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이재용 봐주기’에 분노하는 민심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을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국민의 분노를 샀던 정형식 서울고법 형사13부 부장판사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정형식을 파면하라는 국민청원 답변 내용을 청와대가 대법원에 전달한 것을 두고 말이다. 이에 대해 ‘비판 성명’을 내야한다는 의견이 각 지역 판사들의 모임인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상정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전말을 따져보자.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이재용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자, 정형식을 파면하라는 국민청원운동이 벌어졌다. 사흘 만에 20만 명을 넘어서자 청와대는 지난 2월 22일, 이를 법원행정처에 전달했다. 그러자 이 행위의 적절성에 대한 찬반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일부 판사들이 ‘법과 양심에 따라서 판결을 내리게 돼있는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반면, 청와대는 단순 전달에 그쳤다고 해명했다. 담당 비서관도 “청와대가 판사를 파면하거나 감사할 권한은 없다. 법관이 재판 내용으로 인사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면 사법부의 독립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일선 판사들의 반응이다. 울산지법 김태규 부장판사가 “청와대가 법관 파면 청원을 법원행정처에 통지한 것을 반대하며,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하는 성명서 채택을 제안”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오는 6월 11일에 열리는 법관대표회의에서 안건으로 논의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그런데 부장판사 김태규가 내세우는 논리는 민심과 많이 동떨어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회의원의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해 달라는 청원은 27만 명이나 서명했지만, 청와대가 삼권분립을 이유로 국회에 알리지 않았는데 23만 명이 서명한 판사 파면 청원은 굳이 그 내용을 통지했다”며 “외부로부터 사법권 침해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행정부가 될 공산이 크다.”는 이유로 재발방지를 위해서 경고성 성명을 내야한다는 논리다.

▲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형식논리를 앞세울 뿐, 정작 청원자들의 시각, 즉 밑바닥에서 바라보는 사법부에 대한 여망과 기대는 놓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손가락 끝을 보면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김태규의 주장을 요약하면 왜 청와대는 동렬에 있는 법관과 국회의원을 똑같이 대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말하자면 선출직과 임명직이라는 점이 다를 뿐 같은 공직자인 판사들을 국회의원들보다 낮게 취급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종의 불만 섞인 투정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청와대에 파면청원을 낸 국민들이 삼권분립의 취지를 몰랐다거나, 청와대로 하여금 실제로 정형식을 파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갑남을녀를 대변하는 이들은 삼성하면,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거나 백혈병 등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도 흔쾌하게 인정하거나 단 한 번의 반성도 하지 않는 매몰찬 기업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삼성의 창립자인 이병철 회장의 유훈은 유명하지 않은가.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 노동조합은 있을 수 없다.” 한국의 재벌기업 중에서도 삼성의 반노조정책은 가장 악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같은 반노조적 방침 때문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쫓겨나거나 감시당하면서 살아야 했는지를 한국인이라면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 그러던 삼성이 “부모를 잘 둔 것도 능력”이라면서 제 나이 또래의 서민 자제들을 경멸하던 정유라에게는 온갖 지원과 아부를 아끼지 않았고 뇌물을 갖다 바치며 불법을 저질러왔던 것이다. 그런데 정형식이라는 판사가 2심 재판을 맡으면서 1심 재판부에서 받아들인 증거를 상당 부분 자의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 결과 이재용을 집행 유예로 풀어준 것이다. 그리고는 “법리는 명확하다”는 둥, 사법부 판결을 무슨 신성한 영역인 양, 비판이나 평가를 초월해있다는 식의 자폐적 자기합리화 논리를 펴는 데 대해 분노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이례적으로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말이다. 일반인이 보기에도 명백한 사실을 재판부가 너무 쉽게 무시한, 상식을 짓밟은 최악의 판결이라는 인식이 그만큼 국민 저변층에 넓게 깔려있었다는 것이다.

‘이재용 봐주기’의 편파성은 롯데그룹 회장 신동빈과의 양형의 불균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재용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법원이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해 얼마 뒤, 신동빈에게는 뇌물 공여 혐의로 실형을 선고한 것이다. 과연 삼성은 달랐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입소문이 파다했다. 삼성은 권력의 일방적 강탈행위에 수동적으로 끌려갔을 뿐이고, 롯데는 반면에 적극적으로 뇌물공세를 폈다는 각기 다른 법원의 판단은 국민들의 지지를 거의 얻지 못했다. 이 같은 바탕위에서 국민은 담당 판사의 신상을 털어 온라인을 도배했고, 판사는 판결로 말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통하는 특정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이전투구 속에서 사법부의 권위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법원행정처에서 판사들의 정치적 성향을 사찰해온 정황이 드러난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양승태 전임 대법원장에게 비판적인 판사들을 사찰한 내용과 더불어 특정 사건을 놓고 청와대와 뒷거래를 한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말이다. 대법원장 양승태 체제 아래서 사실상 ‘사법부의 국정원’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이는 법원행정처의 전면적인 체질개선도 시급한 판이다. 열어보지 못한 파일 760여 개 중 300여개는 이미 삭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돼 있는데도 추가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궁금증과 의혹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백일하에 드러난 대기업들의 편법승계와 온갖 부정부패, 시장교란행위는 오랫동안 한국사회 발전을 지연시켜온 재벌개혁문제가 이제 풀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숙제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재벌개혁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선진화된 사회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법부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사회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2005년 이상호 기자의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드러난 사실은, 삼성이 검찰 등에 떡값을 돌려 어떻게든 사법기관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사법부가 한 사회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선을 제시하는 기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개혁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도 사법개혁이 선행되어야 하며, 아울러 재벌개혁은 궁극적으로 사법개혁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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