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존치를 주장하는 분들의 몇 가지 우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오는 7월 7일 서울의 광화문 광장에서는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가 대대적으로 열린다고 한다. ‘낙태죄’는 1953년 대한민국 형법 제정 당시 기존 형법의 존치안과 삭제안이 표결에 붙여진 가운데 존치안이 다수표를 얻어 유지된 것으로 1912년 일제의 의용형법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법 폐지 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낙태죄의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그리고 낙태죄가 형법에 존재함으로써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받아 왔다.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는 이런 고통 속에 있었던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집회이다. 낙태죄가 국민의 생명을 존중한다는 법의 목적에 충실하기 보다는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함으로써 오히려 불법적이고 음성적인 낙태를 양산하여 여성들을 심각한 건강상의 위험에 빠트리고 연인이나 배우자가 여성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 법의 목적에 충실한 의미로서의 낙태죄는 이미 사문화되었으므로 낙태죄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또한 지난 5월 24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소송에 대한 공개 변론에서 "현행 낙태죄는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낙태건수를 줄이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낙태죄 처벌 대상이 '임부'와 '낙태하게 한' 사람에게 한정되고, 임신중절 과정에서 배우자 동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남성에 의한 협박 또는 보복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낙태죄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 강문순 칼럼니스트

낙태죄에 관한 우리 사회의 논의는 주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논쟁으로 이어져 왔다.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인간의 ‘생명권’에 초점을 두고 태아라 하더라도 생명을 없애서는 안 되며, 낙태를 하는 것은 이러한 인간의 생명을 없애는 일이므로 범죄로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인간의 생명은 존중되어야 하고 누구도 그 생명을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태아의 경우에는 어머니의 생존권이 보장되어야 태아의 생명권도 가능하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몸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생존권은 함께 가야 하는 것이지,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자기결정권 혹은 생존권이라는 논쟁 구도로 이어지는 것은 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는 분들의 몇 가지 우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먼저 생명경시풍조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낙태죄를 폐지하면 한 생명을 지우는 낙태를 함부로 할 것이라는 우려이다. 그러나 낙태 문제에 대해서 제일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임신당사자이다. 하나의 생명이 자신의 몸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누구보다 태아의 생명권과 이후의 태아의 삶, 그리고 임신을 유지하거나 임신을 중지했을 경우의 자신의 삶, 수술의 위험 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깊은 고민 끝에 내리게 되는 것이 임신 중지 혹은 임신 유지의 결정이다.

그리고 생명경시의 본래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면 생명경시란 단지 타인이 다른 생명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 즉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내 눈 앞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을 나 몰라라 하고 강제로 임신을 유지하게 하는 것 또한 생명경시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는 무분별한 낙태와 문란한 성생활이 만연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5월 24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소송에 공개 변론에서 법무부가 ‘낙태죄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성교는 하되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성교는 하되 책임지지 않는 남성에 대해서는 왜 처벌하지 않는가? 임신의 유지와 출산 후 양육의 과정에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남성들은 왜 법에서 사라졌는가? 남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여성과 의료인만을 처벌하는 낙태죄가 성교와 그 책임에 대한 규범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이처럼 생명경시풍조가 확산될 것이라거나 무분별한 낙태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는 여성들에게는 생각하는 뇌가 없거나, 태아에 대한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아 여성에게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과 결정권을 줄 수 없다는 여성비하의 논리로 보이기도 한다.

다음으로는 낙태죄 예외조항으로 낙태가 꼭 필요한 사람들은 낙태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모자보건법시행령 제 15조에 따르면 △부모에게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에 합법적인 낙태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증명하는 절차가 복잡하여 낙태가 가능한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질병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질환에서 규정한 것이어야 하고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 임신 24주 이내의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피해자 대부분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고, 산부인과에 고소장이나 법원 판결문을 들고 가야 하는 일도 생기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낙태죄가 법의 본래의 목적인 태아의 생명과 산모의 건강을 위해 작동되어 왔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낙태죄는 오히려 국가의 인구정책에 따라 낙태죄는 유명무실해졌다가 큰 문제로 불거졌다가 하는 양상을 보여 왔다. 1960, 70년대 국가는 산아제한을 위해 수없이 많이 일어나는 낙태에 눈감아왔다. 그러다가 2010년 이후 저출산이 국가적인 문제로 제기되자 낙태를 금지하여 출산율을 높이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16년 보건복지부가 시행규칙에 인공임신중절을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포함시키는 바람에 산부인과 의사들이 어떠한 낙태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것이 그 하나의 예이다. 이처럼 낙태죄가 본래의 의미인 산모와 태아의 보호를 위해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출산을 통제하는 기능으로 작용한다면 낙태죄는 존치가 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조사에 의하면 19세에서 44세의 가임기 여성 중에서 낙태죄를 찬성하는 비율은 77.3%에 이른다고 한다. 2017년 낙태죄폐지 국민청원에는 20만 명이 훌쩍 넘는 23만 명이 서명을 했다. 세계적으로도 5월 26일,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로 낙태죄 폐지를 결정했고, 6월 14일에는 아르헨티나 상원에서 14주 내 임신중절 허용 법안이 통과되는 등 낙태죄 폐지가 확산되고 있다. 또한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2011년, 2017년 두 번에 걸쳐 우리 정부에 임신중절을 비범죄화하고 처벌조항을 삭제하라고 권고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으로 낙태율을 줄이고, 국가의 출산율도 높이고자 한다면, 낙태죄를 존치함으로서 임신을 한 여성들을 범죄자로 만들어 그들에게 또 하나의 낙인을 찍을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심리적인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태아의 생명권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진 사람은 임신한 여성입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낙태를 선택하게 될 수도 있는데 태아의 생명과 충돌하는 가치로만 볼 것이 아니고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의 발언처럼 낙태죄 폐지가 우리 사회에서 새롭고 건설적인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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