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움직이련다. 행동하련다. 더 이상 내일은 없다"
우리는 모두 살 만큼 살았다.
60-70 세월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며 살았다. 허리가 휘어져도 “내 자식만은 공부할 수 있겠지” 살았다. 장딴지가 경직되고 어깨가 내려앉아도 “내 자식 입에는 밥이 술술 들어가겠지”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으련다. 너무도 오래 내일을 생각했고 너무도 오래 내일은 내일로 미뤄지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나이를 먹었고 그래서 더 이상 내일을 생각할 겨를도 힘도 없다. 우리는 살 만큼 살았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50 세월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며 살았다. 온갖 굴욕을 참으며 얄팍한 봉급을 받았다. 그래야 처자식의 내일이 보장된다고 생각했다. 고통스런 내일은 내일로 이어졌다. 오늘이 고통스럽기에 내일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라도 정년은 채우련다. 아직은 손가락 힘이 조금은 남아 있으니 밀어내도 밀리지 않으련다. 책상다리라도 붙잡고 견디련다. 오늘의 노력을 오늘 하련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거의 반 80을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며 살았다. 월세에 사글세에 주공임대주택이라도 구하려고 우리는 오늘을 견뎌왔다. 발이 닳도록 뛰고 헬멧을 눌러쓰고 역주행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별로 먹이는 것도 없는데 아들딸은 무럭무럭 커가고 각방을 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어서 마지막 젖 빨던 힘을 내 보았다. 내일을 생각하며. 하지만 더 이상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오늘 행동하련다.
꺾어진 60인 우리에게도 내일은 없다. ‘88만원 세대’가 ‘77만원 세대’로 이름을 갈기 직전인 오늘, 우리에게 내일은 더 이상 없다.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우리도 웬만큼은 안다. 지금까지처럼 한다면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까지처럼 조금 더 하더라도 ‘부모님 내의를 사 드릴 일’은 결코 안 생긴다는 것을. 비싼 등록금을 오랜 세월 지불한 뒤 우리는 너무도 늦게 이를 알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오늘 행동하련다.
내일모레 반 40을 코앞에 둔 우리에게도 내일은 마찬가지로 없다. 외고에 자사고에, 보충수업에 영수학원에, 바이얼린 교습소에. 아침은 굶고 점심은 급식, 저녁은 편의점 컵라면으로 때우고 밤 12시 집에 들어와 밀린 숙제를 하고 차수가 변경된 새벽에 비몽사몽 헤매더라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어머니의 통곡과 아버지의 긴 한숨을 뒤로 하고 우리는 오늘 당장 행동하련다,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만화책 좀 보자. 축구 좀 하자. 제발 좀 놀자.
해가 바뀌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우리는 안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으니까.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우리는 안다. 지난 번에도 그랬고 지지난 번에도 그랬으니까. 금석맹약은 이행되지 않았다. 진득하게 기다려 달라는 말만 휴지조각처럼 바람에 날릴 뿐. 변명과 핑계는 난무했다. 이런 조건이 만들어지면, 저런 계기가 오면. 여러 번 겪었기에 기대가 체념으로 바뀌는 순간도 전혀 낯설지는 않다,
새해 첫 날, 엄동설한에 북풍한설이 몰아친다. 반짝 햇볕에 고드름이 머리를 때려 우리의 잠을 깨운다. 어느 한 순간 촛불은 위대했지만 세상은 언제 그랬나는 듯 옛날로 되돌아가고 있다. 한반도는 여전히 위기상황이고 트럼프는 다 낡은 무기를 사 가라 여전히 을러대고 갑질은 여전히 계속되고 우리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 이번에는 저 역사의 쓰레기통에 일찌감치 처박힌 저들의 구린 입에서 너무도 일찍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저러는 저네들이 무서워 오랜 세월 그래왔듯 또 한 번 전전긍긍하며 하루를 보낸다.
새해, 우리는 소망한다, 우리에게 금지된 것을.
새해. 우리는 소망한다.
손주들에게 과자값 한두 푼 주고.
가끔은 이미자 콘서트에도 가고.
새해. 우리는 소망한다.
정년이 보장되고.
연장근로 없는 저녁을 맞고.
새해 우리는 소망한다.
내 집에서 웃으며 출근하고
내 집으로 퇴근하고
가끔은 영화도 보고.
새해 우리는 소망한다.
각자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고
가끔은 야구장에도 가고
그러려면 지금 행동해야 한다.
새해에는 행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