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왕자가 필요 없듯, 시민들에게 영웅은 필요없다.

헐리우드 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평범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슈퍼히어로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1930년대 후반 처음 발명된 이후 지겹도록 울궈먹고 있는 슈퍼맨을 비롯해,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부와 정의를 동시에 소유한 배트맨, 여성콤플렉스를 극복해 보려고 만들었지만 오히려 차별만 더 키운 원더우먼. 우리같은 ‘옛날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들 캐릭터 외에도 헐리우드는 지난 세기동안 수백 가지 슈퍼히어로들을 발명해왔다.

영화 속 슈퍼히어로들은 실제 지구를 구하지는 못 했지만, 미국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구출해 내는 신력을 발휘했다.

슈퍼맨 시리즈는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1930년 대공황으로 실의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다시 한번 ‘팍스 아메리카나’를 외칠 수 있는 ‘정신승리’를 안겨주었다. 지진으로 사망한 로이스 레인을 살려내기 위해 지구를 거꾸로 돌리는 짓을 스스럼없이 벌인 슈퍼맨은 지구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라도 미국인만큼은 구해 내겠다는 우월론에 빠진 미국 국가주의를 보여준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위기가 닥친 다음 해에는 막대한 군수자본과 과학기술의 힘으로 탄생한 ‘아이언 맨’이 등장한다.

▲ 서성룡 편집장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금융자본과 세계 곳곳에서 분쟁을 벌이고 전쟁 위기를 고조시켜 피묻은 돈을 챙기는 부도덕한 군수자본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어떠한 공격도 뚫을 수 없는 철갑가면을 둘러쓴다. 가면 속 인간은 나약하고 타락했지만 인공지능과 각종 첨단기술이 집약된 철갑옷을 입기만 하면 무소불위의 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되고, 그것이 곧 정의가 된다.

철갑가면은 마치 부도덕한 금융자본을 비난하며 ‘월가 점령’ 시위를 벌인 시민들의 분노한 목소리를 철통방어하는 상징처럼 보인다. 아이언맨은 슈퍼맨처럼 지구를 구하겠다는 만용을 부리지않는다. 아이언맨은 노골적으로 국가권력을 조롱하고 불신한다. 자본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곧 미국을 지키는 것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곳곳에 배어있다.

슈퍼히어로는 영상과학이 발달한 현대의 산물이 아니다.

인류는 가뭄과 홍수, 지진과 해일과 같은 천재지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초월적인 대상을 언제나 찾아왔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나 거대한 바위 앞에 무릎 꿇고 빌기도 했고, 지구상 모든 생명과 에너지의 기원인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는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류가 가장 먼저 발명한 슈퍼히어로는 예수일 것이다.

신의 아들인 동시에 인간의 아들인 예수는 가장 인간적이고도 가장 신적인 모습으로 살다가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속죄양으로 십자가에 매달린다.

아무리 죄 많은 인간이라도 그의 존재와 죽음을 인정하고 믿기만 하면 생전에 벌인 악행의 무게를 따지지 않고 천국행 티켓을 받아 영생을 누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소리인가.(복음)

현대인들이 주말에 영화관을 찾아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판타지물을 즐기며 1주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잠시라도 잊는 것과 종교인들이 주말에 교회나 절을 찾아가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신 앞에 엎드려 1주일 동안 쌓은 죄업을 사함 받는 행위는 꼭 닮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나 종교인들이 찾는 전지전능한 신은 나약한 인간을 초월해 절대선과 절대정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도 서로 닮았다.

두 존재 모두 가상의 산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게 되면서 현실 속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초월적인 존재가 좀체 등장할 것 같지 않은 정치영역에서도 슈퍼히어로는 종종 등장한다. 충북 옥천에서는 매해 육영수 숭모제가 열리고 있고, 경북 구미시장은 95회 박정희 탄신제에 참가해 “박정희 대통령은 반신반인으로 하늘이 내렸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실제 지난 해 탄핵 국면에서 태극기 집회에 나온 많은 참가자들은 박정희와 박근혜의 존재를 신적인, 혹은 절대왕권을 가진 존재로 말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박정희만큼은 아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모든 행적에 대해 일체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무오류를 주장하는 자칭 깨어있는 시민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간이 슈퍼히어로를 꿈꾸는 이유는 현실의 벽은 너무 높은 반면 자신의 힘은 보잘 것 없고 나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숭배하는 대상을 일반 사람들이 다다를 수 없는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나약한 자신은 영웅 뒤로 몸을 숨긴다. 오로지 그 앞에 엎드려 숭배하는 일만으로 자신의 책무는 끝난다고 믿는다. 또한 신격화 한 대상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자를 가려내 악마화하고 공격함으로써 자신이 정의롭고 선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이런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와 정치 영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중세에 횡행한 마녀사냥과 혁명 이후에 권력을 보위한 홍위병들, 빨갱이 사냥을 한다며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한 서북청년단 등등.

하지만 정치나 종교, 영화 영역 모두 신격화나 영웅주의에 반대하는 흐름도 분명히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신이나 영웅을 위해 민중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은 지위나 신분의 높고 낮음에 상관 없이 평등하다는 사상이 그것이다.

절대왕조를 무너뜨리고 왕의 목을 베면서 그 믿음은 증명됐고, 만인이 똑같은 무게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는 민주주의의 이념은 계속 나아가고 있다.

인간은 특수한 능력을 지닌 지도자나 슈퍼히어로에 의해 구제되거나 해방되지 않는다. 오직 나약한 인간들끼리 연대와 단결을 통해 충분히 현실의 벽을 넘고 역사를 바꿀 수 있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여성에게 왕자가 필요 없듯, 시민들에게 영웅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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