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대하고, 협력하고, 사랑하자"

‘진주와 함께 한 29년’, 지난 달 31일 퇴임한 박영선 진주YWCA사무총장 장명욱 기자l승인2018.02.07l수정2018.02.0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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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1일 진주YWCA강당에서 박영선 진주YWCA사무총장의 퇴임식이 열렸다. 박총장은 29년 동안 진주시민의 편에서 진주시민사회를 이끈 인물이다. 시민사회 영역이 척박한 지역 환경에서 박 총장이 일궈 놓은 성과는 무척이나 많다. 박 총장은 인터뷰 중간마다 진주시에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후배들에 대한 따뜻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단디뉴스>는 6일 박 총장을 만나 지난 29년간의 소회와 시민사회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앞으로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 박영선 전 진주YWCA 사무총장

▲ 퇴임을 축하드린다고 하는 게 맞는 인사인지

“(웃음) 29년이라는 긴 시간을 진주YWCA에 보냈다. 곳곳에 내 손 때가 묻어 있다. 시원섭섭하다. 무엇보다 한 곳에서 29년을 활동하고, 퇴임으로 마무리됐다. 아름답게 정리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 어떻게 시민단체에 발을 딛게 되었는지

“이십대 중반에 YWCA를 경험했다. 놀랐다. 지식층 여성들이 시민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이 신선했다. 그래서 그 일을 조금 도와 했다. 근데 활동가들이 너무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때마침 전임자가 부탁 아닌 부탁을 엄청 했다.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기에 거절했다. 나는 감이 아니라고 했다. 결국은 이 일을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때의 선택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 고마운 사람이 있겠다

“진주YMCA 전점석 전 사무총장이 생각난다. 저보다 이 년 전에 시민단체에 몸담았다. 이 분은 지역사회 운동에 굉장히 잔뼈가 굵으신 분이다. 좋은 지도자였다. 시민운동 마인드, 추진력, 지역사회 문제 진단능력 등이 탁월했다. 저를 많이 도와주셨다. 공부하는 자리, 사람들 만나는 자리마다 날 데리고 갔다. 이분 철학이 진주지역 시민단체가 같이 연대하고 협력하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분을 통해 시민사회단체를 알아갔다. 같이 연대사업도 많이 했고, 신생 단체도 같이 만들었다. 이번 퇴임식에 오셔서 축사를 해 주셨다. 고마운 분이다.”

▲ 29년 동안 시민사회활동하면서 어떤 일이 기억에 남는지

“논개 사당에 논개 영정을 뜯어낸 일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걸려있던 논개 영정은 친일운동을 했던 김은호 화가가 그린 그림이다. 또한 표준영정이 아니라 전혀 논개가 복원되지 않은 그림이었다. 논개는 나라를 구한 여성인데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 의 그림은 맞지 않다고 시민사회단체가 주장했다. 십년 정도 요구하고, 때론 분쟁하고 그랬다. 하지만 진주시는 묵묵부답이였다. 진주지역 시민사회단체는 결국 논개 영정을 시민사회의 힘으로 떼어 내자고 결의하고 진주성에 모였다. 강력하게 유리로 부착되어 있어 떼어 내기 어려웠다. 겨우 떼어 냈다. 그때 박노정 선생께서 논개는 여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논개영정을 바깥에 옮기는 것은 여성이 했으면 좋겠다는 즉석 제안을 했다. 당시 서은애 여성민우회 대표와 제가 정문까지 논개영정을 가지고 나왔다. MBC에서 취재하고 전국에 보도되었다. 진주시가 발칵 뒤집어졌다. YWCA 내부에서도 저를 파면시킨다는 논의도 있었다(웃음). 진주경찰서는 영정 들고 나온 사람 구속시킨다고 했다. 박노정 선생께서 도와주셔서 처벌은 피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그 때 그렇게 영정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으면 논개영정이 바뀌지 않았을 거다. 그 시대 기생이 입은 복장과 머리 모양 구현해서 표준영정을 만들었다. 진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롭게 만든 일이라 기억에 남는다.”

▲ YWCA 활동에 관해서도 말해 달라

"생각해 보니 참 많은 활동들을 했다. 화장실 청결 운동도 우리가 주도했다. 우리 운동 이후 화장실 청결운동이 확산됐다. 미터법 사용 운동도 했다. 곡류를 한 되, 두 되 이렇게 사니까 정확한 계량이 안 된다. 합성세제 정량 쓰기 운동에서 합성세제 안 쓰기 운동도 했다. 호주제 폐지운동도 했다. 극단 큰들과 호주제 폐지 연극도 했다. 제목이 '여자 죽자 살자'로 기억된다(웃음). 당시만 해도 아들은 4년제, 딸은 전문대로 가는 분위기였다. 아들이든 딸이든 같은 사랑을 주는 딸 사랑 운동도 기억에 남는다. 전국적으로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나 정책이 없던 시기에 진주에서 다문화사업을 가장 먼저 했다. 앞으로 국제결혼이 더 많아질 테고, 다문화 여성 비율이 커질 거라 예상했다. YWCA의 중점사업으로 채택해 추진했다. 이주여성을 위한 지원을 많이 했다. 결혼업체와 제휴해서 일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여성부 위탁을 받아 다문화가족센터를 운영했다. 비록 일 년이지만"

▲ 일 년은 너무 짧다

"우리는 이주 여성에 대해 한국어 교실, 생활지원, 가정 상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여성부 평가가 좋았다. 성과가 많아 상위 그룹에 평가됐다. 그렇게 열심히 했다. 그 시기에 진주시 공무원 부당 수당과 관련해 진주시 감사가 진행됐다. 당시 나는 시민사회연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감사원 감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문제제기를 했다. 진주시가 보복 감사를 했다. 괘씸죄 아니겠나. 진주시가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직영하겠다고 가져갔다. 여성부는 YWCA가 재위탁받아 센터를 운영하는 데 문제없다는 내용의 공문도 보냈지만 소용 없었다. 결국 진주시에 반납했다. 정부사업을 하지 못해 이후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랐다. 하지만 더 자유롭게 일 할 수 있었다. 정부방식과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다문화 사업을 추진해 갔다."

▲ 시민단체 일을 하면서 진주시와 소통은 어땠나

"진주에는 어떤 현안이 있거나 문제가 있을 때 시민단체간의 연대체제는 빠르게 구성돼 있다. 이런 시민사회 시스템은 구성되어 있는데 문제는 진주시와 소통할 수 있는 그런 기회 자체가 드물다. 시는 자기들과 같은 편에 있는 사람들 말만 듣는다. 그 나물에 그 밥만. 반대의견이나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위원회에 합류 안 시킨다. 소통을 차단시킨다.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을 하는 게 다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어떤 사람이 선출돼야 하는가. 민관의 협력을 가장 유연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소통하는 진주시를 보고 싶다."

▲ 시민단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것 같다

"무엇보다 저처럼 오랫동안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일단 기본적인 생활이 되어야만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헌신을 할 수 있다. 생활이 안 되다 보니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오랫동안 활동하는 활동가가 없어서 아쉽다. 시민사회가 만들어 가는 그 지역의 역사가 있다. 활동가는 시행착오를 겪고 경험들을 하고 이런 과정 속에 단단해진다. 그러면서 진주시에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것들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아 아쉬움이 크다. 저는 정부든 지자체든 시민사회에 일정 부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상생한다. 늘 행정은 민관협력체제를 부정적으로 본다. 관이 가진 한계점을 민이 잘 풀어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잘 이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데 행정에 이런 마인드가 없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행정의 이런 지원을 시민사회단체 내부에서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시민단체의 자율성을 해친다는 것이 이유다. 나는 그분들과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자율성은 조정해서 겸비하면 된다. 중요한 건 지역의 역사를 지역 활동가들이 마음껏 써내려 가도록 돕는 일이다."

▲ 시민단체는 앞으로 어떤 현안에 집중해야 하나

"요즘 지방분권이 화두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20년이 지났는데 그러나 반쪽짜리 지방자치다. 현 정부가 지방분권을 확대하는 내용으로 개헌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게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시민단체가 풀어야 될 일들이 많다. 지방분권이 되면 시민사회가 중앙정부에서 그동안 위임받았던 사무들을 이제는 고유사무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민단체가 재정자립도 해야 하고, 인재풀도 있어야 한다. 스스로 능력을 키워야 한다. 지방분권시대에 맞는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 시민사회가 힘이 있어야 한다. 이제는 활동이 왕성했던 시민활동가 1세대인 저희가 물러가는 시간이다. 후배 양성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 책임도 크다. 그러나 아쉬움을 접어두고 후배들은 더욱 힘냈으면 한다. 나도 돕겠다."

▲ 시민단체가 시민 지지를 받는 건 참 어렵다

"동의한다. 그 부분이 제일 어렵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힘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시민들의 사랑을 받기 쉽지 않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인연들이 모여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연대 아니면 답이 없다. 시민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시민운동 대중화는 평생 숙제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현장에는 없지만 한발 물러나서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훨씬 더 꼼꼼하게 챙길 수 있겠다. 일단 지금은 좀 쉬고 싶다. 가족여행 계획 세우고, 아내로서 엄마로서 누리는 책임과 자유를 당분간 즐기고 싶다. 그런데 벌써부터 쉬는 것이 어렵다. 아직 임기가 남은 단체 일도 있고, 주변에서 도와달라는 부탁이 여럿 있다. 제가 모질지 못해서 백퍼센트 거절을 못하고 있다(웃음). 또 다른 직책으로 활동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장명욱 기자  iam51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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