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득한 시간과 공간 속에 나는 홀로 서 있었다.

마을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농기계 소리는커녕 사람 발자국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일시에 사라진 듯했다. 이따금 공허하게 울리는 개짖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리곤 했다. 집배원이 다녀가는지 골목 속으로 한 줄기 오토바이의 굉음이 이어졌다 사라진다.

경로당에서 봄나들이 가는 날이다. 해마다 봄이면 봄나들이를 간다. 이 봄나들이가 한 해 외출의 전부일 이웃들도 많았다. 장롱 속에 아껴 넣어둔 봄옷을 꺼내 입어보는 유일한 날이 바로 오늘일 것이다. 바닷가에 가서 유람선을 탈 거라고 했다. 먼 거리여서 걱정하는 노인들도 더러 있었고, 생선회 먹을 상상에 기대에 찬 이웃들도 더러 있었다.

▲ 김석봉 농부

이른 아침 마을 입구에 도착한 관광버스는 몇 번이고 경적을 울렸다. 한바탕 골목이 소란스러웠다. 돌담 돌배나무에 핀 하얀 배꽃처럼 화사하게 차려 입은 노인네들의 행렬이 골목 끝으로 이어졌다. 참가비 삼만 원은 결코 노인네들의 발걸음을 붙잡지 못했다. 거기에 덧붙여 찬조금으로 낼 지전 몇 닢도 챙겼을 것이다.

서너 해 전, 마을일을 할 때 딱 한 번 봄나들이 관광버스를 탔던 적이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술잔이 돌았고, 뽕짝메들리가 차창을 거세게 때리기 시작했고, 아낙네들의 막춤이 통로를 가득 메웠었다. 날이 어두워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 속은 온통 그 열기에 젖어있었다. 봄나들이 관광버스는 마법의 도가니였다. 고된 밭일에 아팠던 다리도 허리도 다 낫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남정네들은 멀뚱멀뚱 창밖만 바라보고 있고, 아낙네들은 모두가 통로로 나와 얼싸안고 막춤을 추었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확 풀어버리는 날이다. 봄나들이를 다녀온 다음날은 춤추기에 지쳐 드러눕기라도 하련만 더 씩씩하게 밭으로 나가신다. 그야말로 묘약이고 마법이다.

하루 종일 밭일을 했다. 낼모레 또 비가 올 거라 해서 일을 서둘렀다. 하루 내내 밭이랑 만들어 도라지 씨 넣고, 강낭콩 심을 밭을 장만하였다. 아내는 읍내 문화센터에 그림 배우러 나가고, 쉴 참도 없이 괭이질을 하는 오후나절에 아들 내외가 손녀딸과 들나들이를 왔다. 두렁이와 이랑이도 함께 왔다.

“야, 오려면 쉴참이라도 좀 챙겨 오지.” 덜렁덜렁 걸어오는 아들놈의 빈손이 더욱 철없어 보였다. 해맑게 웃으며 나를 향해 달려드는 서하를 보듬어 안아 번쩍 들어올렸다. 한 마리 나비가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듯했다. “아이고, 내가 그 생각을 못했네...” 아들놈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카페 문은 어쩌고...” 가만히 서하를 내려놓으며 걱정스런 어투로 말했다. “그냥 문 일찍 닫았어요.” 카페에 드는 손님도 별로 없었을 것이련만 보름이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참 맑고 밝았다.

흙이 무척 부드러운 밭이어서 만들어둔 밭이랑은 금세 엉망이 되었다. 밭이 목욕탕이라도 되는 양 서하는 아예 흙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기어가고, 두렁이는 그 큰 몸집으로 이랑을 허물면서 천방지축 뛰어다닌다. 고요하던 밭이 한순간 웃음소리로 소란했다.

괭이질에 아픈 허리를 펴고 물끄러미 서하가 노는 모습을 본다. 보름이와 흙바닥에 주저앉아 두꺼비집놀이도 하고, 내 괭이자루를 끌고 다니며 괭이질을 흉내내기도 한다. 두렁이는 북실북실한 털이 거추장스러운지 바닥을 뒹굴며 흙목욕을 즐기고, 얌전한 이랑이는 나와 함께 앞발을 꼬고 앉아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참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사진을 찍었다.

한순간 꿈이었나. 모두들 돌아가고 다시 홀로 남았다. 마을과 산자락은 온통 꽃에 물들었다. 하얀 배꽃과 진분홍 복사꽃과 연분홍 산벚꽃이 연두빛 새잎들과 어우러져 형용할 수 없을 경치를 만들었다. 그 아득한 시간과 공간 속에 나는 홀로 서 있었다. 높다란 산이 있고, 산정 아래 골짜기엔 아직 희끗희끗 잔설이 남아있는 배경 앞에서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난 해 겨울부터 대처로 일을 하러 나가려 마음 먹었었다. 완도 전복 양식장에라도 가려 했는데 허사가 되었고, 이리저리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했는데 신통치가 않았다. 정작 일자리가 있어도 쉽게 떠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무슨 까닭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도무지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마땅히 내세울 기술도 학벌도 인맥도 없으니 무슨 일에든 적극적일 수 없는 삶을 살아왔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몸에 밴 습성이 그러했다. 그런 세상이려니 하면서도 졸몰해 가는 내 인생을 톺아볼 때는 괜스레 감정이 격해지고, 공연한 심사를 부려보는 것 같기도 해서 스스로도 답답해 했던 적이 많았다.

그런 내 모습이 처참해 보일까. 그럴까. 그렇겠다 싶어 강하게 도리질을 했다. 씨감자도 묻었고, 봄배추 모종도 심었다. 나는 농부다. 농부가 대처로 나간다고 한들 무슨 일을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일을 한들 그게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겠는가. 대처에서 일을 하고 일당으로 돈을 번다고 한들 애벌레처럼 흙밭을 뒹구는 서하와 두렁이와의 간격, 그 완전한 행복과 평온을 맛볼 수 있겠는가.

그래, 이제부터는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편한 마음으로 나이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년부턴 경로당 봄나들이에 따라 나서면서 화사하게 봄옷도 꺼내 입어보고, 헛물만 들이켠 듯한 그간의 세월을 아낙네들 막춤 춤사위에 묻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산그늘이 빠르게 마을을 덮고 있다. 눈이 녹지 않은 지리산을 넘어온 바람이 아직은 서늘하다. 두 이랑만 더 만들고 돌아가야지. 다시 괭이자루를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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