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동문회의 계절이 다가온다. 동문이란 무엇이던가? 같은 학교에서 수학하였거나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사람이다. 동문회란 그 사람들의 모임이겠다. 동문이란 참 좋은 것이고 동문회라는 모임도 참 좋은 것이다. 같은 학교에서 수학한 인연은 참 깊은 인연이다.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것도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될 만큼 더욱 각별한 인연이다.

대개 초등학교 동문회, 중학교 동문회, 고등학교 동문회, 대학교 동문회 들을 한다. 대학원생들도 동문회를 할 것이다. 대학에 개설해 놓은 ‘무슨무슨 과정’을 1년 동안 다닌 사람들도 동문회를 한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의 동아리 활동을 함께 한 사람들도 동문회를 하겠지. 그럴싸한 명분을 붙이고 거창한 목적을 달아 허접한 동아리를 만들고선 ‘동문회’를 참칭하는 모임도 늘었다.

동문회가 활발하게 열리는 것은 까닭이 있다. 우리네가 정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힘들고 고달팠던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을 만나 그 시절을 추억하고 싶어하는 탓이다. 철 없던 시절이라면 철 없어서 그립고, 철 든 시절이었다면 그래서 더욱 그리워하게 된다.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이와 마주앉아 즐거웠던 일, 기분 나빴던 일, 억울했던 일, 유쾌했던 일, 보람 있었던 일 들을 이야기하며 해묵은 억울함이나 오해를 풀기도 하고 즐거움이 배가되기도 한다.

▲ 이우기 칼럼니스트

1979년 진주시 미천면 안간초등학교에서 봉래초등학교로 6학년 1학기 3월에 전학한 나는, 초등학교 동문회에는 나가지 않는다. 두 곳 모두 마음을 두기 어려워서이다. 안간초등학교 동문회엔 지금껏 딱 세 번 나갔는데, 헤어져 있던 동안이 너무 큰 탓인지 무람없이 섞여서 놀기가 어려웠다. 봉래초등학교는 1년도 채 못 다닌, 그것도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보낸 1년을 추억이랍시고 명함 내밀기 저어한 탓이다. 중학교 동문회에도 안 갔다. 워낙 철이 덜 든 까닭에 기억할 만한 추억이 별로 없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 1학년과 2학년 때 있긴 있었다.

고등학교 동문회엔 비교적 열심히 나가는 편이다. 다달이 열리는 월례회엔 한 달 건너 한 번씩은 가는 편이다. 가면 즐겁다. 옛날 학창시절 선생님 이야기, 친구 이야기로 시작하여 지금 사는 이야기, 대개 비슷비슷하게 커 가는 자식들 이야기, 그리고 건강 이야기로 이어진다. 건강 이야기는 꽤 중요하다. 나이가 똑같은지라 아픈 곳도 비슷하고 고민거리도 비슷하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도와주고 상담하고 그런다. 한두 잔 술로 세상 시름 잊고 노래에 감정을 싣기도 한다. 어쩌다 한번쯤은 2차로 달리기도 한다. 불룩 나온 배, 벗겨진 이마들을 서로 보면서 실없이 웃기도 하고 가끔 인생의 무상함 따위 부질없는 상념에 젖기도 한다.

대학교 동문회는 좀 복잡하다. 학과 동문회, 단과대학 동문회, 총동문회 이렇게 세 단계로 나뉘어 있다. 현재 대학교에서 밥벌이하는 처지여서 세 단계 동문회를 외면하기 어렵다. 학과 동문회엔 총무를 맡은 지 몇 해 되었고, 한 해에 두어 번 하는 단과대학 동문회에도 나간다. 총동문회엔 여러 해 동안 간부로 일하다가 지금은 한 발 빼놓고 있다. 바쁘다는 건 핑계이고 다른 이유가 있는데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총동문회 체육대회를 4월 어느 일요일 한다고 기별이 온다. 기수별로 분담해야 할 돈이 얼마라고 알려준다. 나는 이런 일에 가능하면 돈을 낸다. 체육대회 하는 날 운동장에 가서 거의 1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친구들과 너나들이로 놀면서 낮술도 마신다. 반가운 얼굴들 몇몇 보고 나면 술에 취한다. 운동 경기에서 이기거나 지는 건 나는 관심 없다. 지난 해 왔던 친구가 안 오는 일도 있고 몇 해 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보여주는 친구도 있다. 분명 같은 해에 졸업한 동기라는데 전혀 기억에 없는 친구도 많다. 서울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참가하는 열성 친구도 있다. 그들과의 ‘만남’을 기약하는 비용으로 몇만 원 내는 건 아깝지 않다.

동문회가 가진 많은 긍정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비판을 많이 받는 것 또한 잘 안다. 동문회라는 게 정말 기억과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정을 나누고 우정을 확인하며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일까 하는 데 대하여 회의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떤 이는 자기 사업 또는 영업을 위하여 동문회에 참가한다. 어떤 이는 자기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동문회에 나온다. 어떤 이는 자기 가족, 특히 자녀들의 앞날을 부탁하기 위하여 동문회를 이용한다. 그런 것을 모를 리 없다. 영업사원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고, 정치적 목적을 가진 동문이라는 것을 뻔히 짐작하겠는데도, 모임장소에서는 아무 소리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꿍꿍이셈을 모르지 않지만, 또 모른 척해 줘야 할 때도 있다. 정말 친구가 좋아 찾아오는 사람이 더 많다.

진주에 있는 남자 고등학교 세 곳은 동문회로 경쟁을 벌였다. 가령 해마다 4월경 총동문회 체육대회라는 것을 여는데 다른 고등학교를 의식한다는 것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총동문회 체육대회장에 서로 더 유명한 연예인을 불러오기 위해 애를 썼다. 가수 한 명 초청하는 데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하는 시대에 동문들의 피 같은 회비를 모아 기껏 한두 곡 부르고 마는 가수를 그렇게 초청하곤 했다. “당대 최고 인기가수를 우리가 불렀다”고 하는, 자부심도 아니고 긍지도 아닌, 그 한 마디 하려고 돈을 그렇게 낭비한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그런 경쟁은 많이 없어진 듯하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어느 고등학교 출신이 국회의원이 되고 시장이 되는지 관심을 갖는다. 언론도 어느 고등학교 출신끼리 붙었다, 또는 어느 고등학교와 어느 고등학교가 붙었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은연중 동문들 간에 싸움을 붙이는 꼴이다. 말로는 정책대결을 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속내는 동문이라서 덮어놓고 지지하고 동문이 아니라서 엎어놓고 반대하는 모양새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러한 것이 우리나라 정치를 후퇴시키고 지역발전을 가로막으며 그리하여 결국 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높고 두꺼운 벽을 쌓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치매 걸린 사람처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한다.

올해 총동문회 체육대회는 6ㆍ13 지방선거를 두어 달 앞둔 시점에 열린다. 따라서 반갑지도 않은 손님이 많이 찾아오게 생겼다. 총동문회는 선거를 하건 하지 않건 간에 해마다 비슷한 시기에 개최하는 것인데, 어쩌다 선거가 있는 해에 걸리기도 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4년마다 4월에, 지방선거는 4년마다 6월에 개최하므로 따지고 보면 2년에 한번씩은 선거와 겹친 행사를 치르게 된다. 명함을 널리 퍼뜨리는 게 중요한 선거운동 가운데 하나인 후보자들이, 일부러 사람을 모으자면 이런저런 제약이 많아 여간 힘든 게 아닐 텐데, 어쨌든 수백 명 사람을 한 운동장에 모아 놓으니 그것을 놓칠 리 없겠다. 후보자 본인과 선거사무원들이 줄래줄래 앞서거니 뒤서거니 찾아오게 된다. 굳이 말릴 수도 없고 말릴 필요도 없다. 다만, 선거는 선거이고 체육대회는 그 나름대로 치러야 하는 연중행사이니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용히 인사하고 사라져 주시면 고맙겠다는 생각은 한다.

같은 학교 출신이라도 어떤 사람은 ‘갑’ 정당 후보로 나설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을’ 정당 후보로 나설 것이고 어떤 사람은 ‘병’ 정당 후보로 나설 것이다. 한 학교 출신이라도 여러 명이 같은 당 후보로 나서려고도 할 것이다. 그래서 동문회에서는 누구를 지지한다거나 누구를 지지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입장을 내놓을 수 없다. 동문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정치적 견해가 있을 뿐이다. 아마 선거법에서도 그런 것을 못하게 막아두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각종 동문회 체육대회 같은 대규모 행사를 틈탄 선거법 위반사례가 하도 많이 발생하니까 아예 선거법에서 선거 며칠 전부터는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는 체육대회 같은 행사를 못하도록 하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된 데는 지난 세월 동문회를 이끌던 사람과 선거에 나선 사람들의 잘못이 꽤 크다고 본다. 선의로 만나 즐겁게 놀고 흥겨워야 할 동문회 자리가 선거와 정치바람으로 얼룩지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가지 더 생각해 본다. 학연, 지연, 혈연은 우리 사회가 사생결단하고 뿌리쳐야 할 악습이라는 주장이 있다. 동의한다. 같은 학교 나왔다고 하여, 즉 동문이라고 봐 준다. 같은 동네 출신이라고 하여, 즉 향우라고 봐 준다. 같은 집안 사람이라고 하여, 즉 친인척이라고 봐 준다. 그렇게 학연, 지연, 혈연이라고 하여 밑도 끝도 없이 지지하고 치켜세우고 봐 주고 밀어주고 당겨주는 사회는 전근대적 사회임에 틀림없다. 국가나 사회나 지역의 발전보다는 한 학교의, 한 동네의, 한 집안의 발전만 있을 뿐이다. 지양해야 할 구습이요 적폐라고 할 만하다.

동문이라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지지하는 후보가 다를 수 있고, 한 동네 출신 친구라도 가입하는 정당이 다를 수 있으며, 한 가족이라도 선거 때 누굴 찍었는지 묻지 않아야 할 까닭이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여 싸울 필요도 없고 애써 그를 설득할 필요도 없다. 어느 정도 설명, 토론은 필요하겠고 간혹 논쟁을 벌이는 일까지는 모르겠다.

해마다 4월이면 온 나라에서 동문회가 벌어진다. 동문회가, 무엇을 좀 얻어먹으려는 사람이 눈독들이고 찾아가는 장소이기보다, 그냥 좋았거나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한 친구들의 안부를 묻기 위하여 일없이 찾아가는 잔치마당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기는 어렵다는 것을 진작에 알면서도 그런 기대를 해 본다. 그래서 거기서 주고 받은 몇 마디 말과 웃음과 술잔으로라도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잊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런 걸 기대하는 게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짐짓 기대를 가져 본다. 바야흐로 찾아온 동문회의 계절에 이런저런 생각이 대추나무 가지 끝에 연꼬리 걸리듯 주렁주렁 걸렸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