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맥주들에게 냉장고를 내어주고 소맥용으로 전락한 우리 맥주를 보며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다. 감동적인 개회식의 여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미국NBC의 일본 식민지배 관련 발언으로 세간이 시끄럽다. 해당 발언을 한 해설자는 개인적 사과 없이 해고되는 걸로 사건이 일단락됐다. 그 발언을 들으며 우리 술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본에 대해 생각했고 이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개인적인 감정이 다분히 섞여 있지만 종류에 상관없이 "우리 술을 망쳐버린 건 일본이다." 세수 확보를 위하여 우리의 누룩을 단일화시켜 버리고 후에는 개인적으로 술을 빚는 것도 금지해 당시 수천 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막걸리들이 사라져 버리고 그나마 남은 몇 가지도 맛이 비슷해져 우리의 막걸리는 매력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명맥이 끊기다시피 하던 막걸리는 60년대 다카키 마사오의 지시로 쌀로 술을 빚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한 번 더 위기를 맞는다. 이후 쌀막걸리는 밀가루 막걸리가 되고 조악하고 텁텁한 밀가루 막걸리는 이후 등장하는 희석식소주와 맥주에 차례로 자리를 내어주며 몰락하게 된다.

▲ 백승대 450 대표

우리 민족의 술3대장이라고 한다면 삼국시대부터 소주, 청주, 탁주를 꼽을 수 있는데 소주는 소줏고리에 끓여서 만드는 증류주였지만 지금 우리가 흔히 마시는 소주는 주정에 물을 희석해서 만드는 희석식소주다. 안동소주, 진도홍주, 문배주 등의 많은 우리 전통 증류 소주가 복원되고 최근에는 화요나 대장부를 비롯 새로운 증류소주가 출시되고 있지만 식민지배 이전에 비해 다양성은 상당히 줄어 들고 고증, 복원되지 못한 술들도 많다.

중국의 칭타오, 필리핀의 산 미겔은 독일과 스페인으로부터 전수된 맥주인 반면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맥주를 접하게 된다. 음식과의 조화를 생각해 가볍고 산뜻한 일본의 맥주스타일이 우리에게 강제 이식된 것이다. 양념이 강한 우리의 식문화에 견주어 본다면 우리가 마시고 있는 하이트, 카스는 우리네 음식과 분명 안 어울린다. 일본의 패망으로 남겨진 것이 조선, 동양맥주의 전신이기에 우리 맥주는 일본과 비슷하지만 일본보다 못하며 북한의 대동강맥주에도 못하다는 소릴 듣는 지경이다. 해방 후 수 십 년을 양분하며 시장을 독점한 두 회사 덕택에 신제품을 개발하려는 시도도, 양질의 맥주보리나 다양한 홉을 사용할 필요도 못 느낄 시장구조 덕에 우리 맥주는 이 지경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일본 식민지배 시기를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한 번씩 해 본다. 우리가 일본의 지배를 받지 않았더라면 우리 술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동네마다 맛이 다르고 셀 수 없이 종류가 다양했던 막걸리와, 제수용으로 집집마다 며느리를 통해 전해 내려오던 가양주들은 어찌 발달해 왔을까? 맥주를 일본을 통해 배우지 않았더라면 우리 맥주는 지금 어떤 향과 맛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민속주, 전통주 따위의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시장성을 확장하지도 못한 채 내수도 수출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우리 술을 보며 일본을 생각한다. 잇따른 관세 철폐로 4캔에 만원하는 다양한 수입맥주들에게 냉장고를 내어주고 소맥용으로 전락한 우리 맥주를 보며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우리 술이 이렇게 된 건 다 일본 때문이다. 일본 덕분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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