있도록 좋은 공연 표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낯이 뜨거워 똑바로 보기가 역겨울 지경이다. 이쯤 되면 언론이 제 4부로서 환경을 감시하기는커녕 앞장서서 재벌기업과 한통속이 되고 있어 언론인지, 조폭집단인지 알 수가 없다. 재벌기업 사장도 이렇게 따르는데 자신을 방문진 이사 자리에 앉혀준 새누리당을 위해 못할 일이 있겠는가.

김성태의 폭압적인 이사진 선임 강요에 대해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이효성은 방문진 이사 선임과 관련, “정치권의 관행, 특정정당 행태를 모두 무시할 경우 일어날 파장과 정치적 대립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것은 전형적인 정치인의 변명이며, 방송인 혹은 언론인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겁이 나서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으며, 방통위원장으로서 누릴 수 있는 고액의 보수와 각종 혜택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비근한 예로 2003년 초, 당시 김중배 MBC 사장은 청와대의 압력성 전화를 받자 즉시 사표를 던지고 사장직을 그만 두는 기개를 보인 바 있다. 공영방송, 나아가 언론의 독립성 확보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며, 용기있는 언론인들이 희생을 무릅쓰고 권력에 대한 저항과 투쟁에 나설 때 가능한 것이다.

선거제도를 비롯해 모든 정치개혁 과제에 대한 소극성이 집권당인 거대정당 민주당의 기본으로 굳어지고 있다. 국회 특활비 폐지만 하더라도, 초기에 민주당은 소극적이었다. 그러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폐지 방향으로 돌아선 것이다. 각종 개혁에 대한 소극성과 기득권에 연연한 태도는 국민의 지지율 하락을 가속화시킬 것이며 끝내는 여론의 심판을 자초할 것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내림세를 타던 새누리당은 지방선거를 계기로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영남권으로부터도 지지를 잃었다. 적폐청산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적폐가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변화를 꾀하기보다 현실에 안주할 경우, 새누리당의 추락이 '강건너 불'만은 아니게 될 것이다. 지지율의 지속적 하락은 이를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 중 하나이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