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의원은 막연한 말로 본질을 피해가지 말라

19세기 말, 미국의 한 서커스단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P.T 바넘(Barnum)이라는 쇼맨이 있었다. 그는 관람객의 성격을 알아내는 마술로 유명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속임수를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바넘이 어떠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성격을 알아내는지는 오랜 시간 밝혀지지 않았다.

비밀은 영원할 수 없는 법, 바넘의 마술에 깃든 비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밝혀지게 됐다. 1세기 후 그 비밀의 문을 연 사람은 심리학자 B.R 포러(Forer)이다.

1940년대 말 심리학자 포러는 자신이 제작한 성격진단 검사지를 학생들에게 배포해 응답토록 하는 실험을 했다. 일주일 후 그는 학생들 각자의 이름이 적힌 결과지를 나누어 주며, '검사 결과가 자신의 실제 성격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답하게 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학생들은 검사결과가 자신의 성격과 '매우 일치'한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포러가 학생들에게 나눠준 결과지에는 모두 동일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바넘의 성격 맞추기 마술과 포러의 성격 진단 실험에는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타인의 성격을 애매하고 일반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점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때로는 활달하지만 때로는 소심한 성격이라는 식의 모호한 평가를 내렸다.

▲ (사진 출처 = SBS 스페셜)

포러의 답변지는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성격을 기술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답변지를 받은 피실험자들은 이 결과를 자신의 입장에 맞춰 해석하며, 자신의 성격이 잘 분석된 결과란 평가를 내렸다.

포러의 실험은 우리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 맞춰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포러는 실험 후 '사람들이 막연하고 일반적인 성격 묘사가 다른 어떠한 사람에게도 맞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들 자신에게 유일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바넘효과' 혹은 '포러효과'라고 명명했다.

한 동안 우리 사회에서 혈액형별 성격론이 유행했다. A형은 생각이 많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소심한 성격이라거나 B형은 예의가 없고 제멋대로란 식의 성격론이 그것이다. 이 역시도 바넘효과 혹은 포러효과에 해당한다. 누구나 타인을 의식하며 소심하게 구는 때가 있고 예의 없고 제멋대로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데, 이러한 막연하고 일반적인 성격묘사를 한 개인의 혈액형에 근거한 것이라 믿도록 하는 이유이다. A형이나 B형의 특징이라는 것도 살펴보면, 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성격의 한 단면을 막연하게 묘사한 것일 뿐이다.

▲ (사진 출처 = JTBC 신년토론회)

바넘효과는 혈액형별 성격 묘사와 같은 놀이에서만이 아니라 정치인의 언변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이들은 막연한 의미의 말로 자신의 입장이나 실수를 숨기고, 그것을 합리화한다. 어제 있었던 JTBC 뉴스룸 신년특집 토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막연한 말로 ‘4대강 문제’, ‘한일 일본군 성노예 문제 졸속 합의’, '개헌문제' 등에 대한 곤궁한 입장을 숨기려 했다. 물론 그의 막연한 말들이 시민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바넘의 마술쇼와는 달랐지만.

사람들이 즐기는 혈액형별, 별자리별 성격은 ‘놀이’다. 그 의미가 막연하든 명료하든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정치인의 발언이 그래서야 될까. 더구나 그 자신의 혹은 그가 소속된 정당의 문제들을 막연하고 의미 없는 말들로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데는 큰 문제가 있다. 정치는 ‘놀이’가 아닌 ‘현실’이며, 우리의 ‘현실’을 바꾸는 도구인 까닭이다. 정치인의 ‘바넘효과’, 그 막연한 말들이 안타깝고 염려스럽다. 막연한 말로 사람들을 속이려 든다면 정치인이 아닌 마술사 ‘바넘’이 되는 게 더 합당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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