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내부의 성폭력 고발과 법원행정처의 법관 사찰

서지현 검사의 내부고발이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8년 전 장례식장에 갔다가 법무부 간부였던 안태근에게 중인환시리에 당했던 성범죄 사건의 전말을 검찰 내부 전산망에 올린 데 이어 jtbc 뉴스룸에 출연해서 고발한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법무부 장관 이하 여러 명의 검사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서 검사의 ‘허리를 껴안고 엉덩이를 주무르는’ 행위가 버젓이 저질러졌는데도 제지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는 것이다. 룸살롱 등의 퇴폐적인 향락업소에서나 저질러질 일이 말이다. 그것도 사회정의를 세우는 것을 직업적 존재이유로 한다는 검사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파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사실 요즈음 웬만한 대기업에서는 성희롱 등 여성의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는 물론, 말실수가 빌미가 되어 승진에서 탈락하거나 중징계를 당하는 일이 일반화된 지 꽤 오래됐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구태를 벗지 못한 검찰 내부에서는 이런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옛날 군대와 비슷하게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상명하복이 체질화된 검찰조직의 폐쇄성이 빚은 참사라 아니할 수 없다. 극단적인 치욕과 모멸감에 떨면서 8년간을 번민 속에 지내온 서 검사는 마침내 ‘분노와 자책의 쳇바퀴’를 떨치고 일어나 용기있게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가해자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jtbc에 출연한 자리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최용익 전 MBC 논설위원

가해자인 안태근은 ‘우병우 사단’의 일원으로 법무부 검찰국장에까지 올랐다가 지난 해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물러난 바 있다. 사건 직후 서 검사는 당시 소속청 간부들을 통해 안태근으로부터 사과를 받으려고 했으나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고 이후 사무감사와 검찰총장 경고, 전결권 박탈, 지방청 한직으로의 좌천 등의 불이익을 연쇄적으로 당해 왔다. 당사자인 안태근의 답변이 걸작이다. “오래 전 일이고 문상 전에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사과드린다”는 것.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진부한 변명일 뿐이다. 더욱이 ‘그런 일이 있었다면 미안하다’는 말은 조건부 사과로 ‘엎드려 절 받기’식의 후안무치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서 검사는 “성추행 사실을 당시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앞장서 덮었다”고도 했다. 그런데 최교일은 “성추행 사건 자체를 알지 못했고, 덮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잡아뗐다. 하지만 이 사건을 처음으로 전산망에서 언급했던 임은정 검사는 최교일 당시 국장이 “피해자도 가만히 있는데 왜 나서서 조직을 들쑤시느냐?”며 자신을 책망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검찰 내에서 ‘권력형 성범죄’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때마다 검찰은 감찰을 강화하겠다거나 개혁조치를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말뿐으로,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검찰 내부에서 개혁을 요구하며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온 임 검사는 “괴물 잡겠다고 검사가 됐는데, 우리(검찰)가 괴물이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 검사의 내부자 고발에 대한 사회적 호응은 부문과 지역, 계층을 초월해 확산되고 있다.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여배우 성폭력 사건에 대한 연쇄폭로 운동인 미투(Me Too)가 애슐리 저드라는 배우로부터 불이 붙었듯이 말이다. 아시아나 항공, 미래에셋 내에서 여직원들과 그룹 회장 사이에 정기적, 부정기적으로 이루어져 온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 대외적으로 알려졌고 여성 변호사와 국회의원, 도의원들로 자신들이 당했던 성추행 경험 폭로가 이어지고 있어 그 끝이 어디까지 갈 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검찰과 법무부도 각각 진상조사기구를 발족시켜 서 검사에 대한 성범죄 사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나섰다.

그런데 이 검찰내 성추행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사회적 중요도에서는 그 못지 않은 대형사건이 시야에서 잠시 사라져버렸다. 법원행정처에서 판사들의 정치적 성향을 사찰해 온 정황이 드러난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법부의 독립은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그리고 사법부가 청와대와 짬짜미 관계에 있거나, 혹은 청와대의 눈치를 보고 있다면 삼권분립은 물 건너 간 것이며, 민주주의가 좌초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되는 셈이다.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 취임 후 구성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조사내용은 충격적이다. 양승태 전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 방침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사찰한 내용과 더불어 특정 사건을 놓고 청와대와 뒷거래를 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대법원장의 비서실 역할을 해 온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확보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관련 각계 동향’ 문건에는 행정처와 청와대의 뒷거래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심 선고 뒤 ‘우병우 민정수석이 큰 불만을 표시하며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경우 상고심 절차를 신속하게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줄 것을 희망’했다고 돼 있다. 대법원이 우병우의 희망대로 원세훈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겨 주요 댓글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는 만장일치 판결까지 내렸으니 앞뒤가 딱 들어맞는다. 박근혜 정권 시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우병우가 대법원의 판결에까지 개입했다는 것이다.

문건의 내용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 저질러졌던 정보기관의 주요 인사 사찰과 공작 활동을 능가한다. 사법개혁에 적극적인 어느 판사에 대해서는 ‘선동가, 아웃사이더, 비평가 기질이 있다’고 평가했으며 언론에 칼럼을 기고한 다른 판사에 대해서는 ‘여론의 역풍을 고려해 섣부른 개입은 자제하되 사태 예의 주시, 친한 선후배 명단 취합, 관리 필요성’을 제시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아래서 법원행정처는 사실상 ‘사법부의 국정원’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법관 사찰이 치명적인 것은 ‘법관의 독립’ 훼손을 넘어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시국사건의 경우 판사의 세계관과 역사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감수성이 재판의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판사들의 보직과 근무지를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틀어쥔 대법원장은 어떤 판단을 할 지 예측 가능하고 안전한 사람들을 주요 포스트에 앉히는 식으로 재판에 개입한다.

그런데 핵심적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이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를 아직도 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열어보지 못한 파일 760여 개 중 300여개는 이미 삭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돼 있는데도 추가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검찰이나 특별검사가 강제로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

이상한 것은 청와대와의 관계를 애써 부정하는 대법관들의 태도다. 현직 대법관 13명은 간담회를 연 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재판에서 “사법부 내외부의 누구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면서 언론 보도에 대해 “의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대법관 13명 중 ‘원세훈 판결’에 참여한 대법관은 7명뿐이다. 나머지 6명은 자신들이 관여하지도 않은 사건에 들러리를 선 꼴이다. ‘지혜의 기둥’이라는 대법관들이 이렇게도 경솔하고 비루한 처신을 할 수 있는 건지 안타깝기만 하다.

위 두 사건에는 이명박근혜 정권 9년의 그늘이 짙게 묻어난다. 만일 박근혜가 탄핵당하지 않았다면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의 고질적인 성폭력 사건을 까발릴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실체적 진실이 보다 명확하게 밝혀져야 하겠지만, 대법원장 등 사법부와 청와대의 뒷거래가 지속되고 ‘법과 양심에 따라서’ 독립적으로 판결해야 할 판사들에 대한 사찰이 계속 자행됐다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됐을까? 두 사건 모두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이유이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