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북한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만세!"

문재인 대통령의 인내 외교,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으로 4월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이 발표되는 등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북한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북한체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이야기가 있어서 같이 나누고 싶다.

▲ 장상환 경상대 명예교수

1979년 시국사범으로 수감생활을 하는 과정에 운동시간에 북한에서 남파된 공작원, 이른바 간첩과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한 분에게 북한에서 무슨 일을 하였는지 물었더니 대학에서 철학교수를 했다고 했다. 철학 중에서 어떤 분야를 가르쳤느냐고 물었더니 주체사상을 담당했다고 했다. 당시는 주체사상이 사상에서의 주체, 경제에서의 자립, 정치에서의 자주, 국방에서의 자위 등 4대 자주노선으로 알려진 정도이고 주체사상의 정확한 의미는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때였다. 그래서 주체사상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 분은 답은 하지 않고 내게 “조직을 왜 합니까”하고 도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조직은 일을 잘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하고 상식적인 답을 했더니 그 분은 “조직은 백만명이 한 명처럼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내가 조금 놀라면서 “그럴 수 있겠네요”고 받았더니 그 분은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잘 조직된 사회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북한은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말이군요. 그런데 방향이 잘못되면 어떻게 됩니까”하고 되물었다. 그 분은 “사실 그것은 문제입니다”라고 하면서 정미소를 비유로 들어 설명했다. ‘정미소에서 벨트와 톱니바퀴로 돌아가는 작업기는 원동기가 움직이는 데 따라서 움직이게 되어 있다. 말단의 작업기가 작업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돌려고 하면 원동기를 반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작업기 자신이 망가지고 만다. 북한은 바로 이와 같다’는 것이다. 짧은 대화 가운데이긴 하지만 그 분은 주체사상의 핵심이 수령론이라는 사실을 내게 말해준 셈이다.

주체사상이 북한을 지배하면서 그 뒤 북한은 어떻게 되었는가. 독재자는 영구집권의 욕망을 가진다. 그들의 사상과 정책은 과거의 관행을 답습한다. 상황이 바뀌어도 다른 주장을 용납하지 못하고 정책노선을 수정하려 들지 않는다. 남한이 1945년에 일제에서 해방되고 1948년 정부를 수립했음에도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라는 시각을 버리지 않고 미국 제국주의의 남한 식민지 지배를 주장해왔다. 1990년대 초의 사회주의체제 붕괴를 통해서 국가통제의 사회주의체제가 더 이상 효율적으로 작동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음에도, 또한 중국이 개혁 개방을 통해 생산력과 1인당 국내총생산을 급속히 높여왔다는 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변화를 외면하고 화석화된 체제를 고수한 탓에 다수가 굶어죽는 참사를 빚었다. 2000년대 들어와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리비아의 카다피 몰락 등을 보며 북한은 핵무기 개발로 체제 위협에 대응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더 큰 경제적 곤경에 처하고 말았다.

중국은 마오쩌둥이 종신집권하면서 문화대혁명으로 사회가 정체, 후진하는 오류를 범했다. 마오 사후 집권한 덩샤오핑은 같은 오류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1982년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은 5년 임기 연임 이상은 집권할 수 없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그런데 시진핑은 최근 헌법 개정에서 이 조항을 삭제하여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1969년 3선 개헌 개정과 1972년 유신헌법 선포를 다시 보는 듯하다. 이로써 중국의 미래는 불안해졌다.

민주주의는 과학의 발전과 경제발전에 기여한다. 경제사학자 모키르는 최근 저서 '성장의 문화-현대 경제의 지적 기원'에서 “1830년 이후에 과학이 산업혁명의 지배적인 동력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자연탐구를 권장하는 문화적 신념이 서양에서 근대적 경제성장의 바탕인 폭발적 기술진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학설이 기존 학설을 반대하고 넘어서는 민주주의적 문화의 토양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서양에서는 산업혁명이 시민혁명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반면 중국과 동양 각국에서는 서양 지식이 유입되었음에도 군주제에 따른 이념과 지식의 경직성으로 인해 과학의 발전과 폭발적인 기술진보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987년의 민주화운동을 통한 군사독재의 청산과 민주화는 한국 사회에 큰 축복이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과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자본에 대항하여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고 금지곡을 남발하는 군사독재가 청산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전세계에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한류의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의 진전을 인터넷 여론 조작과 블랙리스트 작성으로 역류시키려 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단죄, 탄핵되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다. 최근 미투운동도 민주주의가 심화되는 과정이다. 미투운동은 모든 사람 특히 약한 여성의 존엄한 권리를 부정하는 위에서는 권력과 조직의 보호 논리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외침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핵심과제인 아동, 노인,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사회경제적 권리 신장도 법률과 조례를 제정하는 국회와 지방의회를 더욱 민주주의적으로 재구성하지 않으면 어렵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2인 선거구 축소와 3-4인 선거구 확대를 통해서 지방의회 대표의 정당지지 비례성을 높여야 하고, 앞으로 의원 전원을 비례대표로 뽑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북한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은 체제 보장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해왔지만 핵폭탄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진전시킬수록 국제적 제재와 고립은 심화되었다. 잘못 선택한 수단이 목적을 배반한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 북미 정상회담 결단은 많이 뒤늦은 것이다. 2005년 6자회담의 결과로 나온 9.19 합의 즉, 북한의 모든 핵무기 파기 NPT, IAEA로의 복귀 약속과 그 대가로 한반도 평화협상 개시, 미국의 북한 불침 및 북·미 간 신뢰구축, 대북 경수로 건설 지원 등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이제 남북, 북미 연속 정상회담을 통해서 핵무기 폐기,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를 결과물로 내놔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반도 평화체제가 확립되면 북한도 주체사상의 지배에서 벗어나 인민의 생활상의 요구가 정책변화를 가져오는 민주주의 체제로 점차 변화되어갈 것이다. 민주주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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