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사람을 먹고 술에 잡아 먹혀 짐승이 되는 것을 항상 경계하시라.

바텐더 일을 한 지도 18년째가 되었다. 같이 일을 시작했던 선배,동료, 직접 가르친 후배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바텐더가 되기를 포기하고 방향을 틀었다. 바텐더가 되면서 결심했던 “진주 최고의 바텐더가 되자” 라던 소원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제 최고가 아닌 최고령의 바텐더가 되는 것으로 귀결됐고 여전히 돈 못 버는 미련한 사람이란 소리를 듣고 살고 있다.

불혹이 된 지금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적은 돈이나마 벌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세상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난하고 조금 부족하지만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마음 편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돈이나 사람 앞에 비굴해지지 말라는 부모님의 가르침 덕에 굽히지도 꿇을 줄도 모르는 외골수가 되어버린 듯 한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어떠랴. 삶에 정답은 없고 인간의 삶은 양이 아니라 질이며 질적으로 충만한 삶이 더 낫다고 믿는다.

▲ 백승대 450 대표

bar를 왜 운영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물론 창업컨설팅도 심심찮게 문의가 오고. 나는 음악과 사람, 술을 좋아하는데 세 가지가 공존하는 곳이 bar였다. 좋은 사람들과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항상 짜릿하고 오늘은 누가 찾아올까 하는 설레임도, 그들과 떠드는 쓸 데 없는 잡담도 술 앞에선 언제나 즐겁다.

bar를 마주하고 손님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그 사람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것도 사람 상대하는 일이라고 이십년쯤 되어가니 반점쟁이처럼 터득한 것들이 있는데, 사람은 첫 인상이 그의 본성일 확률이 대체로 높다는 것과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만으로 사람마다 고유의 분위기와 느낌이란 게 있기 마련인데 첫 인상이 좋지 않은 사람의 끝이 좋은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술집에서 술 마시고 술주정이나 주사를 부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런 사람은 언젠가 꼭 술 마시고 사고를 친다. 손님에게 폭행당해 지금도 손가락 하나는 내 맘처럼 움직이질 않고 뇌진탕에 찰과상 기물파손에 고의적 훼손, 성추행이나 성희롱. 경찰서와 지구대까지.. 술장사 이십년이면 인간의 추악한 본성은 거의 다 봤다고 자신할 수 있다. 어제의 형,누나가 술 취해서 철천지 원수가 되고 원고와 피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는 건 일상다반사다.

이쯤 되니 첫 인상에 대한 내 직감은 종교와도 흡사해지고 사람은 고쳐쓰는 게 아니며 검은머리의 짐승은 거두지 말라던 어른들의 말씀은 바이블이 되었다. 걸레는 빨아봤자 수건이 안 되고 심지어 행주로도 못쓰는 법이다. 첫 술자리에서의 느낌과 인상만으로 모든 건 결정이 난다.

술은 사람을 용맹한 사자로 교활한 여우로도 만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주 후 딱 하나의 동물이 되기를 선택한다. 바로 개다. 술 취한 개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주위에 있다. 여러분들은 음주 후 개가 된 경험이나 그런 사람이 주위에 있는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겁이 많은 개는 요란스럽게 짖어대기 마련이고 사소한 것에도 악의를 드러내고 이빨로 물고 뜯으려 덤빈다. 술 취해서 네발로 기거나 시끄럽게 짖어대고 물어 댄다면 그건 본인이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임을 셀프 인증하는 꼴이다.

술을 마시는 주체가 되시길 바란다. 술이 사람을 먹고 술에 잡아먹혀 짐승이 되는 것을 항상 경계하시라.

처음 칼럼을 쓸 때부터 글의 주제에 대해 데스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내 선택은 술이었다. 술 파는 주제에 다른 분야에 대해 떠들어대 봤자 그건 선무당과 다름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맥주 하나만으로도 꼭지 10개쯤은 쓸 수 있고 위스키, 보드카, 와인, 진, 데킬라... 역사부터 가십까지 장황하고 재미없게 글을 쓰는 건 충분히 쉽다. 그렇게 쓰면 전문가 소리라도 듣는 건가? 전문가는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분야를 글로 배운 사람일 뿐이다. 정치전문가는 정치가 미치도록 하고 싶은 먹물일 뿐이다. 연애를 네이버에서 배운 것마냥 꼴사납고 시시한 것이다.

이십년의 진상손님 스토리도 쉬운 주제이지만 손님의 말을 옮기는 것은 직업윤리에도 어긋나고 내 취향도 아니라서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삐딱한 술 이야기다.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글이 아니라 “어라.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 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내 글의 부족함과, 글을 쓰기로 결정한 내 선택을 반성하며 졸필잡문을 잠시 접으려 한다. 단디를 읽으시는 많은 분들이 나와 450을 아시리라 생각한다. 글로 미처 풀지 못한 썰은 가게에서 직접 풀어 드리겠다. 글쟁이로서의 나를 새롭게 추스르고 휴지기를 가지련다.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술마시기 딱 좋은 계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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