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는 스스로 힘을 내려놓지 않는다. 약자들이 힘을 가질 때 무너져 내릴 뿐이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폭로로 추동된 미투(#ME TOO)운동의 불씨가 문학계와 연극계, 연예계, 학계로 번지면서 한국사회 전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국사회가 여성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가부장제와 남존여비 사상, 신자유주의의 무비판적인 수용까지 겹쳐 이중 삼중 차별이 중첩됐으리라 짐작은 해 왔다. 하지만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피해자들의 울분에 찬 목소리를 듣자니 ‘과연 우리 사회가 이 정도였나?’라는 탄식과 함께 부끄러움이 뒤따른다.

▲ 서성룡 편집장

모두가 지적하다시피 미투운동의 본질은 권력의 문제다. 그런데 우리사회 여러 분야 중에서 왜 문화예술계에서만 유달리 많은 성폭력 사례가 폭로되고 논란이 뜨거울까. 권력을 쥔 국회나 검경, 사법당국의 사례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막후에서 한국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재계는 훨씬 더 많은 사례들이 있을 테지만 너무 조용하다.

다른 분야에 비해 문화예술계 남성들이 유달리 성평등 의식이 낮고 음탕해서 그런가? 그럴 리 없다. 문단이나 문화권력은 돈이나 직책보다는 ‘명예’를 무기로 권력을 행사한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과 금력에 편승하기보다는 비판자의 위치에서 불의와 부정을 고발하고 풍자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고고한 척 하던 그들도 알량한 유명세와 연줄을 무기로 약자들을 지배하고, 여성들에게 더러운 짓을 일삼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들이 보인 이중성에 놀라고, 여성들이 차별과 성적 착취를 당하지 않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에 더 분노하는 것이다.

미투 폭로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게 진행되고 있다. ‘노털’상 후보에 오른 시인은 어정쩡한 변명으로 일관하다 최근 ‘부끄러운 일 하지 않았다’며 논란에 정면 승부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거기다 논란의 주변부에 있던 술집 여주인까지 등장해 가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여성은 "젊은 여성들이 등단하고 싶어서 어떻게들 했는지 묻고 싶다"고 썼다. 성폭력 문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른 바 ‘피해자 원인 제공론’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성폭력이 단순히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성적 행위’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며 구조의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권력은 상대적인 것이다. 끊임 없이 다수의 약자들을 생산해 내는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마음대로 손과 입을 놀리는 ‘괴물’은 언제고 다시 나타날 것이다.

미투운동의 목적은 가해자를 지목하고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피해사실을 고백하고 알리는 것에 머물러서도 안된다.

피해자의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픔을 말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폭력을 양산하는 권력구조가 청산되기 위해서는 약자들이 강자의 힘과 연줄에 목매달지 않아도 되는 사회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굶어죽을 각오를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예술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예술인들에 대한 생활임금 지급이 그래서 필요하다. 모든 약자들을 위한 사회임금 또는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와도 통한다.

생활임금 지급이 폭력사회를 청산할 경제 구조개혁 방법이라면 정치와 사회 분야의 ‘유리천장 깨기’는 정치 사회 개혁 방법이다. 더 많은 여성이 정치에 진출하고 우리 사회에 책임있는 직책에 올라야 한다.

권력자는 스스로 힘을 내려놓지 않는다. 약자들이 힘을 가질 때 무너져 내릴 뿐이다. 약자들끼리의 연대와 조직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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