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응징해야 하는데 응징하지 않으니 세상은 또 한 번 계속될 전망이다.

성선설은 맹자가 주장했다. 맹자의 주장을 고등학교 교과서대로 거칠게 요약하면 인간은 본래 선하게 태어났는데 주변 환경에 지배당하면서 살다보니 어찌어찌 악하게 바뀌었다는 말이다. 교육의 세례를 전혀 받지 않은 어린애의 맑은 눈동자와 살 만큼 산 노인의 웅숭깊은 주름, 모든 것을 달관한 부처같은 행동 등을 보면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으되, 인생풍파를 한 80쯤 겪으면서 가끔은 악할 때도 있었지만, 본래는 선했고 종국에는 선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주장에 소중한 한 표를 던진다. 성선설이 맞다.

성악설은 순자이다. 순자의 주장 또한 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에서 대충 이해하면 인간은 본래 악하게 태어났는데 유아교육과 초등교육, 고등교육과 밥상머리 교육, 저자거리 교육 등을 거치면서 어찌어찌 선하게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갓 태어난 어린애가 젖 달라고 악을 쓰는 흉한 모습과 인생풍파 한 80쯤 겪은 노인의 지저분한 주름, 아직도 버리지 못 한 아집과 미련 등을 온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꼴을 보면 본래는 악했지만 어느 순간 잠깐 선하게 바뀐 뒤 세월이 흘러 인간의 성품이 다시 악으로 귀결된 듯하다. 그렇다면 성악설에 한 표 던진다. 성악설이 맞다.

▲ 박흥준 선임기자

각 시.도의회의 요즘 모습을 보면서 문득 들었던 이런 생각은 저 양반들은 성선설일까, 아니면 성악설일까 하는 의문이다. 어찌 보면 한가하기 짝이 없는 의문이고 이미 시일이 제법 지나 시사를 다루는 칼럼 주제로서는 약발이 떨어진 감도 있긴 한데 그 후과는 자못 심대해 보여 늦었지만 이 의문에 나름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스스로 부여하고 이 글을 진행한다, 아울러 이 글에는 필자의 감정이 여과 없이 들어 있음도 솔직히 밝힌다.

얼마 전 각 시도의회(광주광역시 제외)는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마련한 기초의원 4인 선거구를 가차 없이 2인 선거구로 쪼개는 만행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이에 따라 이 땅의 소수정파들은 비례대표를 제외하고 기초의원 한두 명조차 낼 수 없게 됐다. 소수정파들이 힘들게 대변하는 ‘전체 유권자들의 극히 일부’는 허탈해 했다. 대의정치라며? 그렇다면 우리의 의사는 누가 대의하는데? 아아!! 이번에도 틀렸구나.

2인 선거구는 거대 양당(민주당,자유당)이 자기들만 밥 먹자고 짝짜꿍한 결과이다. 소수정파는 의회에 들어오지 마! 민중은 그냥 핍박이나 받아!! 주는 밥이나 고맙게 먹어!!! 그들은 건물 고층의 고급음식점 –그들이 생각하기에- 에 걸쳐져 있는 사다리를 거침없이 걷어찼다. 한 번 더 생각해 달라는 애원(도지사권한대행의 재의 요구)조차 사정없이 일축했다. 그 결과는? 그들만의 리그가 이번에도 재현될 판이다. 아울러 이 땅의 민중들은 ‘또 한 번’ 빼앗기는 줄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빼앗기게 생겼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은 것이다. 아니, 어찌 보면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는 한 번도 실현된 적 없으니 위기를 맞은 게 아니라 민주주의가 ‘또 한 번’ 지연될 판이라는 언급이 정확하다.

이 땅의 소수정파는 민중당, 한겨레민주당, 건설국민승리21, 민노당, 통합진보당 등의 이름으로 근 30년 동안 숱한 우여곡절과 이합집산을 거치며 명멸했고 오늘에는 정의당과 민중당, 노동당, 녹색당의 이름으로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 오랜 세월 그들은 어김없이 노동자와 농민, 영세자영업자, 젠더적 시각에서의 여성, 장애인, 성 소수자 등 이 땅의 민중을 대변해 왔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진보적 가치를 지키고 확장하는 데 지금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민중은 국민의 99%쯤 된다. 이른 바 중산층도, 그들은 착각하고 있지만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않으니 실은 민중이다. 이 땅의 모든 민중, 그들은 유권자이기도 하다. 99%의 유권자를 포괄하고 있는데 그들은 왜 아직까지도 소수정파에 머무르고 있을까.

제도의 문제, 의식의 문제, 교육의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맛있는 거 혼자만 먹기’ 이데올로기가 이 사회에 널리 퍼져 아직도 건재한 것이 그 질문의 답인 것 같다. 아울러 자칭 중산층들이, 그리고 중산층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중산층에 편입할 꿈을 갖고 있는 수많은 분들이 그 이데올로기를 어느 순간 받아들여 헛꿈을 꾸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조만간, 언젠가는, 결국은 나도 ‘맛있는 거’ '혼자 먹는 게' 가능할 거야.”

중산층 이데올로기는 기존(착취)질서 존중하기 조용히 있기 시키는 대로 하기 질문하지 않기 등을 행동수칙으로, 주식 단타매매와 부동산 투기 등을 실현수단으로 오랜 세월 이 땅을 장악해 왔다. 임금과 이자 이윤이 아니라 그들은 지대를 추구하거나 추구할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중산층이 각성(30년 전 표현으로는 ‘의식화’)하지 않는 한 이 이데올로기는 앞으로도 강화될 것이고 한동안은 기승을 부릴 것 같다.

백 번 양보해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교과서의 성선설이 작금의 상황에 들어맞는 것 같다. 원래 착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저렇게 됐다고 봐야만 ‘전체 유권자의 극히 일부’들이 그나마 분노를 삭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악설 역시 광역의원들을 쳐다보면 그런 대로 맞는 것 같다. 밥상머리 교육이 잘못됐을 수 있어서이다. 그렇게라도 생각해야만 ‘극히 일부의 민중들’ 역시 '인간적'으로 그들을 이해하며 분노를 삭일 수 있다. 민주당과 자유당은 이번 기초의원 선거구 쪼개기에 사이 좋게 손을 맞잡음으로써 이번 일에 관한 한 그들이 지금은 적어도 ‘사악한 무리’임을, 그들의 본래 모습이 이것이었음을 만천하에 스스로 폭로했다.

그들은 오랜 세월 그러했듯 민중을 전혀 대변하지 않는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노동자들의 굴뚝 오르기가 계속되고 있고, 노동자의 대표는 여전히 감옥에 있고, 법외노조는 법외노조를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진주의 경우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시내버스 기사들은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 하고 있다. 여기에 선거구 쪼개기가 더해졌다. 광주광역시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세상은 너무도 쉽게 구태를 답습한다.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심취해 개나소나 민주당에 줄을 서고 있는 게 지방선거를 앞둔 지역정가의 풍경이다, 청산해야 할 지역주의에 기대어 자유당 역시 예비후보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들을 또 한 번 나란히 당선시키는 일만 우리에게 남았다. 아울러 ‘민중’이라는 단어에 생각 한 번 없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사실상의 민중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 한 채 '또 한 번' 피를 빨릴 판이다. ‘자업자득’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들을 응징해야 하는데 응징하지 않으니 세상은 '또 한 번' 계속될 전망이다. 누구를 원망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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