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길들여야 한다. 시민의 이름으로!

고을 주(州)자를 이름으로 달고 있는 도시는 대개 강을 끼고 있다. 들여다보면 한자 주(州)는 내 천(川)자 사이에 세 개의 점이 찍힌 형상이다. 천(川)자는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이고 그 줄 사이에 찍힌 점은 흐르는 물 가생이에 이룩된 땅을 이르는 것이라. 처음 사람들이 뿌리내리고 살 맞춤한 취락 조건으로 물가를 꼽았을 터 오래된 도시 이름이 주(州)자를 얻은 연유일 것이다.

진주는 지리산과 덕유산을 수원으로 하는 남강을 복판에 끼고 네 개의 산이 병풍을 두른 분지 안에 옴팍 들어앉아 있다. 맑은 물 넉넉한 강 따라 너른 들이 펼쳐져 있으니 먹고살기 고만고만하고 기후 모질지 않아 사람들 성정이 순후하다 알려졌다.

하지만 쉬 순치되지 않는 반골적 기질 또한 본디의 생리적 기전인가. 성 안 사람들이 몰사할 정도로 항전한 계사년 전투나 탐욕스런 관리의 학정을 참지 못하고 맞서 싸운 임술년 농민 항쟁, 천대받던 백정들이 스스로 인간임을 선언한 형평운동 등이 진주를 거점으로 일어난 거친 변혁의 운동들이다.

▲ 홍창신 칼럼니스트

그러나 1963년부터 55년 동안 딱 한 번을 제외하곤 모두 기득권자의 손을 들어준 완고한 정치의 땅이기도 하다. 고향과는 열촌도 넘게 살던 이가 어느 날 중앙 권력자에 줄이 닿아 공천을 받으면 덜컥 국회의원이 된다. 일약 지역 최고의 권력자가 된 ‘의원’은 봉토에 납시듯 이따금 내려와 지역 방송에 얼굴을 비치며 위세를 과시한다. 그 권력의 무게가 결코 헐렁하지 않은 것이 국회의원이란 자가 입법기관으로서 지역의 민심을 위임받아 나랏일을 보는 것을 넘어 기실 ‘구역’의 관리권을 인수한 것에 다름 아닌 부가 배역을 할당받은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거기엔 토호 세력과 유착해 오랜 시간 이권을 주고받으며 떨어진 고물로 엮인 묵은 조직을 접수한 것이라는 속뜻이 들어있다. 따라서 그 본질은 이른바 확보된 ‘표’를 건네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기초의원부터 기초단체장에 이르기까지 공천받아 후보자가 되려는 자는 응당 의원 나리 슬하에 줄을 서야 하고 그의 눈에 들어야 ‘점지’ 받는다. 관리되던 조직은 당연히 그들의 당선을 위해 움직이고 그래서 당선되어 벼슬을 얻은 자는 충성을 서약한다. 그리하여 시장, 시의원, 도의원 명색의 생사여탈권까지 움켜쥐는 것이다. 그들은 자연스레 국회의원 하부조직의 관리자가 되어 의원의 재선을 위해 복무한다.

이 순환의 고리를 잡아 강고한 기득권 벨트를 얽으면 특별한 정치적 사변이 없는 한 어지간한 ‘관리 기술’만으로도 재선 삼선에 이를 수 있는 노다지가 그 판이다. 만면에 천사의 미소를 머금고 허리 꺾어 조아리고 다닐 때란 오로지 ‘선거’ 한철이다. 그것만 대과 없이 버티면 나머지 임기 내엔 명실상부한 ‘갑’으로서 그 숱한‘쫄’을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어찌 귀결될지 뚜껑을 열어봐야 알 일이지만 지금 ‘사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빨강 파랑 노랑 등으로 당색을 구별하는 전국의 색깔 지형에 이상 현상이 두드러진다. 파란색 명함을 내밀면 빨갱이 소리 듣기 십상이라는 대구는 보통 ‘빨간 당’ 후보만 나와 ‘무투표 당선’ 되거나 빨간 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만 겨뤘을 정도로 기울어졌던 곳이다. ‘반신반인’의 태생지에 걸맞게 상식 따위는 개나 물고가라는 이 못 말리는 꼴통 동네 시장 후보의 양당 지지율이 시방 엇비슷이 나온다는 것이다. 시위하던 중년여성의 애매한 ‘푸시’에 나뒹굴며 “꼬리뼈 실금” 운운하는 빨간 당 중년 후보의 처사가 뜬금없고 생뚱맞다 싶었는데 그게 나름 위기의식의 발로였던가 보다. 대구에 비기랴만 그래도 되우 만만찮은 우리 동네 진주 또한 어느 쪽의 일방적 우세는 아닌가보다. 놀라운 일이다

‘때’에 이르러서인가? 좀체 균열이 없을 것 같던 지각에 균열을 일으킨 것은 촛불이었다. 모질고 독한 싸움꾼의 혹독한 공격에도 고작 “이보세요”가 최강의 응수이던 범생이 변호사 ‘문프’가 그간 쌓인 폐단의 근본을 조곤조곤 까뒤집으니 이제 새 살이 보인다.

아무튼 이제 지방 권력의 순환 고리는 끊어지게 생겼다. 그러나 색이 바뀐다고 이 폐단이 사라지리라고 생각진 않는다. 단단히 살펴 골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누구이건 이제 “니가 제수 받은 벼슬은 내가 준 것이다. 누리고 싶으면 복종하고 충성하라!” 는 말로 그들을 길들여야 한다. 시민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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