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통일보다 어려운 일

‘헬조선’의 '영토확장 사업'이 돼서는 안된다 서성룡 편집장l승인2018.04.29l수정2018.04.3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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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놓칠세라 손을 굳게 잡은 두 사람이 발길을 돌려 낮은 담장을 다시 한 번 넘었다 돌아오는 장면에서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컥’ 감정 선이 무너졌다. 나는 본래 통일에 대한 열망이 크거나 남다른 민족애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남북 동포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두 뺨을 눈물로 적셔도, 이산가족이 상봉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창에 얼굴을 맞댄 채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장면을 볼 때도 동화되기 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앞섰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다시 끄집어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눈물과 상처를 동원해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는 ‘종전’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구체적인 목표들이 먼저 논의되고 조율된 상황에서 만남이 성사됐다. 각자 다른 계산기를 두드리는 미국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모처럼 한 목소리로 한반도에 찾아온 ‘평화의 봄’을 축복하고 응원했다.

공동선언문에는 이전의 모든 합의문을 뛰어 넘는 평화에 대한 메시지와 금기시해 온 단어들이 실렸다. 우리 문제는 남과 북이 주체가 되어 해결한다는 선언, 일체의 적대적 행위를 중지한다는 내용, 무엇보다 올해 안에 6.25 전쟁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해 주변국과 4자회담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북이 이미 개발을 끝낸 것으로 알려진 핵무기를 포함해 한반도 전역을 비핵화 한다는 공동 목표를 세운다고 선언했다.

“2018년 4월27일은 멈춰졌던 시계 초침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말대로 10년 전에 멈췄던 통일로 가는 시계는 다시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몇 년 안에 아니 어쩌면 그보다 빨리 이 땅에 도둑처럼 ‘통일’이 올지도 모른다. 성급한 사람들은 경의선을 타고 대륙횡단 열차를 이용해 한반도 이남에서 유럽까지 기차여행을 떠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 서성룡 편집장

하지만 찬란한 꿈속에서만 노닐기에는 현실에 드리워진 그늘이 너무 두텁다. 비단 이번 정상회담을 ‘위장 평화쇼’라 폄훼하고 있는 한 야당 대표의 망령든 저주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 잠꼬대 같은 소리는 한반도를 훈훈하게 덥히는 봄바람을 잠시라도 방해할 ‘꽃샘추위’도 만들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색깔론으로만 연명해 오다 마침내 말라죽어가고 있는 냉전 기생 정치인의 마지막 단말마로 들린다.

그보다 훨씬 깊고 짙은 그늘은 이미 우리가 충분히 겪고 있는 ‘자본’의 음습한 힘이다. 재벌가 회장과 부인, 두 딸이 그토록 오랜 세월 기업을 사유화 하고 노동자들을 ‘종’ 취급하며 ‘갑질’해도 별 탈 없이 왕족처럼 살아갈 수 있었던 남한의 토양. 그 토양은 다른 한편 하루 36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그 주된 원인이 생활고 때문이라는 부끄러운 통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통일조국 이후엔 북한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옮아갈 위험이 있다. 이미 민통선 안쪽 땅은 없어서 못 파는 상태라 하고, 파주와 연천의 땅값은 남북 대화가 재개될 때 이미 급등했다고 한다. 감옥에 살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입에서 ‘통일 대박’이란 말을 괜히 튀어나온 게 아닐 것이다. 자본의 눈으로 볼 때 통일은 투기로 북한 땅을 사들이거나,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아 큰 이윤을 남길 기회로 보일 것이다.

개혁 개방은 남한의 정치 경제가 북한으로 밀고 들어가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헬조선’의 영토 확장사업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통일이 되고 경의선이 완공된다고 해서 누구나 대륙횡단 열차로 유럽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일 많이 하는 구조에서 그만큼 긴 휴가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과 북이 모두 질적으로 변해야 한다. 체제와 이념을 서로 인정하는 자치연방국으로서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극복해 나가는 방식이면 좋겠다.

토지는 공개념이 도입돼야 하고, 노동자 인권은 더욱 보장돼야 하고, 조직화가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는 더욱 성장해야 하고, 비례대표 확대를 통한 다당제와 지방분권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북쪽 또한 폐쇄된 세월 켜켜이 쌓인 문제들이 많다. 개혁개방으로 사회 체제가 일시에 붕괴되지 않기 위해선 민주주의와 인권이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성장해야 한다. 권력 세습을 청산하고 언론자유와 다양한 정치 결사체를 인정하는 정상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이 국회 논의조차 되지 않고 무산된 것은 너무나 안타깝다.

또한 일본까지 건너가 정상회담에 고춧가루를 뿌려대는 야당 대표를 보면서 어쩌면 대한민국 이익집단이 탐욕을 줄이고 정상적 사고를 하는 것이 남북통일 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의 ‘갑질’과 횡포를 통제하고 노동자 인권과 정치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일은 통일 전이나 이후에도 지속돼야 할 영원한 과제일 것이다. 다가오는 6.13 지방선거가 이를 위한 주춧돌을 놓을 수 있을지 말지 결정하는 중요한 고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서성룡 편집장  whon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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