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부자 집부자 아니라도 살맛나는 진주'를 꿈꾼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왔다. 머리에 입만 달린 사람처럼 하고 싶은 말만 하던 정치인들이 모처럼 고개를 숙이고 귀를 여는 척 연기하는 시기다.

정치인은 물론 모든 정치적인 이야기마저 냄새나는 오물 취급하던 사람들도 약속이나 한 듯 정치 전문가, 평론가가 되는 시기다. 그래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린다.

명절이 지나면 이른 봄 만발하는 꽃처럼 거리에는 온갖 아름다운 말과 공약들로 넘쳐날 것이다. 지역경제가 발전하고, 복지사회를 이루고, 주택문제가 해결되고, 일자리가 몇 만개나 늘어날 것이라 장담하는 향기 없는 조화 같은 말들.

▲ 서성룡 편집장

그와 쌍을 이루며 반드시 등장하는 구호가 있다. ‘소외되고 낙후된 서부경남’이라는 말은 선거시기마다 등장하는 관용구가 된지 오래다.

그런데, 서부경남이 낙후됐다는 말은 사실일까? ‘낙후’란 문화나 기술, 생활 수준이 다른 지역에 비해 뒤떨어졌다는 말인데, 과연 얼마나 뒤떨어졌길래 매번 같은 말이 반복되는가. 교통이나 문화시설, 주택보급률 등을 따졌을 때 전라도만큼은 아니지만, 같은 경남 안에서 동부지역에 비해 뒤떨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대학을 졸업하거나 일찍 산업전선에 뛰어든 청년들을 받아 줄 일자리가 없는 것은 ‘낙후’라는 말로도 부족한 심각한 문제다. 솔직히 나에게도 두 딸이 있지만, 그들이 어른이 되어 지역에서 자리잡고 살아 줄 것을 바라기가 힘들다.

혁신도시가 생기고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항공우주산업단지가 들어설 계획이라고는 하지만 피부로 느낄만큼 나아진 것은 없다.

6월 선거에도 ‘낙후된 서부경남을 발전시키겠다’는 구호는 여지없이 등장할 것이다. 도지사나 시장, 도의원, 시의원, 교육을 책임질 교육감 후보들도 판화로 찍어낸 듯 비슷한 구호를 내세울 것이다.

‘낙후’라는 단어를 ‘발전’으로 바꾸기 위한 전략도 엇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우주산업단지의 원활한 조성과 혁신도시와 연계한 산학연 발전, 함양 산청의 항노화 산업단지 조성, 남부내륙철도 개통..” 등등

다 좋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과연 모든 것이 말대로 실현된다고 해서 진주가 살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답하기 전에 지금껏 서부경남이 낙후된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보자. 힘 있는 정치인이 없어서? 대기업을 유치하지 못해서? 내륙과 해안에 걸친 어중간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원인과 해법을 거꾸로 생각해 보길 권하고 싶다. 소외되고 낙후됐기 때문에 힘 있는 정치인을 뽑아 기업을 유치하자고 말할 게 아니라, 낙후된 원인이 혹 구태한 정치 때문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살기 좋고 활력 넘치는 도시는 대개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경제와 문화와 정치, 예산이 집중된 서울이 그렇고, 세종 신도시가 그렇고 경남 안에서도 김해 진해 지역이 그렇다.

자유한국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소위 ‘표밭’이라 여기는 지역일수록 발전에서 소외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 뿐 아니라 국외 사례에서도 일당 독재보다는 양당제 국가가, 양당제보다는 다양한 정당이 고르게 권력을 나눠갖는 국가가 살기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큰 기업이 많고 부자가 많다고 꼭 국민들이 행복하고 잘 사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소상공인이 각자 균형을 이루며 고르게 성장해야 행복하고 잘 사는 나라 축에 낄 수 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가 잘 돼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진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민주주의가 잘 된다는 것은 사회 청렴도가 높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민의가 제대로 소통된다는 것이다. 권력이 집중되기보다는 고르게 분산되고, 언론이 제 역할을 하며, 돈의 힘과 권력의 힘이 적절히 분산되고 통제돼야 한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선거를 빼놓고 정치를 이야기 할 순 없을 것이다.

선거가 정치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엄밀히 말해 선거는 정치를 하는 데 필요한 사람과 정책을 만드는 준비과정일 뿐이다. 진짜 중요한 정치는 선거가 끝난 뒤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진짜 정치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주인공 대접 받던 유권자들은 철저히 배제된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즉시 잠시 머리를 조아리던 정치인들은 여지 없이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세상을 호령하듯, 돈 없고 빽없이 표 한장 달랑 쥐었던 다수 유권자들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언행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표를 모아 준 고마움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배은망덕한 정치인, 정보를 알고도 숨기거나 왜곡한 언론, 권력기관에 뒷돈을 대고 부정한 청탁과 압력을 넣는 기업인, 균형을 잃은 사법당국, 본분을 망각하고 공천장 쥔 사람 눈치만 보는 의원들을 탓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채 지역감정에 휩쓸려 묻지마 투표를 해 온 우리 자신의 잘못이 가장 크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민주주의는 시작된다.

선거시기 후보들이 내뱉는 꽃 같은 말보다는 과거 행적부터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소속 정당의 철학과 행적을 제대로 따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눈을 가리고 진실을 비트는 사악한 언론보도 너머 진실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아니 그것까지 요구할 것도 없다. 좀 더 다양한 언로를 찾아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음모론이나 가짜뉴스에 속지 않을 상식과 판단력만 갖추면 충분하다.

더 이상 시민과 의회를 무시하고 갑질하며 막말하는 정치인의 지배를 받는 시민으로 살기는 싫다. ‘땅부자 집부자가 아니더라도 살맛나는 진주’라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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