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좋다고 억지로 먹이는 것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고등학교 친구 중 한 명은 유난히 오이를 싫어했다. 그 때는 참 별난 식습관 이라고 핀잔을 주고는 했다. 그런데 나의 큰 딸이 딱 그렇다. 김밥, 짜장면 같은 음식에서 오이를 일일이 빼내고 먹는다.

팔로워 10만명이 넘는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페이스북 모임이 있다. 이 사람들은 쓴맛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특별히 활성화 되어 쓴맛에 매우 민감하다. 심한 경우 오이가 들어간 음식을 먹고 토하기도 한다.

나는 40대 전 까지 젓갈이 그렇게 싫었다. 젓갈을 즐겨먹는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40대 들어서니 젓갈이 땡기기 시작했다.

맛은 뇌의 가치 판단이며 주로 미각과 후각에 의존한다.

맛 지각은 수백만년 세월 진화과정중 유전자에 반영된 특질로서 인류의 생존가능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도망갈수 없는 식물은 자기 보호를 위해 독성물질을 만들었으며, 그 독성물질은 대부분 쓴맛을 나타낸다. 혀에 쓴맛 물질이 닿으면 뇌로 전기화학 반응이 전달되어 불쾌감이 유발된다. 이것이 쓴맛 혐오의 기원이다.

▲ 황규민 약사

부시 대통령 부자의 브로콜리 혐오는 유명하다. 아들 부시와 아버지 부시는 브로콜리를 정말로 싫어했다.

반면 어머니 바바라 부시는 브로콜리를 좋아했고 아들과 남편에게 건강에 좋다는 브로콜리를 먹이기 위해 노력했다. 먹이려는 자와 먹지 않으려는 자의 밥상 전투가 일상이었다.

맛은 입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화학적으로 걸러내는 장치다. 하지만 맛에 대한 반응은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음식에 의해 형성되었으므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다.

부시 부자와 어머니 부시가 브로콜리의 맛에 대한 호불호가 다른 것은 부시 부자의 DNA에 영향을 준 조상과 어머니 부시의 DNA에 영향을 준 조상이 살았던 지역과 즐겨먹었던 식재료가 달랐다는 뜻이다.

씀바귀, 브로콜리, 피망 같은 채소의 쓴맛에 대한 호불호, 홍어요리, 경남지방의 방아잎, 향신료  고수에 대한 반응 등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 글을 읽으면서 브로콜리, 피망 등에 무슨 쓴맛이 있냐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음식의 특정 성분에 대해 심하게 쓴맛을 느끼는 분들이 있다.

아이들은 남녀 구분없이 대부분 쓴맛을 싫어한다.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들면 여성들은 쓴맛에 더 민감해지고 임신중 민감도는 더 높아진다. 태아를 지키려는 진화적 모성본능이다. 쓴맛은 독성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인간 쓴맛 유전자는 많이 퇴화되었다고 한다. 뇌의 발달에 따라 미각으로 독을 판단할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사람에게 있어서 쓴맛은 나이가 들면 둔감해지고 학습에 의해 둔화된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도 쓴맛을 그대로 느끼는 경우도 많다.

커피, 차, 술 등 기호식품의 상당수는 쓴맛을 가지고 있지만 자주 먹다보니 몸에 나쁘지 않고 무독하다고 뇌가 기억하게 되었다. 심지어 커피, 차, 술에는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카페인 알코올 같은 흥분과 쾌감 물질이 있어서 쓴맛에도 불구하고 좋아하고, 즐기기 까지 하는 것이다.

채소의 특정 성분의 쓴맛을 어릴 때는 강하게 느끼지만, 나이 들수록 둔감하게 느끼거나 오히려 독특한 맛으로 느끼기도 한다. 어릴때는 커피를 싫어하다 성인이 되면 좋아하고 즐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이들 중에는 유난히 브로콜리, 오이, 상치 같은 특정 채소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유전적 진화적 이유가 있으므로 억지로 먹이는 것은 폭력이 될수도 있다.

맛은 추억이고 취향이기도 하지만 인류 생존을 위한 환경적응의 몸부림이 유전자에 각인된 흔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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