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둘러앉아 나눈 동네 이야기

"민주주의는 정말 이래야 하는데" 변영애 자유기고가l승인2018.02.07l수정2018.02.0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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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 "진주시민원탁회의 말하는대로613" 참가기

바람이 쌩쌩 불고 되게 추워서 덜덜 떨며 행사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벌써 꽤 많이 모여 있고 무대 앞쪽에선 조별 진행자들이 사전 교육을 받고 있다. 몇 몇 아는 사람들과 인사 나누고 편성된 4조에 앉으니 곧 7시. 서원명 대표, 정원각 성종남 공동 집행위원장의 간단한 인사말, 진주시 실정백서 낭독이 있고. 사회자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조별 진행을 시작하되 시간 초과하지 말라고 여러 번 부탁한다.  

▲ 지난달 24일 '희망진주시민의길'이 주최한 '말하는대로 613' 토론회가 열렸다.

우리 조의 진행자는 지난 번 이현동 반상회 때 회의를 재밌게 이끌던 박찬이다. 나중에 양조장을 세우는 게 꿈이라던 사람이었지. 어쨌든 안심이다. 많이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진행자가 포스트잇 한 장씩을 나눠주며 자기를 기억할 만한 별명이나 특징을 쓰고 간단히 소개하되 1분을 초과하지 말란다. 놀이패 새노리 대표라는 딴따라, 키가 커서 봇대씨. 이름이 수건이라 수건씨, 딸기농사 짓는 딸기양, 늘 그대로이고 싶은 그대로, 꿈을 이룬 백수, 남편이 부르는 별명인 붉은 여우, 산청에서 온 딸기농부, 전교조 진주지회 소속인 꼬치까리, 새노리에서 난타 치느라 세수 많이 한다는 세만. 진행자를 제외한 10명이 각각 짤막하고 재미나게 자신들을 소개한다. 잠시지만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는 일은 늘 즐겁고 설레는구나. 너무 금방 끝나 아쉽다. 옆에 앉은 딸기 농부랑 붉은 여우랑 속삭이는 소리. 시장 후보 누군지 알아요? 몰라요. 근데 오늘 민주당 쪽에서 4명 나왔대요. 여기(2018 희망 진주시민의길)선 누구 밀어요? 몰라요. 시민후보 아직 없나봐요. 그럼 민주당 찍어야 되나?  

자기 소개가 끝난 뒤 진행자가 다시 이목을 집중시키고 포스트잇을 또 한 장씩 나눠준다. 진주시에 필요한 정책을 쓰고 1분 내에 말하란다. 이를 어째, 클 났다. 진주시 정책이 뭐다냐? 원탁 가운데에 놓여있던 인쇄물(원탁회의 자료집, 말하는대로 613)을 부랴부랴 뒤적이며 벼락공부를 한다. 근데 우와, 우리 조 사람들은 진행팀에서 이끄는 대로 선행학습을 제대로 하고 왔나 보다. 차례가 오면 준비한 말들을 척척 잘 한다.

 타 도시에 비해 사회적 기업 육성 지원을 진주시는 기본조차도 못하고 있다, 시장 바꾸면 북에 있는 도시와 진주가 교류할 수도 있다, 40~50대 여성 농업인들이 이용할 만 한 도서관 같은 시민공간을 각 면마다 세워야 한다, 지역민주화가 잘 되도록 지역언론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 생활쓰레기를 어디다 버려얄지도 모르겠고 농촌 등 외곽지역은 더 심각하다, 성남시 같은 학생이나 청년 지원정책은 없냐,  날마다 자동차, 아파트에 쌓이는 광고 전단지들을 못 뿌리게 좀 할 수 없냐, 서울에서 진주까지 2시간으로 단축하는 남북내륙철도 만들어서 관광콘텐츠 개발하자. 와우. 정말 다양하다. 수곡에서 딸기농사 짓는다는 여성분 왈, 와! 이런 원탁회의 참 좋네요. 민주주의는 정말 이래야 하는데. 오늘 처음 이런 자리 와 봤는데 정말 괜찮은 것 같아요.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각 조별 진행자들이 노트북으로 정리한 것을 중앙 컴퓨터로 그새 전송했는지 무대 화면에 조별로 토론한 내용들이 활자화되어 올라온다. 근데 이런! 한줄 제목으로 읽자니 다 그게 그것 같다. 빠르고 세련되고 무척 합리적인 시스템이 운용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어째서 내 머릿속은 더 복잡해지는 거야.  

2부 토론은 의제별이라 ‘유등축제’ 안건 원탁으로 옮겼다. 옮겨가며 얼른 떡 한 덩어리 가져와 먹고 밀감도 먹고 납작한 치즈 같은 초콜렛도 맛나게 먹었다. 내가 속한 유등축제 안건에는 7명쯤 모였다. 유등축제에 대해 과격한 발언들이 쏟아진다. 유료화는 당연히 폐지해야 하고 유등이 대형화되고, 내용 없고, 많아진 것 다 문제다. 유등축제 자체를 완전히 없애버려도 상관은 없지만 기왕 해 온 거니까 앞으로는 동네별로 또는 내용별로 주민들이 참여케 하고 유등 만들기 경연대회도 해서 장인도 육성 하자 등 의견들이 신선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10개조가 의제별로 발표를 시작했다. 1부 때처럼 무대 화면에 정리된 내용이 살뜰하게 활자화되어 나타났다. 하지만 한 줄로 요약된 의제를 내 머리로 이해하는 건 역시나 어렵다. 들으면서 까먹는 나이라서 그런가? 우리 조에서 발표한 유등축제도 실제 토론과 달리 밋밋하고 평범하게 들린다. 

사회자가 130여명의 참석자들이 큰 혼란 없이 시간도 차질 없게 아주 훌륭히 해냈다고 마무리 발언을 한다. 그러고 보니 시작한 지 두 시간 정도밖에 안 걸렸다. 진행 쪽에서 준비를 엄청 했구나. 덕분에 빨리 끝난 것이다. 척척 진행되니 참신하고 매끄럽게 잘 되어가는 느낌은 확실했다. 그런데 원탁회의라는 탁상에선 재밌던 내용들이 왜 마무리 결론에 이르면 맥빠진 느낌, 이미 작성된 답안지를 향해 서둘러 달려온 것 같은 느낌이 들까. 게다가 애써 내린 결론이, 대책이, 아니 문제가 뭐였더라 하고 다시 모호해지는 기분은 왜일까. 

그래도 이렇게 세련된 형식의 원탁회의를 6.13 지방선거가 끝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꾸려갈 힘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 동네별로 가볍고 즐거운 모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며 인식을 넓히고 깊어지는 그런 만남의 장. 주최 측에서 오늘처럼 크게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모이는 세상이 오면 좋을텐데.

회의장 밖으로 나오니 류재수 시의원이 앞에 보인다. 다가가서 의원님은 시장 출마 안해요? 하며 인사하니 웃으며 그냥 악수나 하자는 듯 손을 내민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여전히 쌩쌩 불고 있다.

▲ 변영애 자유기고가

변영애 자유기고가  dandi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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