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도 저놈도 조금 알고 나니 입에 댈 소주가 없다.

대한민국 국민주라고 하면 아무래도 소주가 아닐까 싶다. 판매량은 맥주가 더 앞서지만 서민들의 애환과 희노애락을 대변하기엔 역시 소주가 제격이다. 지금 우리가 흔하게 마시는 소주는 원래의 증류 소주가 아니라 주정에 물을 섞어 만드는 희석식 소주이다. 그래도 어쩌랴. 이제 소주 없이 한국사람을 설명하기 힘들고 지글지글 삼겹살, 탱탱하고 쫄깃한 회도 소주 없이 먹기는 너무 힘들다.

각 광역단체별로 1도 1주 정책을 시행했기에 경남에선 무학의 화이트나 좋은데이가 익숙하다. 하이트진로의 참이슬과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은 전국구 소주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부산의 대선도 우리가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소주이다.

나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 그런데 다른 선택권이 없는데다 소주를 너무 사랑하기에 그저 참고 마실 수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이 늘 서글프다. 소주회사들의 행태와 오너들의 실상을 알게 된다면 여러분도 편하게 "여기 소주 한 병 더요"를 외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소주회사의 민낯과 실체를 ‘대충’ 얘기해보려 한다. 깊이 얘기하면 술맛 떨어지니까.

▲ 백승대 450 대표

창원의 무학주조는 경남을 기반으로 한다. 화이트 소주와 좋은데이가 유명하다. 그런데 이 회사 좀 이상하다. 작년에는 좋은데이 리뉴얼 판매량을 늘리겠다고 임직원들에게 목표량을 정해주고 각서까지 받아 문제가 됐다. 직원들을 쥐어짜면 판매량이 오른다는 건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생각해봐도 촌스럽고 구질구질하다. 거기다가 회장의 ‘갑질’로 유명세를 탔던 회사이며, 향토 기업인데도 지역사회 환원이 적기로 유명하다. 주류회사들이 대부분 이미지 세탁이나 브랜드 평판을 위해 사회사업재단을 운영하는데 무학의 사회 환원금 액수를 알고 나면 서로 민망해질 정도다. 궁금하면 그 액수를 검색해 보시라.

향토기업 무학을 곱게 봐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부산, 경남에서 소주를 팔아 번 돈으로 수도권 공략을 하겠다며 맨땅에 헤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데이의 인기가 한창일 무렵 부산 경남의 세배 규모인 수도권 시장에 진입해 점유율을 늘려보려 했으나 지금 보면 좋은데이의 수도권 상륙작전은 실패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열심히 소주 마셔줬더니 그 돈으로 서울가서 삽질이라니. 우리말로 ‘쎄가 빠져라’ 뒷바라지 했더니 서울여자랑 바람 나버린 낭군 같은 건가? 그래서 나는 화이트와 좋은데이를 마시지 않는다.

부산의 대선주조도 무학과 마찬가지로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기업이다. 일본인이 운영하다 적산불하된것도 같다. 부산은 시원(C1) 소주로 한때 부산지역 점유율이 70%에 육박하던 철밥통 회사였다. 사실 소주회사 중에 제일 흥미로운 회사가 대선인데 까도까도 구린 게 나오는 양파같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매출로 별다른 노력 없이 부산에서 소주를 팔던 대선은 좋은데이의 부산 상륙으로 점유율이 10%대로 떨어지는 치욕을 맛보게 된다. 세월이 흘러도 부산에서 ‘시원 말고 뭘 마시겠어?’ 하고 안일하게 대처하다 안방을 내준 셈이다.

안방을 무학에 내주고 대선주조는 회사의 존폐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휘청이게 된다. 그때 대선은 어마어마한 이벤트를 들고 길바닥으로 나온다. 그건 바로 "대선 한 번 살리 주이소" 하는 대선 직원들의 '삼보일배' 퍼포먼스였다. 이것도 어디서 본것 같지 않나? 4년에 한 번씩 피켓들고 나와서 살려 달라 잘못했다 무릎 꿇고 절하는 사람들 우리는 지겹도록 봐왔지 않은가. 정치인이나 소주나 한 번 떠난 마음을 어찌 돌릴 것인가. 너 아니라도 찍어 줄 놈은 있고 너 아니라도 마실 소주는 있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박근혜의 비서실장 김기춘 때문에 농심 제품을 안 먹는데 김기춘이 비서실장으로 청와대 들어가기 전까지 대선의 시원공익재단의 이사장이었던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대선의 회장인 조성제는 그 유명한 엘시티 비리사건 때 이영복의 탄원서를 냈던 인물인데 이정도면 시원소주에 설탕을 타서 팔아도 나는 안 사먹는다. 방만한 경영과 김기춘에 엘시티까지.

부산시민들에게 차곡차곡 미운털 마일리지를 쌓아가며 다 망해가던 대선은 작년에 급반등한다. 작년 조기 대선을 앞두고 "대선으로 바꿉시다" 라는 기가 막힌 카피를 뽑아내면서다. 지난 대선과 이번 지방 선거에서 드러났듯 이 카피는 변화를 바라는 부산시민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결과 좋은데이에 내줬던 점유율을 50%대 까지 되찾아 오며 대선은 부산 탈환에 성공한다. 대선으로 바꾸자는 카피는 나도 인정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그저 무턱 대고 대선을 팔아주는 게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부산은 내가 제일 혐오하는 도시고 갈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시원을 마시지 않는다.

참이슬의 하이트진로는 소주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아득한 존재다.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합병하여 소주 팔아 맥주 적자를 메우는 것처럼 보이는 회사인데 얼마 전 아주 양아치 같은 짓을 벌였다. 젊은이들과 맥주 매니아들 사이에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IPA(인디아 페일 에일)라는 맥주가 있는데 국내에서 제일 인지도가 높은 제품은 '스컬핀'이다.

ATL코리아라는 작은 수입사가 벨라스트포인트라는 미국회사와 계약하고 5년 넘게 국내 Bar와 Pup을 중심으로 정말 꾸준하고 우직하게 홍보하며 판매량을 늘려왔다. 그런데 몇달 전 미국본사는 ATL코리아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새로운 한국 판매 파트너로 하이트진로를 선택했다. 하이트진로에 비하면 구멍가게도 안 되는 작은 회사가 몇 년간 닦아놓은 국내 IPA시장을 하이트진로가 가로채 버린 것이다.

하이트의 판매량 부진은 몇 년째 여전하고 수입맥주의 가격공세에 이익이 줄어든 하이트진로는 수제맥주와 새로운 수입맥주 판매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으려 한 모양이다. 그런데 번지수가 한참 잘못됐다. 하이트진로가 앞으로 스컬핀을 비롯한 벨라스트포인트사의 제품군을 수입하겠지만 예전처럼 다양한 라인업을 수입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IPA의 특성상 다양한 제품군이 존재하는데 인지도가 높고 잘 팔리는 것, 마진율이 높은 것 위주로만 수입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어린 아이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뺏는 것 같은 하이트진로의 만행 때문에 척박한 국내 수입맥주 시장에서 5년간 고생한 건실한 수입유통업체가 직격탄를 맞았고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다양한 맥주들을 맛 볼 수 있는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 이제 슬슬 나의 소주 참이슬을 보내줘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데 이놈도 저놈도 조금 알고 나니 입에 댈 소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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