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민주노조 지도자의 길

작년 12월29일.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특별사면이 발표됐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전체 대상자 6천444명 중 일반형사범이 99%를 차지하며, 나머지 1%에 용산참사 관련 철거민 25명과 정봉주 전 의원 1명이 포함된다고 했다.

반면에 사면이 유력시되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촛불혁명에 의해 탄생한 정부’임을 자처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해 9월, 여야 4당 만찬 회동 당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아직 감옥에 있다”는 말에 “저도 눈에 밟힌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끝내 사면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한상균은 지난 2015년 민중총궐기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조계종에 피신해 있다 구속·기소됐으며, 대법원에서 징역 3년형이 확정됐으니 형기의 2/3를 채운 셈이다. 사면이 발표된 날은 마침 새 민주노총 위원장이 선출된 날이기도 하다. 위원장 임기 3년 중 역시 2/3를 감옥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하 자유당)과 조중동 등 재벌옹호세력(쉽게 말하면 한국사회의 기득권층)의 반발을 의식한 나머지 문재인 대통령이 한상균의 사면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분석이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한계와 현 단계 한국 사회의 노동인권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같아 뒷맛이 영 씁쓸하다. 저 세력은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재벌총수들이 사면될 때는 국민통합과 경제 살리기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며 환영하다가도 노동계 대표에 대해서는 이렇게 정반대로 눈을 부라린다. 이중잣대 논란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심지어 자유당의 당시 원내대표 정우택은 “민주노총 위원장이 사면된다면 국민적 저항과 한국당의 극렬한 반대 투쟁이 있을 것을 경고한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니 이 집단의 노동자들에 대한 맹목적 적대감의 무게와 크기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 최용익 전 MBC 논설위원

한상균은 쌍용자동차 노동자 출신으로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으로 당선된 뒤, 2009년 77일간 평택 공장에서 옥쇄파업을 주도했고,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만기 출소했다. 이후 그는 출소한 지 불과 3개월 만인 2012년 11월부터 비정규직 해고자와 함께 170여일 동안 철탑에서 고공 농성을 벌였다. 이로써 그는 ‘정리 해고 반대투쟁’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다.

민주노총 사상 최초의 직선제 선거로 당선된 한상균 위원장은 노동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쉬운 해고’를 제도화하려던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를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 시민들이 공동투쟁하는 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쌀값 폭락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박근혜에게 “쌀값 인상 대선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했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그리고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은 ‘노동개악 기도 철회’를 외쳤다.

민중들의 거센 저항에 놀란 경찰은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직사 살수했고, 그 결과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무려 10달 이상을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사망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와중에 박근혜의 주치의를 배출한 서울대병원은 백남기의 사망원인을 ‘병사’라고 했다가 정권이 교체된 뒤에야 ‘외인사’로 바로잡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11월16일, 문재인은 백남기 농민이 혼수상태에 이른 데 대해 “박근혜 정부가 생존권을 요구하는 국민에게 살인적인 폭력 진압을 자행했다”고 비판했고 “농민들은 쌀 가격이 폭락해서 살기 힘들다고 하고, 노동자는 지금도 먹고살기 힘든데 쉬운 해고가 웬 말이냐고 한다”면서 “이런 말조차 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독려하기도 했었다.

한 번 따져보자. 한상균이 주도했다는 ‘민중총궐기’ 당일, 광화문 사거리를 비롯한 서울 시내 중심가를 불법으로 막고 ‘도로의 차량 통행을 방해’한 것은 시위대가 아니라 수십 대의 경찰버스였다. 그날 정부는 헌법이 금지한 집회 허가제를 통해 집회를 임의로 ‘허가’하고는 그 집회를 방해할 목적으로 차벽을 쌓아 서울 중심가 교통을 전면 마비시켰다. 다시 말해 그 날 대중의 교통을 방해하면서 불법행위를 한 것은 민주노총이나 농민단체가 아니라 정부였으며, 시위를 계속하기 위해 교통방해라는 불법행위를 하고 있던 경찰버스를 밧줄로 끌어내던 시위대를 물대포로 쏴, 결국 시위 참가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정부였다. 그런데도 정부와 한통속이었던 1심 법원은 도리어 정부의 불법행위를 해소하기 위해 경찰버스를 밧줄로 끌어낸 시위대의 정당한 대응행위를 불법폭력으로 낙인찍고 이를 사전에 계획, 지령했다는 혐의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5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해고를 쉽게 하고, 노조의 힘을 약화시킨다는데, 노조의 대표로 선출된 사람이 거기에 맞서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가 아닌가. 한상균 자신도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국제노동기준은 민주노총 같은 노동조직이 노동자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관련된 법안에 반대하는 파업을 불법이라 보지 않는데 대한민국은 노동자의 고용, 임금, 근로조건 등의 권리를 후퇴시키는 법을 만드는 것에 총파업을 한다고 하면, 법원이 판단하기도 전에 검찰이 ‘불법파업 엄단’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파업 자체를 불온시하는 슬픈 나라”라고 개탄한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 독재정권을 제외한 어떤 나라에서도 집회, 시위나 파업을 이유로 전국적인 노동조합 조직의 대표를 구속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유럽의 경우에는 특히 이 같은 일이 벌어지면 혁명, 즉 민중봉기가 일어날 수도 있는 중대한 사유가 된다.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술회했다.

“지난 2000년, 나는 독일 노총(DGB) 초청으로 독일 금속노조 등 노동조합과 노동법원 등을 돌아다니며 노조간부들과 판사들을 직접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법률원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파업과 집회시위로 체포, 구속된 민주노총과 연맹, 그리고 단위노조 위원장 등 수많은 노조간부들을 변호하던 터라 독일에서는 어떤지 물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내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파업이나 집회시위를 했다고 위원장 등 노조간부들이 체포, 구속된다니 납득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여 말하기를 만약 독일에서 노총 위원장이나 금속노조 위원장이 노동개악 저지를 위한 파업과 집회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구속된다면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며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물론 수백 년의 노동운동 역사를 가진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이제 민주화 된 지 불과 30년이 넘은(1987년 6월 항쟁 이후를 기준으로 할 때)한국사회의 노동현실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또 민주화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렸던 이명박근혜 정부 9년 간, 정권 차원에서 저질러졌던 공작정치 등 각종 불법, 비리가 그간 힘겹게 이루어낸 민주주의의 성과를 저지하거나 지연시킨 측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한상균의 사면 불발은 시민들의 ‘촛불혁명’에 기반해 집권했음에도 사면결정 하나를 시원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의 소심함과, 그것을 강제하는 ‘적폐세력’의 여전히 막강한 힘, 조직률 10%를 넘지 못하는 노동조합의 상대적으로 미약한 역량의 비대칭적 관계 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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