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특위의 실패를 되풀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기 위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 17일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내놓은 성명서의 핵심내용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딱 그 짝이다. 검찰수사망이 자신의 턱 밑까지 좁혀 들어오자 기껏 생각한다는 것이 이미 누차에 걸쳐 울궈먹은 ‘정치보복론’이요, 한 단계 더 나아가 ‘보수궤멸론’이다. 이명박은 논리의 비약과 더불어 사실과도 배치되는 거짓된 주장을 하고 있다. 그의 말과는 정반대로 많은 국민은 시간이 걸려도 끝까지 적폐청산을 할 것을 바라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적폐사건 수사 시한’에 대해 작년 12월, 여론조사를 한 결과 국민 10명 중 6명은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졌던 적폐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한 없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는 응답이 59.7%, ‘가급적 연내 마무리해야 한다’는 32.3%(조사의뢰자 tbs/CBS, 조사일시 12월4일-12월8일,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였다. 동일한 시기에 MBC와 국회의장실이 공동으로 갤럽에 의뢰한 여론조사결과도 비슷하게 나왔다.

▲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요약하면 TK 즉, 대구·경북 지역과 60대 이상의 고령층, 그리고 자유한국당(이하 자유당) 지지자들을 제외한 전 국민의 대다수는 고위공직자들의 각종 비리와 부패청산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이명박근혜 통치기간 9년 동안 저질러진 적폐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도 이명박은 ‘노무현의 죽음’까지 언급하며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무리한 수사와 언론플레이, 그리고 시간 끌기가 그의 죽음을 재촉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시 대통령 이명박의 역할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합리적 의심’이다.

검찰수사가 그의 주장대로 처음부터 이명박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명박에 대한 수사 없이 적폐청산은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즈음 속속 드러나고 있듯이 2007년 대선 당시 인터넷 댓글 공작과 블랙리스트 등 거의 전방위적인 국정농단의 꼭대기에 청와대와 국정원이 있었다. 다시 말해 이명박근혜 시기의 국정원은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적폐를 저지른 주체이며, 적폐의 배후에 두 사람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이 명백하다.

특히 이명박은 자신의 최측근 참모였던 원세훈을 국정원장으로 앉혀놓고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파동 이후 이반된 민심을 다잡고 국정을 장악하기 위해 국정원을 각종 공작과 사찰의 사령탑으로 최대한 활용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사실상의 부정선거를 획책한 2012년 대선 댓글조작 사건과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감시하고 머릿속 생각까지 들여다보려 했던 민간인 사찰 사건이 있다. 이 못된 버릇은 박근혜 때 멀쩡한 시민이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누명을 쓴 채 고통을 겪어야 했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등 잇따른 조작사건으로 이어졌다. 저 엄혹한 군부독재 시절 정권안보를 위해 무차별적인 인권탄압의 도구로 기능하면서 시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국정원은 대대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김대중과 노무현 등 민주정부 기간, ‘정권수호의 전위대’라는 오명을 벗는 듯 했던 국정원은 이명박 대통령 시기에 다시 군부정권 시절처럼 독재자의 노리개로 돌아가 버렸다.

가관인 것은 이명박 자신의 왔다갔다하는 태도와 측근들의 양아치식(?) 대응자세다. 현재 국민들이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는 “다스의 주인은 누구인가?”이다. 이명박은 얼마 전까지 기자들의 질문에 “그걸 왜 나한테 묻는가?”라면서 대답을 회피해 왔는데 성명에서는 “나에게 물어달라”고 입장을 바꿨다. 그렇다면 이제는 공개적으로 다스의 소유주를 밝히겠다는 뜻인지….

성명발표 현장에 도열해 있던 측근들은 성명이 나온 뒤 언론과의 이런저런 접촉을 통해 노무현의 과거 비리사실을 폭로하겠다는 식의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우리라고 아는 게 없겠나”, “올해가 개띠 해라고 이전투구 한 번 해 봐야 하느냐”, “노무현과 청와대에 있었던 분들은 유리알처럼 투명했는지 반문하고 싶다” 등등 ‘어르고 뺨치는’ 식의 용어를 구사하면서 노련하게 외곽을 때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상대는 문재인 정부 아닌가. 근데 왜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래된 고 노무현 대통령을 자꾸 들먹이는가? 그럴 바엔 노무현과 김대중만을 조사할 것이 아니라 아예 김영삼과 노태우, 전두환 등 그 이전 정부까지 모조리 뒤지자고 하든지…. 이명박 캠프 사람들은 혹시라도 노무현에 대한 트라우마라도 있는 것인가.

차제에 특수활동비에 대한 일대 개혁이 필요하다. 특수활동비(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고 한다. 국가기밀과 관련된 국정활동을 위한 예산인 특활비는 지출내역의 외부감사가 불가능해 ‘묻지마 예산’, ‘깜깜이 예산’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더구나 대통령이 사용하는 특활비는 군부대나 복지시설을 방문해 전달하는 금일봉이나, 청와대를 떠나는 직원에게 주는 전별금 등에 쓰인다는데 이게 무슨 기밀유지가 필요한 일인가? 또 과거 독재시절 정통성이 부족해 외국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 특활비가 사용됐다고도 한다. 한 마디로 특활비란 국민의 혈세를 걷어서 대통령 등 고위관료들이나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쌈짓돈으로 흥청망청 멋대로 써왔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눈먼 돈’이니 자유당 대표 홍준표가 특활비를 집에 가져가 생활비로 썼다고 실토했는데도 상응하는 징계나 처벌 논란 자체가 나오지 않고 있지 않은가.

민주화도 어느 정도 달성됐는데 아직까지 특수활동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가? 내역을 공개해서 떳떳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든가 아니면 없애버려야 하는 것 아닐까? 마침 노무현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사람들은 정확하게 사용내역을 남겨 놓았다 하니 진실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국정원 적폐 수사의 핵심은 이명박의 개입 여부를 밝혀내는 데 있다. 그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하며 이를 우회하고 적폐청산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도 국가정보기관이 공적 영역을 벗어나 비선 라인에 의해 운영되고 공직자와 민간인을 사찰한 정황이 뚜렷하다. 아울러 국민의 혈세를 대통령에게 뇌물로 바치게 하고, 여론을 조작했으며 대선에 직접 개입했다. 혐의가 이렇게 널렸는데도 이를 기획, 지시한 최고, 최종 책임자를 밝혀내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국정원의 환골탈태도 이명박에 대한 철저한 조사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이 아니라 이권이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정부였다. ‘사자방’ 비리와 다스, BBK,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 등 임기 내내 돈과 이권에 관련된 추문과 입소문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날까봐 MBC와 KBS 등 공영방송을 장악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국민의 관심을 엉뚱한 데로 돌리는 데에 부심했다. 어용뉴스의 부활과 ‘PD수첩’ 같은 비판적 시사프로그램의 절멸은 국민의 저항을 봉쇄하기 위한 지렛대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시민들은 촛불시위로 ‘허수아비 박근혜’를 파면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그 뿌리가 된 이명박에 대한 전면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명박은 지난 9년 동안 쌓인 적폐의 원흉이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결국 이승만과 친일파 지주, 그리고 경찰 등 기득권 세력에 무력화됐던 반민특위의 실패를 되풀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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