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의 고단한 삶이 어설프고 악랄한 ‘플래카드 정치학’에 끊임없이 조롱당하고 있다.

진주 인근 농촌 딸기 공선장에 15인승 셔틀버스로 출퇴근하고 있는 50대 후반의 A씨는 한 때 ‘사모님’으로 불렸다. 나름으로 반듯한 외모에 성격도 그런 대로 괜찮다는 세간의 평에 조금은 자족하며 인생을 긍정했다. “내일 그만둔다 모레 그만둔다” 철없는 소리를 수시로 하면서 사람 염장을 지르던 남편을, 한 30년은 족히 달래고 어르고 가끔은 눈물로 호소도 하고 해서 정년을 맞게 했다. 요즘 호칭은 그냥 ‘아줌마’이다.

박봉은 아니었지만 그리 많은 것도 아니어서 아껴 먹으면 그런 대로 네 식구 인간구실은 할 수 있었던 세월이었다. 그 세월에 힘입어 두 살 터울의 자식 두 놈 태권도와 피아노 학원 보내고, 먹는 걸 줄이고, 좋아하던 영화도 끊고, 여행은 아예 하지 않는 방식으로 '천신만고' 끝에 비록 중위권이지만 두 놈 다 ‘인 서울’을 시켰다. 그동안 고생했던 보람을, 세상의 아름다움을 처음 느끼는 순간이었다. 20년 세월을 그렇게 살아냈다.

▲ 박흥준 선임기자

하지만 '천신만고'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는 그 놈들이 온전히 대학을 마칠 때까지 군대기간 포함해서 한 10년쯤 걸렸는데 그 10년이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져 한숨을 여러 번 내쉬었다. 김장김치 한 포기 썰고 계란후라이 하나 만들어 끼니를 대충 때우는 세월이 끈질기게 계속됐는데 힘든 와중에도 이런 생각이 가끔은 들었다. “남편이 계속 벌어오는데도 삶이 이렇게 팍팍하니 다른 분들은 도대체 얼마나 힘들게 사는 거지?” 10년 세월을 그렇게 살아냈다.

아무리 견뎌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10년이 어느덧 지나고 두 놈이 드디어 졸업을 했다. 아울러 남편이 고대하던(외환위기, 미국발 금융위기, 공기업 구조조정 등등의 와중에 회사에서 안 잘리고 끝까지 봉급을 가져왔다는 의미에서) 정년을 맞았다. “아으. 이제부터는 내 세상이다.” 약간의 국민연금과 약간의 퇴직연금, 여기에 자식들이 보내는 효도연금 각 20만원씩 월 40만원을 보태면 얼마든지 품위 유지하며 언제까지나 봄날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계산은 잠시였다.

두 놈 다 취직이 한없이 미뤄지면서 이제는 끝난 줄 알았던 ‘천신만고’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견디다 못 해 내려오라고, 밥은 먹여주겠다고 비명을 지르면 두 놈은 서울을 떠나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샤우팅으로 맞받았다. 자고로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 편의점 알바라도 할 생각이 전혀 없이 방에서 책이나 보며 뒹구는 남편을 원망의 눈으로 쳐다보던 그 ‘한 때의 사모님’은 결국 생업전선에 내몰리고 말았다. 미세먼지 구덩이에서 휴일도 없이 야근을 밥 먹듯 해 받는 돈은 월 150여 만 원. 자식 두 놈 서울 월세 올리고 취준생 2년차와 4년차의 용돈 약간 충당하면 잔고가 순식간에 0이 됐다. 그 대신 마이너스 통장의 숫자는 계속 불어나 싫어도 일하러 나가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한번은 귀하게 되고 한 번은 천하게 되는 게 인생이라더니...” 장탄식과 함께 지금 세월은 예전과 똑같이 그렇게 흐르고 있다.

A씨의 사례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지난 세월 그 가족이 이른 바 중산층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28평 아파트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봉급에. 남들 보기에 무엇 하나 아쉬울 게 없었던 그 가족도 내재적 접근을 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A씨가 그렇게 힘들어 했고 지금도 힘들어 하고 있다면, 정말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차상위계층과 기초생활 수급권자, 그 경계선에 서서 최저임금이 오른 덕에 월 150 남짓을 그나마 받게 된 우리의 모든 이웃들은?

두어 달 전 필자는 “내 세금으로 최저임금?” 제하의 글을 칼럼이랍시고 대충 써서 낸 적이 있다. 지난 정권의 후예들이 진주 시가지에 내건 플래카드의 문구에 분노했기 때문인데 당시 그 글의 끝부분을 이렇게 정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500만 최저임금 대상자들은 동시에 유권자들이기도 한데 이 점을 의식했는지 그 플래카드는 며칠 후 조용히 사라졌다.”

내 짐작이 틀렸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냥 두어 달이면 충분했다. 그들은 그런 걸 의식한 게 아니었다.‘ 최저임금 때리기’ 프레임이 먹혀들고 이른 바 보수언론이 그들 편이고 그들의 선전선동이 영세 자영업자를 비롯한 소상공인과 대다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판단을 그들은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비슷한 플래카드가 또 내걸렸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세금 322조 2050년까지”

간단한 키워드 몇 개로 팍팍한 현실을 호도하고, 그것도 엄청 부풀려진 금액으로 그들이 생각하기에 ‘우매하기 짝이 없는 백성들’을 기만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그들은 분명 보통 머리를 가진 게 아니다. 이른 바 좋은 대학 나오고 미국유학에서 돌아와 좋은 세월 보내다가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을 거부하고 있는 그들의 문제는 촛불정권을 공격하고 촛불혁명의 완수를 틀어막는 데 그 공부 잘 하던 머리를 아낌없이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 플래카드는 이번에도 며칠 후 조용히 사라졌는데 거기에는 아마 단디뉴스의 최근 기사가 한 몫 했지 싶다. 322조의 산출내역을 시시콜콜 캐묻고, '2050년'을 작은 글씨로 보일 듯 말 듯 적어넣은 의도를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자원외교와 4대강으로 낭비한 천문학적 예산을 들먹이고, "그렇다면 국회의원 세비도 최저임금으로 하자"는 시민 반응을 보도한 게 바로 그 것이다.

앞서 언급한 A씨는 알고 보면 행복한 사람이었다. 최저임금을 받고 있더라도 남편의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이 있어서이다. 여기에다 언젠가는 효도연금도 다소나마 들어올 터이니 더 이상 말해서 무엇 하랴. 월 150만 원 남짓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500만 우리 이웃들은 퇴직연금도 없고 국민연금도 없거나 얼마 되지 않는다. 노후준비는커녕 지금 당장의 삶이 버거운 오늘, 이 엄동설한에 목도리 두르고 버스를 놓칠세라 아침마다 종종걸음을 치고 있다. 우리 이웃의 고단한 삶이 어설프고 악랄한 ‘플래카드 정치학’에 끊임없이 조롱당하고 있다.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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