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극단적 사고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캐스 R.선스타인의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를 읽고 김순종 기자l승인2018.08.14l수정2018.08.1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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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제가 대통령 되고 나면 무엇을 해야지요?" "감시, 감시" 2002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던 날 노사모와 나눴던 대화 일부이다. 경선 초기만 해도 지지도가 낮았던 노 전 대통령을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대통령으로 만든 1등 공신 노사모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이제 그를 감시하겠다고 말했다.

그 풍경은 아름다웠다. 한 정치인을 열렬히 지지했지만 그가 권력자가 되면 이제 그를, 권력을 감시하겠다는 다짐. 깨어있는 시민이란 단어가 유효하다면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이들의 몫일 게다.

시간이 흘러 2017년,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됐다. 한데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자들의 모습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던 노사모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이니'라고 지칭하며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라'는 식의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 김순종 기자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가운데 일부 맹목적 지지자가 존재하고, 이들이 문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내비치는 언론과 시민을 싸잡아 공격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소위 '한경오'로 대변되는 진보언론을 공격했다. 그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비판적 지지자를 공격하는 모습도 보였다. 집단극단화의 폐해였다.

맹목적 지지자의 문제는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데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선, 비판하는 사람들은 악으로 치부한다. 심지어 비판적 지지자들에게도 성난 이빨을 드러낸다.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다양성에 기초한 체제가 민주주의라는 점에 비추어보면 이들의 행동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특정 정치가에 대한 맹목적 지지는 그간 박정희, 박근혜 지지자로 대변되는 수구세력의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 이 같은 현상은 수구진영을 넘어 민주진영까지 확산됐다. 한국사회의 극단화 수준이 그만큼 심화됐다는 얘기다. 이러한 극단화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캐스 R. 선스타인 교수는 그의 저서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를 통해 이러한 현상의 이유를 설명한다.

선스타인은 집단극단화가 일어나는 것에 정보의 편향, 확증편향, 평판의 압력. 이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말한다.

정보의 편향은 한 쪽의 주장만을 지속적으로 듣게 되다 극단에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가령 성장과 분배 정책 가운데 어느 것이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는가를 판단할 때 성장이 중요하다는 정보를 자주 접하는 사람은 성장주의자로, 분배가 중요하다는 정보를 접하는 사람은 분배주의자로 거듭나는 현상이다.

확증편향은 주위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인정을 받게 되며 그 생각에 한 치의 오류도 없다고 믿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가령 문재인 정부는 흠결 없는 정부라는 생각을 주위사람들로부터 거듭 인정받게 될 때 우리는 그 생각을 옳은 것이라 치부하며 강화시킨다.

평판의 압력은 타인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양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집단 내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면 소수의견은 목소리를 잃게 된다. 다수의견이 유일한 의견으로 남는다. 다름이 사라지며 집단은 한 의견만을 추종하는 극단에 이른다.

세 가지 요소는 SNS의 보편화와 함께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SNS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의 글을 자주 노출시킨다. 알고리즘에 의해서다. 내가 한 번이라도 그 글에 반응할 경우 그 사람의 글은 더 자주 노출된다. 정보 편향이 이루어진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되니 확증편향에 이른다. 극단화는 자연스런 수순이다.

선스타인은 이 같은 극단화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극단화를 방지하는 방법 중 하나가 결과주의다. 결과주의란 그 극단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고려할 줄 아는 자세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극단이 지속되면 이 사회는 하나의 의견만이 존재하는 전체주의적 사회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결론에 이른다면 우리는 극단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도 극단화는 방지된다. 입법, 행정, 사법부가 서로를 존중하며 견제하듯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동등한 위치에서 토론하고 상대의 의견을 수용한다면 극단화는 방지된다. 반론에 반론이 이어지도 보면 좀 더 좋은 생각들이 도출될 수도 있다. 이 때 집단극단화는 집단지성의 길로 나아간다.

언제부턴가 소위 민주진영에서도 집단극단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집단 극단화를 방지하려면 우리는 그 극단적 생각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혹여 우리의 극단이 다양성을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지 않는지. 단일한 생각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로 퇴행을 부르지는 않는지. 다른 의견을 가진 자들을 억압하며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망가뜨리고 있지 않은지.

일찍이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의견으로 인해 박해받는다면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이처럼 반대의견을 존중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호할 때 지속 발전할 수 있다. 극단적 생각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김순종 기자  how2how2liv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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