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왜곡, 호도하는 수구세력에 속수무책

내년도 최저임금이 10.9% 인상률에 8,350원으로 확정됐지만,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또 사업주는 사업주대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어 갈등의 골이 좀체로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편의점 주인들을 비롯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초 대선 공약인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안의 가장 큰 문제는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바람에 실제적인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무력화됐다는 것이다. 10.9%의 인상효과가 온전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국회의 산입범위 개편에 따라 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단계적으로 내년부터 최저임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결정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서 멀어진 것은 물론, 산입범위 확대로 실질 인상률은 한 자릿수에 그치는 ‘최악의 인상률’이라고 반발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약 20만 명의 노동자들은 10.9%가 아니라 2.2%의 인상 효과밖에 못 누리는 결과가 된다. 반면 소상공인들은 임대료와 재료비, 가맹비 등을 손댈 수 없는 상황에서 인건비만 올라 생존권을 위협받게 됐다고 말한다.

▲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최저임금은 ‘을’들만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외견상 ‘을’과 ‘을’간의 싸움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 모든 사태를 불러일으킨 주범이랄 수 있는 ‘갑’, 즉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본사, 건물주, 카드회사 등이 입을 다물고 시침을 떼고 있기 때문이다. 무책임한 '갑의 침묵'이라고 할만하다.

중소기업은 원청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압력 등에 시달리고 소상공인들은 건물주들의 임대료 인상과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에 휘둘리고 있다. 대기업이 납품단가만 제대로 올려줘도 최저임금 인상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영세상인들도 임대료 급등을 피할 수 있다면 최저임금 상승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최저임금의 충격을 덜어주어야 할 재벌기업과 조물주보다 높다는 건물주들은 하청기업과 임차인들의 호소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귀를 막고 있을 뿐이다. 불합리한 계약구조를 개선하고 로열티를 내려주거나, 상생을 위해 더 많은 점포운영보조금을 지원해 준다는 ‘갑’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는 한편, “근로자와 영세자영업 간 ‘을과 을의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며 본사에 가맹수수료 인하와 근접 출점 제한 등을 요구했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등의 가맹점주 모임인 전국가맹점주협의회도 “지배계층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약자 간 싸움을 조장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며 본사에 부당한 물품 강요 중단 등을 요구했다. 자신들의 주적은 최저임금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아니라 ‘갑질’의 주범인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탐욕과 무관심 때문에 최저임금으로 인한 갈등이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증폭, 격화되고 있는 데는 당파싸움에 바빠 산적한 법안 처리를 미루어 온 국회와 함께 조중동과 경제신문 등 친재벌 일변도의 보도태도로 여론을 오도, 왜곡하고 있는 수구언론들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기득권 세력에 우호적인 수구언론들은 최저임금이 고용불안, 경기악화 등 모든 경제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매도하고, 저임금 노동자와 중소자영업자들 간의 싸움을 부추기면서 최저임금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대기업·가맹본부·카드사 때려 최저임금 고통 떠넘기기”(조선일보) “최저임금 부담 기업에 떠넘기는 김상조”(중앙일보) “대기업·가맹본사·건물주 전방위 압박”(한국경제) 등의 제목을 보면 이 신문들이 재벌기업의 기관지나 사보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최저임금을 둘러싼 찬반논쟁과 그에 따른 정책의 잘잘못을 유지, 교정, 개선해서 최적의 절충안을 마련해 ‘최대다수의 만족’을 끌어 낼 최종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그런데 대통령 문재인의 사과에서는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공약을 사실상 포기한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정부의 경제팀장 격인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이 하반기 경제 운영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했기 때문이다. 김동연은 최저임금 인상을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와 일치하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럴 경우, 최저임금 인상 공약만 물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재벌개혁’ 등 경제 민주화의 바탕 위에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경제’로 성장동력을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큰 그림자체가 좌초하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잇따라 포착된 몇 개의 발언과 사진들의 기호는 ‘개혁 후퇴’를 가리키고 있기도 하다. 청와대 경제정책팀 경질과 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의 진보진영 시민단체 비판, 그리고 대통령 문재인이 인도 방문시 가석방으로 풀려난 삼성재벌 총수 이재용과의 만남에서 일자리를 늘려달라고 한 건 재벌에 대한 유화 제스처인가, 아니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급기야 7월 18일, ‘촛불혁명’의 완수를 기원하는 지식인 323명은 “담대한 개혁을 굽힘없이 밀고나가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최근 사회경제 개혁을 포기하고 과거 회귀적인 행보를 보인다”며 “사회·경제 개혁의 실패는 민심 이반과 개혁동력의 상실로 이어지고, 이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안을 추진할 때 발본적 재벌개혁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지불능력을 키워줄 경제민주화 정책이 결합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정부가 미적거리는 바람에, 마치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 자영업자의 경영 부진과 일자리 소멸의 주범인 양 호도되고, 그로 인한 경제적 약자들 간의 갈등이 부각되었다고 질타했다.

또 문 정권이 취임하면서 내걸었던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세 바퀴 경제를 성공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불로소득 방지와 기업의 투자의욕‧노동자들의 근로의욕고취인데 집권 후 1년이 다 가도록 보유세제 개편을 방기했으며, 특히 지불능력이 큰 대기업이나 건물주에게 부과하는 토지 종부세는 전혀 건드리지 않아 개혁의지는 말뿐임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결론적으로 지식인들은 집권 1년 2개월을 지나면서 문재인 정부는 경제개혁 청사진을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개혁의지도 박약하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정권 실세들이 한반도 평화무드에 취해, 뿌리 깊은 적폐구조는 건드리지 않은 채 약간의 인적 청산과 ‘개혁 시늉’만으로 다음 총선과 대선을 대비하는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규정하고 대통령부터 과거 정책에 안주하지 말고 촛불시민만을 보고 담대한 개혁정책을 관철시킬 것을 주문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제개혁 실패와 민심 이반이 한반도 평화의 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촛불혁명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이 기억해야 할 말이 있다. 그의 친구이기도 한 고 노무현이 퇴임 직후 했다는 말이다.

“내가 잘못했던 거는 예산 딱 가져오면 색연필 들고 ‘사회정책 지출 끌어올려’ 하고 위로 쫙 그어버리고, ‘경제지출 쫙 끌어내려. 여기에 맞추어서 숫자 맞추어서 갖고 와.’ 대통령이면 그 정도로 나가야 되는데, … ‘무슨 소리야 이거, 복지비 그냥 올해까지 30%, 내년까지 40%, 후 내년까지 50% 올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 그래 무식하게 했어야 되는데 바보같이 해 가지고….”

지식인들의 고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나중에 노무현처럼 후회하지 말고 현직에 있을 때 개혁정책을 최대한 밀고 나가라는 말이다. 정권의 성패는 외교, 안보, 통일 분야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경제에서 갈린다는 사실도 아울러 기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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