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만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술 앞에선 중요하다.

“위스키 맛을 잘 모르겠어요. 와인 맛을 잘 모르겠어요.”

장사를 하며 흔하게 듣는 말들이다. 몇 번 마셔 봤지만 뭐가 뭔지 모르겠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떤 향이 나고 어떤 맛이 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결국엔 잘 마시지 않게 되고 꺼려진다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다. 도대체 우리는 왜 위스키나 와인이 쓰고 독하고 떫기만 해서 친해지려 해도 좀처럼 친해지지 않는 걸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가?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우리는 백의민족이며 배달의 민족이다. 더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민족 특성이 있으니 그건 바로 소주 맛을 구별해 내는 민족이란 것이다. 우리는 ‘참이슬’과 ‘화이트’를 구별하고 ‘좋은데이’와 ‘처음처럼’을 구별해 내는 엄청난 민족이다. 도수 1도 안팎을 구별해 내는 장금이급 미각을 갖춘 민족이 바로 우리 민족이다. 

그렇다면 우리만 이런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는 걸까? 사실 소주 맛을 구별하고 딱 한 잔으로 브랜드까지 맞추는 우리의 엄청난 능력은 타고난 민족 특성이 아니라 꾸준한 연습과 실전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러분도 글 읽기를 잠깐 멈추고 자신이 일 년에 마시는 소주의 양을 한 번 가늠해 보시라. 일주일에 세 병이면 한 달에 열두 병, 일 년이면 144병이고 이 양은 거의 소주 다섯 박스다. 이렇게 20년이면 2880병 30년이면 4320병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예를 소주 3병으로 들었지만 대부분의 성인 남자라면 일주일에 마시는 소주의 양은 3병이 훌쩍 넘는다. 우리는 죽기 전까지 어마어마한 소주를 우리 몸에 들이 붙고 있다.

▲ 백승대 '450' 대표

우리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 오랜 시간, 많은 양의 소주를 마시며 연습과 훈련에 매진해온 것이다. 그 결과 눈을 감고 마셔도 소주 브랜드를 알아맞히고 미세한 알콜 도수의 차이를 찾아내 내게 잘 맞는 소주를 골라 마시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 계산을 위스키나 와인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와인박사, 위스키 ‘잘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위스키나 와인 등 흔히들 양주라고 부르는 다른 나라의 술은 그 술을 처음 접하게 되는 나이가 비교적 한국 술 보다 늦다. 또 거의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가격도 부담스러울뿐더러 우리와 달리 같은 종류의 술이라도 그 브랜드가 너무 많다. 위스키 좀 마셔봤다고, 와인 좀 따라 봤다고 어깨 힘줘봤자 그 사람이 죽기 전까지 이 세상 모든 위스키, 모든 와인을 다 마셔보지는 못 할 것이다.

외국인들이 맛있다고 ‘엄지척’ 하는 김치라고 해봤자 배추김치 깍두기가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고들빼기 파김치 오이소박이 우럭김치를 맛보여 주고 이것도 김치야. 어떻게 다른 것 같아? 라고 하면 외국인들을 어떤 대답을 할까? 뻔하지 않은가? 그들은 문화충격을 받거나 미각 혁명을 맛보게 될 것이다. 사실 나도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우리 어머니의 김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줄 알았다. 나이를 먹고 밖에서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어머니 김치맛을 평범하게 만들어 버리는 맛있는 김치를 너무나 많이 만났다. 하지만 지금도 어머니의 김치맛은 눈을 감고도 찾아낼 수 있다. 수십 년을 익숙하게 늘 먹어 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술도 그렇다. 자주 마시고 접할수록 그 술이 가지고 있는 미세한 차이와 매력까지 찾아내고 결국엔 그것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열 번으로 안 되면 백번도 찍어 볼 일이다. 횟수엔 장사가 없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될 때까지 시도해 보면 된다. 위스키나 와인과 친해지려면 자주 마셔보는 방법 외에 정도는 없다. 나랑 맞지 않는다고, 잘 모른다고 금방 포기해 버린다면 위스키나 와인이 주는 또 다른 깊은 세계와 다양함은 결코 알지 못한다.

술도 결국은 음식 중의 하나이고 지역에 따라, 주식이 무엇이냐에 따라 재료와 제조방식, 맛과 향이 달라진다. 위스키나 와인 맛을 모르는 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남보다 몇 병 더 마셔봤다고 으스댈 것은 더욱 아니며 공부하듯 암기하며 외어야 하는 것도 절대 아니다. 암기하듯 테이스팅 노트를 달달 외워봐야 실제로 내가 그런 향이나 맛을 못 느낀다면 그만 아닌가? 술에서 가죽향, 벽돌향, 후추향 따위를 어찌 알아낸다고 그렇게 써 놨는지 나는 아무래도 모르겠다.

익숙하지 않은 술을 만났을 땐 “어머 이건 내 취향이 아니야” “나는 이거 잘 안 받더라”가 아니라 그냥 “난 이거 많이 안 마셔봤어” “이거 처음 마셔봐” 가 적당하지 않을까? 자주 만나지 못해 데면데면한 사이의 먼 친척처럼 친하진 않지만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술 앞에선 중요하다.

이제 이름 모를 낯선 양주에게 어서와 내 위장은 처음이지 라는 자세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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