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부동산 하지 마. ‘비틀린 코인’은 더더욱 하지 마! 도둑질이야!!

색불이공(色不異空)

우리 앞에 보이는 건, 실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살다 보면 가끔 그런 깨우침의 순간이 순식간에 왔다가 사라지는 장면을 우리는 어쩌다 한 번씩은 목격해. 아쉬움을 남긴 채 사라진 장면은, 하지만 망막에 잔영 형태로 남아서 우리를 마지막까지 아쉽게 하지. 그래서 우리는 순간의 깨달음을 어느새 잊고 다시 로또를 사곤 해. 하루 천 원인데 뭐 어때. 기초연금의 극히 일부만 집어넣으면 별다른 문제는 없어. 아무 것도 아냐. 그리고 또 한 번 통렬히 깨닫게 되지. 아! 쓸 데 없는 짓을 또 했구나. 절대 안 하기로 맹세해 놓고... 내일부턴 그렇게 할 거야. 아암! 앞으로는 로또나 ‘비틀린 코인’ 같은 건 쳐다도 보지 말아야지! 내가 그런 짓을 왜 해!! 매번 보이다가 사라지는데. 그래도 혹시...

 

▲ 박흥준 선임기자

공불이색(空不異色)

그동안 열심히 살았는데 뭐? 당신 삶은 실패라고? 천만에! 나는 성공했어. 나름으로... 자식이 있고, 늘그막에 본 손주 놈이 방안을 뽈뽈 기어 다니고, 40년 전통의 뻥튀기야. 이래 뵈도. 콩을 튀기든 강냉이를 튀기든 쌀을 튀기든 아직은 할 일이 있어. 같잖아 보이지? 하긴 무리는 아니야, 구석진 삶의 검댕이가 내 온 몸에 덕지덕지 묻어 있으니까. 그렇게 자신 있으면 당신이 한 번 해 봐. 어려워. 뻥튀기도 엄연한 기술이다, 너. 일단 무쇠솥에 불을 붙여. 적당히 달궈지면 뚜껑 열고 강냉이를 넣어. 솥을 일정한 시간 일정한 간격으로 돌려줘야 해. 그래야 위아래가 골고루 달궈져. 김 빼는 순간은 감으로 느껴야 해. 감은 절대 짧은 시간에는 오지 않아. 흩어진 강냉이를 손으로 쓸어서 웬만큼 주워 먹으면 깨달음의 순간이 벼락같이 오지. 뻥!!! 하면서 강냉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돈오돈수(頓悟頓修)야. 점수(漸修)가 절대 아냐. 아 참. 이 부분에서는 점수가 맞구나. 점수를, 너희들 용어로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쌓아야만 되는구나. 하긴 그냥 이뤄지는 건 유사 이래 없는 법이지. 세월을 쌓다 보면 없는 게 바로 있는 거야. 없는 거와 있는 거는 그래서 다르지 않아.

 

불생불멸(不生不滅)

아버지는 나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 빗물이 들이치는 6평 남짓 판잣집 루핑 아래에서 고달픈 삶의 짐을 고작 향년 마흔아홉에 내려놓으셨지. 백마고지를 휘날리던 분이었는데 말야. 어찌어찌 안 죽고 버텼는데 하필이면 휴전하던 날 수류탄 파편이 허벅지에 박혀서 이등중사(요즘 계급은 병장)로 의병제대를 하셨어. 노동에 노동으로 청춘을 바치신 분이 좋은 날을 못 보시고 그만. 정부미 혼합곡 한 줌을 종지에 부은 뒤, 구멍가게에서 외상으로 구입한 향을 두어 가닥 꽂고 성냥을 그었지. 어머님은 하염없이 흐느끼셨어. 그렇다고 ‘부질없는 이 머리털’로 ‘육날 미투리’를 엮으신 건 아냐. 왜? 생때같은 자식놈들과 앞으로도 살아야 하니까. 머리 잘라 좁쌀죽 끓이던 시대였지. 전쟁 끝나고 한 20년은 지났지 싶어. 동생과 나는 껴안고 엉엉 울었어. 전교 1등 하던 중학교 1학년 막내는 하필이면 모의고사인지 중간고사인지가 있어서 학교에 보냈지. 그 와중에도 말이야. 3일장을 하는데 상복이 모자라서 동생과 나만 입었지. 캐캐 울면서 출발하는데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막내가 티셔츠 한 장 달랑 입은 채 영구차를 뒤쫓으며 엎어질 듯 고꾸라질 듯 울부짖으며 달려오는 거야. 막내는 장지에 데려가지 말자는 게 어른들의 중론이었어. 왜? 걔는 계속 1등을 해야 하니까. 시험을 봐야 하니까. 그래야 집안이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까. 그런데 뭐?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무슨 말이야, 도대체! 우리는 그 때 그렇게 살았어. 하긴 지금 내 꼴을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는 해.

 

불구부정(不垢不淨)

사는 게 정말 지저분해. 이번에는 어떤 아저씨 얘기야. 창신동 알지? 그 지저분한 골목 으슥한 지점에서 등에 북을 진 아저씨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 ‘동동구리무’ 하는 거 있잖아. 저 분이 저기서 뭐 하지? 학교 파하고 오후 2시쯤 창신동 산기슭을 오르다 보면 거의 매일 보던 아저씨야. 발을 까딱까딱하면서 둥둥둥둥. 기억나지? 껑충껑충 졸래졸래 춤도 추고 이미자의 황포돛대를 멋들어지게 불러 제끼는, 멋진 아저씨였어. 초등학교 2학년 땐가 싶어. 그런데 더 큰 아저씨한테 맞고 있었던 거야. 이 뺨 저 뺨. 한 10m 상거한 지점에서 몰래 훔쳐보며 두려움에 떨었어. 내 또래의 계집애가 옆에서 울고 있었지. 아니, 애원하고 있었지. 허름한 옷을 입고. 아저씨. 우리 아빠 잘못한 거 없어요. 우리 아빠 때리지 말아요. 순간 의분에 넘쳐 나도 모르게 인마살상용 짱돌을 들다가 아무래도 무서워서 끝내 만지작거리기만 했지. 어머니도 보셨던 것 같아. 동네 아줌마랑 공동수돗가에서 하시는 말씀을 1원짜리 비가(60년대 사탕의 일종) 사먹으러 가다가 얼핏 들었거든. “구리무만 팔아야 하는데 알사탕도 같이 팔았대.” 사는 게 정말 더럽다고 개념정리한 건 먼 훗날의 일이야. 그 때는 그냥 무서웠는데. 그런데 뭐?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비틀린 코인’이?

 

부증불감(不增不減)

‘비틀린 코인’ 얘기가 이왕 나왔으니 종심(縱深)을 찌르고 오늘의 결론을 내자. 도대체 우리나라가 미쳐 돌아가는 거야. 나 이제 겨우 70을 갓 넘겼지만 웬만큼 알 건 알아. 애달캐달 해 봤자야.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 해.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아. ‘비틀린 코인’ 값이 일거에 느는 것 같지? 천만에! 그럼 주는 것 같지? 그것도 아냐! ‘비틀린 코인’의 가치 얘기야. 가치는 오로지 노동에서만 나온다, 그것도 육체노동. 만고불변의 진리야. 농민의 주름진 손에서 나온 쌀, 노동자의 억센 팔뚝에서 나온 물건 등등. 나도 여러 번 찾아봤는데 일확천금, 한 방의 부르스. 뭐 이딴 건 세상에 없어. 그런 거 생각하면 그냥 인생 고달프게 마라톤 하는 거야! ‘비틀린 코인’이 뭐냐구? 1원짜리 동전을 철로에 조심스레 얹어. 기차가 철그럭 철 철그럭 철 지나가. 그 뒤에 잘 찾아보면 어느 풀숲에서 수줍은 듯 발견돼. 어디선가 주워들은 대로 지남철을 만들려고 그렇게 했는데 지남철은커녕 과자도 못 사먹게 형편없이 찌그러지고 말았지. 그게 ‘비틀린 코인’이야. 그래서 제법공상(諸法空相)이라고 하는가 봐. 주식도 하지 말고 부동산도 하지 마. ‘비틀린 코인’은 더더욱 하지 마! 도둑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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