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금주는 담그기 쉽고 마시기 수월하다?

첫 번째 글을 쓰고 나서 제일 많이 한 생각은 ‘어떤 술에 대해 먼저 쓸까’였다. 술의 종류는 너무나 많은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기며 잘 이해하고 있는 술은 무엇일까. 그럼 어떤 술을 골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할까. 앞으로 계속 술과 사람, 술 마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나가겠지만 본격적인 술 이야기를 시작하며 내가 고른 첫 번째 술은 담금주이다. 의외의 선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면 웬만한 집에 담금주 한 병 정도는 다 있을 테고 지금도 매실 수확철이 되면 매실청을 담그고 매실이 남으면 매실주를 담근다. 집안에 건강염려증 환자라도 한 명 있을라치면 각종 재료로 담금주를 담가 훗날의 건강을 기약하며 베란다나 거실 벽을 담금주로 채워 넣기도 한다.

담금주는 다른 술에 비해 술을 만드는 수고가 비교적 적고 적당한 시간만 지나면 편하게 마실 수 있기에 담그기도 쉽고 마시기도 수월하다고 알고 있다. 과연 그럴까?

▲ 백승대 맛칼럼니스트

보통 집에서 담금주를 담글 때 시판용 희석식 소주에 재료를 넣고 설탕을 다 녹지도 않을 만큼 쏟아붓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음식에 설탕이 들어가는 것은 끔찍하게 생각하면서 담금주에는 왜 설탕을 넘치도록 넣는 것에 관대한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설탕의 단맛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담금주를 담글 때 설탕은 필요가 없다. 단맛이 없는 재료 그대로의 맛으로 즐기는 것이 내 몸에 더 좋을 뿐더러 그렇게 마시기가 힘들다면 그때 기호에 맞게 설탕이나 꿀 시럽 등을 액체 상태로 적당히 첨가해 마시는 것이 훨씬 현명한 방법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밑술의 선택이다. 흔히 구할 수 있는 담금주 전용 소주나 일반 희석식 소주를 많이 쓰는데 소주는 무색투명하고 무취에 가깝기 때문에 밑술로 좋은 재료지만 20도 내외의 소주라면 침출이 진행되는 동안 알코올이 휘발되어 알코올 도수는 내려간다. 담금주로 동네잔치를 할 생각이 아니라면 마트 수입 주류코너에서 판매하는 저가 보드카 두 병(1.4리터) 정도면 충분하다. 높은 도수의 밑술로 담그는 것이 알코올 도수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부패나 변질로부터도 더 안전하다.

담금주를 담글 재료와 술을 골랐다면 남은 것은 담금주의 숙성기간이다. 화학적 반응이나 추가 공정이 없이 그저 술로 재료를 우려내는 것이 담금주이기에 얼마나 우려냈을 때 마셔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가끔 귀한 산삼이나 더덕 등을 어마어마한 용기에 담그고 환갑 때 마시겠다거나 자녀의 결혼식 때 따라 마시겠다는 용감한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정 멍청한 짓"이다. 수년이 지나면 알코올 성분은 다 날아가 버리고 식초가 안 되어 있으면 다행이다. 재료에 따라 떫거나 시거나 쓴 맛이 나서 그냥 마시기에는 도저히 힘들어 질지도 모른다. 담금 주의 재료가 좋으니 오랜 시간 우려내 숙성시킬수록 좋은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침출은 액체에 재료의 성분이나 맛, 향 따위를 우려내는 것이기에 오래 우려낸다고 그 시간에 비례하여 무한하게 우러나지 않는다.

커피의 콜드브루(더치커피)나 차를 생각하면 쉽다. 단순히 오래 우려내는 것이 좋은 것이라면 커피나 차도 두어 달쯤 우려내면 되나? 적정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좋은 차라도 떫은 맛이 난다. 과침출된 것이다. 녹차 티백은 차 맛이 떫어지기 전에 건져 내면서 담금주 속 재료는 왜 안 건져 내는 것일까.

인터넷에 검색하면 각종 담금주의 레시피가 나오는데 그것을 따라 하면 나도 좋은 담금주를 만들 수 있을까? 아니, 같은 결과물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레시피와 침출 시간을 충실히 따라 하더라도 내가 준비한 재료의 상태가 다르고 크기가 다르며 국산인지 수입품인지 냉장인지 냉동인지, 보관 장소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것이다. 결국 담금주는 만들기 수월한 술이 아니라 담근 이후 완성 전까지 수시로 맛을 보아가며 품을 팔아야 하는 까다로운 술이다. 재료가 과일이라면 떫고 신맛이 우러나기 전에 과육을 건져내야 하고 뿌리나 줄기 재료라면 더덕구이를 할 때처럼 자르거나 으깨어 넣는 것이 빠른 침출을 도와준다. 보기 좋으라고 커다란 유리병에 뿌리째 담가봐야 우러나는 시간만 오래 걸릴 뿐 술의 완성에는 별다를 영향이 없다. 자기만족이거나 허세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가령 매실주를 담글 때는 밑술의 도수와 양, 매실의 무게 등을 감안하여 술을 담그고 수시로 맛을 보아 적정 침출(숙성) 시간을 찾아내는 것이다. 시거나 떫은 맛이 나기 전에 침출을 멈추고 그냥 마시기가 힘들다면 꿀이나 시럽 등을 첨가하여 마시는 방법을 추천해 드린다. 한두 번 하다 보면 자기만의 노하우와 레시피가 완성되고 재료와 밑술에 따른 적정량과 시간 등을 알게 될 텐데 담금주는 숙성까지 맛이 조금씩 변하는 김장김치처럼 담근 직후부터 마지막까지 미세하게 변화하는 맛과 향을 맛보고 즐기는 술인 것이다.

자, 이제 집에 고이 모셔둔 담금주가 있다면 지금 맛을 한 번 보시라. 어떤가. 술맛은 나는가? 시거나 쓰거나 떫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담금주는 사망하였거나 사망 직전이다. 아까워하지 말고 다가오는 설날에 가족 친지들과 즐겁게 나눠 드시는 건 어떨까? 잊지 말자. 술도 음식이다. 아끼면 결국 먹지도 못하는 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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