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일 신임 시장의 건투를 빈다.

스탈린이 신임하던 충직한 졸개로서 충성을 다하던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이 죽은 후 그의 ‘격하 운동’을 벌이며 권력 장악에 들어간 사실을 빗댄 우스개라던가?

스탈린이 흐루시초프에게 어려움에 직면할 때 하나씩 펼쳐보라며 세 통의 봉투를 건넸단다. 서기장에 오른 후 첫 번째 봉투를 여니 “전임자를 깎아내리고 공격하라”라고 썼다. 잠자코 따랐다. 얼마 뒤 다시 어려움에 부닥쳐 열어본 두 번째 봉투에는 “언론을 장악하라” 했으니 가만히 실행했다. 그리고 막바지 진땀 날 때 열어본 세 번째 봉투에는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어서 도망가라”라고 적혀있었다. 숙청된 뒤끝은 비참한 말로가 기다리는 것이 그 동네 풍토임에도 실각 후 감옥은커녕 별장 지니고 희수까지 살았던 흐루시초프에 얽힌 농담이다.

‘철의 장막’이리 부르던 쓰미한 곳에서 끌어온 유머이긴 하지만 곱씹을만한 시사점이 있다. 그게 어떤 유형의 권력 교체이건 어떤 승패의 과정을 겪었건 절차를 거쳐 선출된 공복의 승계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전임자가 공들여 구축한 정책의 지속 여부에 따라 진보와 답보와 퇴보로 갈라질 수 있으니 말이다.

임기를 채우고 떠나는 관장의 머릿속에는 자부심과 아쉬움이 점철된 만감이 교차하는 소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겪은 자만이 느끼는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의 축적치이다, 그러니 그것이 어디 개인의 추상 속에만 저장될 물건이겠는가. 그것은 믿어주고 뽑아주고 윗자리에 세워준 이들의 나은 미래를 위한 자양으로 쓰임이 낫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전임자는 뽑힌 자로서의 특별한 책임감으로 후임자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 그간 정책 최고 결정자로서 깨치고 닦은 노하우를 전함이 옳다고 본다. 그것은 ‘인수위원회’라는 의례적 접수과정과는 다른 고갱이의 전수일 것이다.

▲ 홍창신 칼럼니스트

나는 진주의 전임과 신임 시장이 촉석루에 올라 강 건너 대밭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서로의 꿈을 나누는 상상을 한다. 자신을 키운 고장을 어떻게 만들고 싶었으며 그래서 어떤 그림을 그렸으며 난관은 무엇이고 보람은 무엇이었으며 누가 북돋워 줬고 어떤 놈이 미웠으며 억울한 점은 무엇이었고 자부심은 어떤 것이었으며.......

봉수대와 비봉, 선악에서 시내를 굽어보며 비빔밥집에서 혹은 냉면집에서 천천히 진주성을 거닐며 조곤조곤 얘기 나누는 모습을 그렸다. ‘당락’이라는 삼엄한 갈림길에서 낙선의 편에 선 사람의 심정이야 한시바삐 훌훌 털고 일어서고 싶을 것이지만 ‘진주 사람’으로서 자신의 관장체험이 승계됨으로써 진보의 과정으로 쓰인다는 생각과 선배의 조언이 선정의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는 마음으로.

이창희 시장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8년 공과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야 눈 밝은 이에게 맡겨둘 일이나 변두리 시민으로서 좋고 궂었던 느낌도 하마 소용에 닿을까 두어 가지 짚어본다. 나는 이 시장 재임기간에 남강을 따라 흐르는 길이 미려하게 꾸며지고 편리하게 다듬어진 것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공들여 가꾼 둔치를 걸으며 얻는 여유는 ‘진주에 산다’는 시민적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장애도시’를 선포해 어린이 장애인 노인 모두에게 유용한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시 개발에 준용하겠다는 계획은 미래를 위한 획기적 시도였다. 시민 전반의 인식확산에는 미흡했지만 발전시킬 필요와 가치가 넘치는 사안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남강은 층하 없이 시민을 고루 대했다. 그런데 그 강을 ‘축제’의 이름으로 가림막을 쳐 막았던 것은 과한 처사였다. 어려운 재정문제를 타개하겠다는 것이 충심일지라도 오랜 시간 내 것인 양 끼고 살았던 강을 향한 시민 정서에 금을 그을 수는 없는 것이다.

반대 의견을 말하는 이들을 소수로 치부하고 권위적 태도로 일관한 것 또한 눈살 찌푸리게 했다. 자신이 주장하던 바 ‘청렴과 관록’의 힘으로 대화와 포용의 여유를 보였다면 더 나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다.

조규일 시장이 취임하자마자 ‘시민소통준비위원회’를 만들며 빨강 일색의 우군만이 아니라 푸르고 누린 각색의 진영 인사를 위원으로 위촉했단 소릴 들었다. 좋은 시작이다. 부디 그런 초심이 퇴임까지 이어지길 기대한다. 현안인 시내버스 문제도 그런 전향적 발상이면 능히 해법을 찾지 않을까 싶다. 부산교통의 증차를 둘러싼 엇갈리는 주장에 보태지는 억측을 불식시키는 의미로 시장의 직접적인 의견표명도 생각해볼만 하다.

새 시장은 ‘대첩광장’이라 부르는 부지의 성격과 용도에 관한 각계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들었으면 한다. 그 땅은 세금으로 얻은 소중한 시민의 자산이며 천년 도시의 ‘랜드 마크’로 점 찍힐 요긴한 위치에 있다. 이름은 광장의 성격을 담는 상징인바 ‘대첩’이라니 당치 않다. 임진년에 승리했을지라도 계사년엔 성안 사람들이 몰사한 것이 진주성 전투다. 광장은 진주의 역사와 미래의 희구를 담아 물려줄 유산이다. 부디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는 산파로서 역할 해주길 바란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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