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 <진주(晉州)의 진주(珍珠)>

아침 이슬보다 더 고운 진주. 우리나라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지명을 가진 도시는 없다. 천년 고도의 기품이 서린 진주 속 진주를 보기 위해 진주성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을 찾았다.

 

▲ 진주성 내에서 바라본 촉석루와 의암

진주성으로 가는 데 주차장 앞에 있는 식당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구절을 옮겨 적은 걸개가 보인다.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게 어디 한둘일까마는 진주성을 들어가는 공북문 옆 성곽에도 풀꽃처럼 자세히 보아야 할 글자가 있다.

 

▲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구절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게 보이는 것이 어디 한둘일까마는 진주성 공북문 매표소 뒤쪽에는 1680년 진주성을 개축할 때 축성 작업의 일부를 담당한 사람들을 표기한 명문이 새겨져 있다.

매표소 뒤편 성곽에 새겨진 <진주성 수축 관련 명문>으로 1680년 진주성을 개축할 때 축성 작업의 일부를 담당한 사람들을 표기한 것으로 ‘강희 19년 산음 마병중초 사천 곤양 하동 단성 함양 여섯 개 관할구역(의 군사들)이 한 개의 초를 이루어(쌓았다)’는 뜻의 한자가 새겨져 있다. 진주성을 쌓느라 고생한 숨은 이들의 노력이 숨어 있는 셈이다.

 

▲ 청룡과 황룡이 서로 여의주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모습이 그려진 진주성 공북문 천정

청룡과 황룡이 서로 여의주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모습이 그려진 공북문 천정의 그림을 뒤로 성으로 들어섰다. 곧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이 보이고 너머로 옛 경상남도청 정문이기도 했던 영남포정사가 보인다. 남강가로 가면 의암과 촉석루가 모습을 드러내고 강은 말없이 흐른다.

 

▲ 진주성 내에 있는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

남쪽 성곽을 따라 국립진주박물관으로 향하는 데 ‘지사들이여, 모두 일어나 의로운 칼을 들어 나라를 구하고 왕은에 보답할 지어다. ~ 우리 모두 통분의 눈물을 뿌리며 죽음으로써 나아갈진대 반드시 대첩을 거두리라.’라는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의병장 고경명의 격문이 새겨진 돌이 먼저 반긴다.

 

▲ 진주성 내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으로 가는 길에는 동북아국제전쟁에 참여한 의병장과 장수들의 각오 등이 새겨진 돌들이 길을 안내한다. 그 위로 오는 10월 21일까지 열리는 ‘진주(晉州)의 진주(珍珠)’라는 박물관 특별전 안내 걸개가 펄럭인다.

당시 전쟁에 참여한 의병장을 비롯한 장수들의 각오들이 새겨진 돌들이 박물관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그 위로 오는 10월 21일까지 열리는 ‘진주(晉州)의 진주(珍珠)’라는 박물관 특별전 안내 걸개가 펄럭인다.

 

▲ ‘진주(晉州)의 진주(珍珠)’라는 특별전이 열리는 국립진주박물관

진주박물관 입구에는 지금의 다연장 로켓과 비슷한 화차가 반긴다. 박물관 상설전시실은 개편을 맞아 공사 중이다. 11월 30일 재개관할 내용이 벌써 궁금하다. 그날을 기약하며 입구 왼쪽에 있는 특별전시실로 걸음을 옮겼다.

 

▲ ‘진주(晉州)의 진주(珍珠)’라는 특별전이 열리는 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시실로 가는 복도 한쪽에는 일본 제국주의 강제점령기와 80년대 이전의 진주성 등의 풍광을 찍은 흑백사진들이 걸려 있다.

전시실로 가는 복도 한쪽에는 일본 제국주의 강제점령기와 80년대 이전의 진주성 등의 풍광을 찍은 흑백사진들이 걸려 있다. 공북문을 들어서며 바라본 영남포정사의 1980년대 진주성 정화사업 무렵의 옛 모습을 흑백으로 다시 반갑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겨울철 남강에서 물 길어가는1950년대 어머니들의 모습도 아련하다. 1920년대 촉석루 사진은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뒤 새로 지은 지금의 촉석루와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진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 경남 지역을 표시한 조선 시대 지도

전시실에 들어서자 진주를 중심으로 한 경남 서부지역의 명소들이 영상으로 반긴다. 지리산과 남해 등지의 350여 점의 문화재를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서부경남의 중심도시 진주가 품은 많은 보물을 소개한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자 지리산을 찾듯 나 역시 나고 자란 진주를 알기 위해 찬찬히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서부 경남 명소를 소개한 영상을 뒤로하고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조선 시대 진주성 지도가 활짝 팔을 벌려 반기듯 와락 안긴다. 당시의 진주성과 지금 현재의 진주성을 비교하며 살피다 걸음은 진주를 비롯한 경상도를 그린 지도에서 멈춘다.

 

▲ 17세기 경상도 진주목의 다양한 정보를 기록한 읍지(邑誌) 진양지

지리산 그림을 비롯해 17세기 경상도 진주목의 다양한 정보를 기록한 읍지(邑誌) 진양지를 살피고 나면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한 석기 시대 유물이 차근차근 나온다.

 

▲ 국립진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

남쪽 바닷길, 국제무역의 중심이었던 사천 늑도의 유물과 청동기 시대 대규모 취락지가 있었던 대평면 유적 등은 시공간을 순식간으로 이동시켜준다.

오늘날의 머그잔을 닮은 삼한 시대의 손잡이잔 등은 서부경남 속 가야의 흔적을 살피게 한다. 창이 뚫린 굽다리 위에 마치 뿔잔 두 개를 서로 붙여 놓은 듯한 모양의 원통관을 올려놓고 원통관 양쪽에 바퀴를 매단 <도기 바퀴장식 뿔잔>을 보자 잠시 원통관에 매달린 고사리를 안주 삼아 술을 따라 마시면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 국립진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토기 바퀴장식 뿔잔>

뿔잔을 지나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출토된 투박한 <사람머리모양 토기>가 눈길을 끈다. 그리스 투구를 닮은 이 토기는 5세기 무렵의 가야 것으로 추정하는데 지름이 약 24cm로 실제 사람이 쓸 수 있는 크기다. 토기의 코는 뾰족하고 콧구멍이 시원하게 뚫렸고 머리와 귀 부위에 작은 구멍이 있어 새의 깃털 같은 장식물을 꽂아 꾸밀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한다. 흙투구를 쓰고 의례를 주관했던 제사장의 모습이 전시 유리창에 어린다.

 

▲ 국립진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삼한 시대 <사람머리모양 토기>는 의례를 주관했던 제사장이 쓴 흙투구로 추정한다.

1793년 정월 하동 쌍계사에서 그려진 남북국 시대(통일신라) 최치원 선생의 초상에서는 X선과 적외선 촬영 결과를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난 사대부의 모습이 아니라 무속신앙 속 인물로 표현된 것을 알려준다. 최치원 선생 초상 옆으로 고려 시대 강감찬 장군을 도와 거란을 물리친 강민첨 장군의 초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 1793년 정월 하동 쌍계사에서 그려진 남북국 시대(통일신라) 최치원 선생의 초상과 선생이 쓴 쌍계사진감선사대탑비 탁본.

초상화 뒤편으로 고려 시대 <매화 대나무 학무늬 매병>이 은은하게 반긴다. 고려 시대를 지나면 조선 시대 경상우도로 불린 서부 경남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교육자였던 남명 조식 선생을 살펴볼 기회를 접한다. <실천하는 삶, 남명 조식과 그의 제자들>이라는 제목을 가진 전시물들이 ‘진주정신’을 드러낸다.

 

▲ 국립진주박물관 <진주(晉州)의 진주(珍珠> 특별전에 전시된 <실천하는 삶, 남명 조식과 그의 제자들>

의령군 칠곡과 사천시 곤명에 남아 있는 조선 왕실의 태실을 살피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 부부의 초상을 지나면 1480년(성종 11년) 김광려 삼 남매가 부모님 돌아가신 뒤 합의하여 재산을 분배하고 서명한 문서를 만난다. 논과 밭, 노비를 아들과 딸이 차별 없이 재산을 균등하게 상속받았음을 알려준다.

 

▲ 국립진주박물관 <진주(晉州)의 진주(珍珠> 특별전에 전시된 김광려 삼남매 재산분배기는 아들과 딸 차별없이 균등하게 재산을 상속했음을 알 수 있다.

국보 제324호로 승격한 조선 개국에 공을 세운 이제에게 내린 공신 문서가 보인다. 진주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전시실 한쪽에는 진주박물관의 역사도 나온다. 박물관 건립 설계도는 물론이고 발굴 보고서 등도 엿볼 수 있다.

 

▲ 국립진주박물관 <진주(晉州)의 진주(珍珠> 특별전에 전시된 최근 국보로 승격된 <조선 개국 공신 이제에게 내린 공신 문서>

<타임 어드벤쳐>라는 퀴즈 풀이는 재미나게 시간여행을 다녀올 기회였다. 아이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보면 역사 상식도 늘릴 수 있겠다. 뒤편으로는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에 관한 고갱이만 모아 전시되어 있다.

 

▲ 국립진주박물관 <진주(晉州)의 진주(珍珠> 특별전에 전시된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전시대

오희문이 피난 중에 쓴 기록은 전쟁의 다른 면을 알아보게도 하지만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1차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시민 장군에게 공신을 봉하는 문서 앞에 서면 일본 제국주의 강제점령기에 유출된 문화재를 국내 반입하기 위해 모금 운동을 전개한 시민들의 성원을 느끼게 한다.

 

▲ 국립진주박물관 <진주(晉州)의 진주(珍珠> 특별전에 전시된 <김시민 공신 문서>. 일본 제국주의 강제점령기에 유출된 <김시민 공신 문서>를 국내 반입하기 위해 모금 운동을 전개한 시민들의 성원을 느끼게 한다.

동북아국제전쟁에 관한 전시를 둘러보고 나면 근대 민중 운동을 이끈 진주 농민항쟁과 형평운동을 살피는 유물이 걸음을 세운다. 이밖에도 지금의 상공회의소와 같은 구실을 한 상무사에 관한 자료는 물론이고 진주오광대와 진주난봉가를 들어볼 수 있다.

 

▲ 국립진주박물관 <진주(晉州)의 진주(珍珠> 특별전에 전시된 근대 민중 운동을 이끈 진주 농민항쟁과 형평운동 유물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 삼 년을 살고 나니, 시어머님 하시는 말씀, 아가 아가 메느리 아가 진주 낭군을 볼라거든 진주 남강에 빨래를 가게~”

고된 시집살이를 배경으로 한 노래를 듣고나면 진주룰 소재로 한 가요 ‘진주라 천릿길’이 곁들여진다.

 

▲ 국립진주박물관 <진주(晉州)의 진주(珍珠> 특별전에 전시된 <진주난봉가> 가사와 관련 자료

‘진주라 천릿길 내 어이 왔던고~’로 시작하는 노랫말은 이제 진주박물관의 특별전 <진주(晉州)의 진주(珍珠)>를 접하고 나면 왜 진작 오지 않고 이제 왔던 가로 바뀔지 모른다.

 

▲ 국립진주박물관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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