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의 동포들이 빨간 맛의 화사함을 맛보는 날이 어서 오길"

평양 공연단이 꾸려지고 발표된 참여 가수들의 면면을 훑어보건대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조용필 최진희 이선희는 물론이고 특히 친애하는 ‘강산에’에다 ‘윤밴’에 백지영도 들어갔고 ‘불후의 명곡’에서 놀라운 가창력을 보여주던 알리, 정인 등 낯익은 얼굴들이 뽑혔다. 다만 생소한 이름의 걸 그룹’ 하나이 유난히 화제라. ‘레드벨벳’에다 ‘빨간 맛’이란다. 이슥해지며 작정하길 기왕 늙더라도 새것은 허투루 여기고 주야장천 ‘온고지신’을 읊어대는 ‘꼰대’ 되기는 더디 하자 했음에도 ‘빨간’과 ‘레드’중 어느 것이 가수 이름이고 어느 것이 노래 제목인지 분간이 안 된다. 이따금 온라인을 주유하고 유행어 몇 개를 스터디 한다고 청맹과니를 면하는 건 아닌가 보다.

▲ 홍창신 칼럼니스트

유투브를 여니 ‘빨간 맛’이 우르르 쏟아지는데 뮤직비디오부터 여러 버전의 빨간 맛을 실컷 본다. 곡조 발랄하고 춤사위 신명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의상과 배경으로 연출하는 ‘색’의 조합이 특히 놀라웠다. 밝되 난하지 않고 부드럽되 기품이 있는 그들의 ‘색’에 빠져들어 이어지는 클립을 끝없이 눌러댔다. 이순을 넘긴 낡은 이가 이럴진대 청춘이야 오죽하랴. 한다하는 부자 나라의 아이들이 혹하여 공연장을 따라다니며 원어(자그마치 한국어다)로 따라 부르며 열광하는 현상들에는 모다 충실한 이유가 있음이라.

 

빨간 맛 궁금해 honey

깨물면 점점 녹아든 스트로베리 그 맛

코너 캔디 샵 찾아 봐 baby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여름 그 맛

야자나무 그늘 아래 졸고 싶고

뜨거운 여름밤의 바람은 불고

너무 쉽게 사랑 빠져 버릴 나인틴

우린 제법 어울리고 또 멋져

좋아 첫눈에 반해 버린

네가 자꾸만 생각나

내 방식대로 갈래

 

거푸 열 번은 더 들었던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 가사집을 찾았다. 하지만 깨달은 것은 노랫말을 한참 들여다본다고 그게 무슨 소린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ㅎ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뚱뚱한 위원장 동지도 ‘빨간 맛’을 알고 있었다는 소식이다. 평양공연이 궁금해 늦도록 TV를 지켜보니 부분 영상을 비춰주는데 참석이 불투명하던 위원장이 2층에 등장한다. 1500석이라니 배건너 남강 가 예술회관 객석이 1564석이니 비슷하다. 무대 위의 우리 가수들이야 새삼스레 궁금할 것도 없고 이따금 비춰주는 객석의 반응을 보고 싶은데 카메라 짓이 감질난다.

오랜만에 무더기로 보는 동포의 얼골이다. 언뜻 봐도 생각보다 입성이나 외모가 깔끔하고 반듯하다. 그 느낌에 둘러붙은 ‘생각보다’란 전제는 못 먹고 살아 고초가 심하다는 소식만 무성한 헤어진 형제에 대한 선입견이다. 그런데 확실히 예전에 비하면 “땟국이 빠졌다.” 물론 선발된 상위층일 것이다. 우리 동네도 VIP와 한 공간에 들려 하면 성분 분석 당하고 까다로운 검색대 거쳐야 하니 그쪽은 더더욱 아무나 마구잡이로 입장시키진 않았을 터이다. 근데 뭔가 좀 달라지긴 했다. 2층의 위원장을 향해 보내는 박수도 예전의 그 ‘오바’하던 물개박수보다는 좀 절제가 된 것 같다.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지만 이따금 웃는 모습도 보이고 박수나 손짓 또한 일률적이지 않다. 말미엔 함께 부르고 기립해 박수도 보낸다.

출발 전 한 명이 빠진다 하여 소속사 대표가 욕을 뒤지게 얻어먹은 레드벨벳은 의상 색깔에 숨을 죽여 좀 실망스러웠다, 그 다양하고 분방한 ‘빨강’을 제대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래서 이참에 70년을 지긋지긋하게 따라 댕긴 레드컴플렉스를 끌어 엎어야 하는데. 북한 공연단에 빨간 맛을 들고 가는 레드 벨벳이라니 예전엔 꿈이나 꿀 수 있었나. 허긴 자유한국당이 상징색을 빨강으로 TV조선이 로고를 빨강으로 쓰면서 이미 섞이는 징조가 보이긴 했다. ㅎ

10년을 꽁꽁 얼어붙었다가 이제 서로 오가며 해동이 되는 기미가 보이는데 이 나라 미디어는 애써 외면하려 한다. 그러나 그런 기도가 오는 봄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애어른 할 것 없이 북쪽의 동포들이 빨간 맛의 화사함을 머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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