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최저임금 악순환의 고리

연결고리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지긋지긋한 임노동"에 있다. 서성룡 편집장l승인2018.07.23l수정2018.08.0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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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진주 상평공단에서는 방직공장이 문 닫은 곳에 공작기계 한두 대 놓고 임가공 하는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지금도 그런 사업장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안다.

주로 자동차 부품 물량 3차 밴드 업체들이다. 경기도나 구미공단 1차 밴드에서 다 쳐내지 못하거나 일하기 까다로운 물량이 인근 창원공단으로 갔다가, 창원에서 다시 진주로 넘어온 일감이다. 단가는 두 단계로 떨어져 형편없었지만, 빈 공장 터에 월세 들어 24시간 주야 맞교대로 공장을 돌리면 임대료와 은행 이자, 세금 등을 떼고 사장이 마진을 가져갈 수 있기에 그런 일이라도 받아 공장을 돌리는 것이었다.

▲ 서성룡 편집장

자동차 부품 임가공 단가는 납품 개수로 계산하지 않는다. 처음엔 그랬다지만 제품에 따라 가공 시간이 다르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가공 시간당 계산한다. 10분에 몇천 원, 이런 식으로. 이렇게 되면 휴식시간, 점심시간을 통제하고, 작업 시 움직이는 동선까지 감안해서, 최대한 많은 물량을 뽑기 위해 경쟁하는 체제가 된다. 그러고는 노동자의 임금은 최저 이하로 맞춘다. 불법으로 싼 값에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고령의 여성 노동자를 고용한다. 그래서 임가공 업체 노임은 경남에서 진주가 제일 싸다.

한 몇 년간 임가공 업체에서 부지런히 기술을 익히면 숙련공이 되는데, 숙련공이 되어봤자 임금은 크게 오르지 않는다. 미래가 안 보인다. 그러면 차근히 계획을 잡거나 때론 홧김에 공장을 때려치우고 나가서 창업을 한다. 은행에 빚을 내어 중고 공작기계 한 두 대 사고, 빈 공장 터 한 귀퉁이를 빌려 사장이 되는 것이다.

창업을 한 노동자 출신 사장들은 미친 듯이 공장을 돌린다. "몸은 힘들지만, 마찌꼬바* 버튼맨*으로 일할 때 보다 낫다"고 말한다. 실제로 나을 것이다. 새벽 같이 출근해 저녁 별 보며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해 봤자 한 달 150~200만원 겨우 받았는데, 1인 창업을 하면 이것저것 떼고도 300~400만원은 가져가는 듯하니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다들 이렇게 숙련공이 되고나면 뛰쳐나가 창업을 하다 보니, 임대료는 떨어질 줄 모르고, 기계 장사도 솔찮게 이익 남기며 사업을 하고, 수리업자들도 고만고만하게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그러고는 단가 경쟁은 더 치열해 진다. 하청 업체가 늘어나니 원청 기업은 ‘손 안대고 코푸는 식’으로 매년 납품 단가를 네고* 시킨다. 이제는 가공 후 철 스크랩이 나오는 양까지 계산해 떼어간다.

공장을 24시간 주야 맞교대로 돌리고, 불법 외국인 노동자를 더 고용하고, 남성인력을 고령 여성인력으로 대체한다. 임금은 제자리걸음이다.

임가공 공장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은 대한민국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숙련 노동자나 사회 물을 좀 먹은 노동자들은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혹은 여유가 없더라도 홧김에 ‘지긋지긋한 노동자 신분을 때려치우고’ 창업 전선에 뛰어든다.

왜냐고? "힘은 들더라도 그게 더 나으니까"

그러니 빈 공장 터 구석마다 기계 한 두 대 놓고 돌아가는 마찌고바들이 줄줄이 들어서고, 골목마다 두 집 건너 하나씩 편의점이 생기고, 눈뜨면 새로운 치킨집이 창업해 24시간 불을 훤히 밝힌 채 박이 터져라 경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을들의 경쟁’, ‘제 살 뜯어먹기 경쟁’이다.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의 연결고리는 바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지긋지긋한 임노동"에 있다. 은행 빚을 짊어지고, 비싼 임대료를 내고, 월말마다 머리 아프게 세금과 수지 계산을 맞춰야 하는 고통을 감수하고 살더라도, "임노동자로 사는 것 보다는 더 나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이런 악순환도 서서히 종말로 치닫고 있다. ‘최저임금의 생활임금 보장’이라는 정부의 해법이 연착륙해서 악순환이 선순환으로 전환돼 종말을 맞는 거라면 다행이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해피엔딩이 아니다.

경제불황에 의한 강제적인 종말이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선박만 밀리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가 안 팔리고, 옷이 안 팔리고, 휴대폰이 안 팔린다. 온라인 쇼핑의 세계화로 자동차도 집도, 인터넷으로 사는 시대가 열렸다.

생산 물량이 줄어들면 가장 먼저 마지막 하청 물량부터 사라진다. 작은 공장들은 비교적 쉽게 문을 닫는다. 임노동자에서 하루 아침에 신분 상승을 했던 사장님들이 다시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어 거리로 내몰린다. 그러면 다시 두 가지 선택 앞에 놓인다. 치킨집 사장이 되든지, 일용직 노동자가 되든지. 폐업 후 잔금이 좀 남았다면 십중팔구 치킨집 사장이 된다. 아니면 편의점을 열든지.

노동 소득이 줄어드니 소비는 더욱 위축된다. 예전엔 '생활'에 필요한 물품만을 소비했다면, 이제는 '생존'에 필요한 물품만 구매한다. 사람들은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외식도 끊고, 야식도 끊는다. 장사는 더욱 안 된다. 자영업자들은 매출이 안 오른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최저임금은 또 오른다고 하니 미칠 지경이다. 이제는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직도 우리에겐 해결의 실마리가 남아 있을까?

'임노동자로 살아도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게 답인데, 그러려면 일반인들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재벌의 자본소득에 손댈 수 있어야 한다. (2015년 한 해 삼성전자 등기이사 4명의 보수 총액은 권 대표이사 149억5400만원을 포함 모두 266억2700만원에 달한다. 출처 한겨레)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복지혜택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숙련공들이 뛰쳐나가 너도 나도 창업하지 않아도 미래가 보장되려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늘려야 한다. 대기업이 매년 하청업체 단가를 후려치고 ‘갑질’하지 못하도록 상생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정부나 국회, 법조계가 ‘갑 오브 갑’인 재벌의 초과 자본소득에 칼날을 댈 수 있을까? ‘같이 좀 살자’고 시늉만 해도 “사회주의 하자는 거냐”며 글 폭력을 휘두르는 언론 재벌이 있는 한 불가능하지 싶다. 아마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런 세상을 기대하려면 '혁명'에 가까운 개혁, 또는 진짜 혁명이라도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마찌꼬바: 영세사업자를 말하는 현장 언어. 일본어

*버튼맨: 단순 반복 업무 종사자

*네고 : 협상해서 할인하다(Negotiation)


서성룡 편집장  dandi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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