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몰린 사법부, 검찰 수사로 진상규명하라

"양승태가 책임자로 있던 대법원은 고등법원까지 계속 승소해온 KTX 승무원 관련 판결을 이유없이 뒤집어 10년 넘게 길거리를 헤매어 온 해고 승무원들을 절망의 나락에 빠뜨렸습니다. 그로 인해 승무원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누가 이 억울한 목숨과 승무원들의 불행을 책임질 수 있습니까?"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요구하며 12년간 길거리와 법정에서 싸워온 KTX 승무원들이 29일, 대법원에서 기자들에게 쏟아낸 호소다. 지난 2006년 3월 1일, '선로 위의 스튜어디스'라 불리던 승무원 280명이 총파업에 돌입한 뒤 지금까지 이들은 형극의 세월을 살아왔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소송에서 KTX 승무원들은 1심과 2심에서 잇따라 승소함으로써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들의 꿈을 깨버렸다. 2015년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은 승무원 복직이 정당하다는 하급심, 즉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 그러면서 이미 지급한 월급도 반환하라고 명령했다. 해고된 승무원들 개인당 1억 원이 넘는 돈이었다. 이 와중에 3살 된 딸을 둔 승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사도 벌어졌다.

그런데 KTX 승무원들이 겪은 일은 이들만의 억울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1, 2심에서 승소했던 사건들이 대법원에만 가면 뒤집혔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만들려는 목적으로 청와대를 상대로 로비를 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고법원을 따내기 위한 거래나 흥정의 목적으로 당시 대통령 박근혜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법원장 양승태는 ‘사회정의를 지키는 최후 보루의 수장’에서 대단히 노회한 ‘장사꾼’으로 전락했다는 말이 된다.

▲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임종헌이 만들어 보고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을 보면 이 같은 정황은 분명히 드러난다. 이 문건은 19대 국회가 종료를 앞둔 상황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이 상고법원을 반대하자 ‘특단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로 작성됐다고 한다.

“사법부가 VIP(박근혜 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수행.”

사법부에서 작성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이다. 한 마디로 대법원이 정부에 우호적인 판결이 나오도록 협력해왔고 정권에 비우호적인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조율하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추상같은 엄정함이나 냉정함과는 거리가 한참 멀 뿐 아니라 정보기관의 음험한 냄새까지 풍겨온다.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은 내팽개친 지 오래다. 이런 자들이 사건 당사자들의 피눈물나는 구구절절한 고통을 이해했을 리가 없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더욱 가관이다.

문건이 나열한 ‘협조 사례’는 대통령 박근혜의 구미에 맞도록 윤색, 가공됐다. 그 내용을 보면 합리적 범위 내에서의 과거사 정립(국가배상 제한 등),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사회적 안정을 고려한 판결(이석기, 원세훈, 김기종 사건 등),

국가경제발전을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판결(통상임금, 국공립대학 기성회비 반환, 사건 등), 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KTX 승무원, 정리해고, 철도노조 파업 사건 등),

교육 개혁에 초석이 될 수 있는 판결(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 등이다.

문건의 내용은 반대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만큼 대중들의 상식에 배치되는 것이 많다.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가족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국가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거나 액수를 깎은 과거사 관련 대법원 판결을 “진정한 화해와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는 해결책”으로 분식했다. 사회정의 실현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을 받았던 판결들이다.

‘국가경제발전 최우선 고려’ 사례로 소개된 ‘통상임금’ 사건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면서도 체불임금 요구에 대해서는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헷갈리게 판결했다. 이것도 ‘노동자에게는 엄격하고 기업에는 관대했다’는 세간의 비판과는 반대로 ‘국정운영 뒷받침’ 판결로 소개됐다.

비정규직, 정리해고, 파업에 유독 엄격했던 판결들도 “4대 부분 개혁 중 가장 시급한 부분은 노동 부문의 선진화와 노동 생산성의 향상을 위하여 필수적인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바람직한 노사 관계의 정립을 위하여 노력”했다고 언급했다. 앞에서 본 KTX 승무원이 철도공사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본 판결도 이에 속한다.

대법원의 이러한 개념없는 판결로 정리해고된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들 여럿이 자살이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1심에서 승소했다 대법원에서 패소하는 바람에 받은 월급을 이자까지 붙여 다시 돌려줘야 했던 부담 속에 KTX 승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런데 개략적으로 살펴본 문건의 내용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게 더 큰 문제다. 다시 말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은 확보한 410개 문건 중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집행정지 관련 검토’ 등 3건만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특조단이 공개한 극히 일부 문건만 봐도 이런데 법원행정처는 ‘치유와 통합’을 내세워 문건을 대부분 비공개했다. 이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유린당한 사건 당사자들을 외면한 것일 뿐 아니라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당한 판사들을 모욕한 일이기도 하다. ‘세월호 사건’을 특정 법원의 판사에게 배당하는 방안을 검토한 사실도 특조단 공개로 드러나 파문은 점점 커지고 있다.

사법부 수장이 판결을 놓고 정권과 뒷거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법사상 초유의 사태 앞에서 온 국민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김명수 대법원장뿐이다. 현 대법원장 김명수는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인 전 대법원장 양승태를 고발조치함으로써 검찰로 하여금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도록 하라. 그것만이 나락에 떨어진 사법부가 살아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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