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좌천 문화거리 사업이 완료되면 가좌동은 어떻게 변할까"

어둡다. 동지 지나고 낮이 아주 조금 길어지긴 했지만 오후 6시쯤이면 해는 꼴까닥 넘어가고 사방이 어둠에 묻히는 시간이다. 진주시 가좌동 경상대 북문 인근 동네는 어두웠다. 가로등이 온힘을 다하여 어둠 입자를 몰아내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가로등은 우군을 더 불러모아야 했다. 하지만 언감생심.

가좌동은 경상대, 연암공대 학생들의 자취방, 하숙방이 밀집한 동네다. 밥집도 있고 술집도 있고 당구장, 오락실도 있지만 이 동네를 일러 하숙촌이라 해도 될 것이다. 1986년 대학에 입학한 나에게 이 동네는 술 마신 뒤 친구들, 후배들 자취방에서 얇은 이불 뒤집어쓰고 밤새 노닥거리던 추억이 서린 곳이다.

그때 집들은 1층 아니면 2층이었고 간혹 3층짜리 으리으리한 집도 있었다. 대개 1층엔 주인이 살고 2층, 3층은 학생들의 자취방으로 세를 주었다. 깐깐한 집주인은 여학생 자취방과 남학생 자취방을 엄격히 구분해 놓고 남녀가 섞여 노는 것을 끔찍하게 꺼렸다. 1층에도 방 한두 개를 세 놓고 하숙을 치기도 했다. 거기서 밥을 해 먹고 사 먹던 학생들이 졸업하고 나면 다시 새내기를 받아들이는 순환 구조가 정착했었다.

이 동네 밥집에 가 보면, 그때 무슨 과 누구누구가 '월식'하다가 어느날 소리소문 없이 야반도주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주인이 있다. 또는 그래놓고 몇 해가 지난 뒤에 죄송하다며 두툼한 봉투를 들고 와서 갚고 가는 녀석도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자기 집에서 밥 먹던 학생들이 졸업할 때 대기업에 취업하고 공무원도 되었다는 이야기를 마치 자기 아들 자랑하듯 한다. 1980년대에는 최루탄 가스를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넌덜머리가 난다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들이켜다 보면 지나간 옛일이라는 게 그렇고 그렇구나 여겨지게 된다.

‘빛소리’, ‘호밀 밭의 파수꾼’ 이런 이름의 술집이 있었다. ‘빛소리’는 운동권 학생들의 아지트 비슷한 지하 막걸리 집이었다. 요즘은 수십년 동안 가게를 이어가고 있는 밥집도 적잖이 있지만 가맹점(프랜차이즈) 들이 눈에 더 많이 띈다. 좁은 골목 모퉁이엔 낯선 가게들이 들어섰다가 문을 닫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방학이 문제다. 대학의 방학은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2월말까지 이어진다. 여름방학은 6월 중순부터 8월말까지다. 열두 달 가운데 방학이 다섯 달이다. 방학이 되면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간다. 학생들이 떠난 하숙촌은 을씨년스럽다. 그 학생들을 바라보며 장사하던 집들은 그 고비를 넘기기 힘들다.

몇몇 집은 그나마 저녁 밥손님, 술손님이 밥상 한두 개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텅 빈 식당 안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우두커니 앉은 모습이 더 많다. 아예 불조차 켜지 않은 밥집 술집도 쌨고 내려진 셔터 문에 ‘임대’라고 안내해 놓은 곳도 아주 많다. 떠나버린 연인을 기다리는 심정도 아니고 집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어버이의 심정도 아니고, 하소연할 데 없는 난감하고 억울하고 막막한 처지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가좌동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1층 또는 2층이던 하숙집들은 허물어졌다. 그 자리에 4층, 5층짜리 고급 ‘빌’들이 들어섰다. ‘빌’들은 자취방 여남은 개를 안고 있다. 자그마한 방에 한 명이 자는지 두 명이 자는지 모르겠다. ‘빌’들도 지금은 떠나버린 학생들의 채취를 그리워하며 내년 새학기에 찾아올 학생을 기다리고 있다.

세입자 구함, 빈방, 싼방, 직통 임대, 원룸 풀옵션, 원룸 투룸 임대, 정남향 풀옵션, 임대문의, 저렴한 방부터 좋은 방까지, 싸고 좋은 방, CCTVㆍ침대ㆍ세탁기ㆍ에어컨 등등, 租房, 방 구하세요? 이런 딱지가 온 동네에 천지삐까리로 붙어 있다. 과연 이런 방들은 내년 2월말쯤 모두 새 주인을 만날 수 있을까. 과연 이런 방들의 주인은 겨울방학, 여름방학 다섯 달 동안 방세 수익을 올리지 못하여도 파산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2층, 3층으로 된 집들은 옥상에 가건물을 지어 올렸다. 불법인지 탈법인지 위법인지 합법인지 알 수 없다. 다만 1, 2, 3층에 세들지 못하는 학생들이 옥탑방에라도 둥지를 틀고 들어가 노트북을 켜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학창시절의 추억을 쌓아올리게 될 것이다. 다닥다닥 붙은 ‘빌’들과 오래된 하숙집들은 서로 경쟁하듯 방을 단장하고 시기하듯 풀옵션 카드를 들이밀고 있다.

높은 건물 뒤쪽 담벼락엔 에어컨 실외기가 줄지어 붙어 있고, 어떤 건물 앞에는 자전거가 일렬 횡대로 나란히 서 있다. 좁다랗고 어두운 골목으로도 자동차는 오고가고 연인들은 팔짱을 끼고 웃으며 지나간다.

다시 봄이 찾아와 파릇파릇한 새내기들이 들어차고 군대 갔던 헌내기들이 복학하면 빌들은 방마다 불을 켤 것이다. 임대 내놨던 가게들도 새 주인이 새로운 안줏거리로 문을 열 것이다. 하숙집, 자취집에서 비춰주는 불빛과 밥집, 술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들이 모여 가로등을 응원하면 이 거리는 좀 밝아질까.

마침 경상대와 진주시, 가좌천문화거리추진위원회는 이 동네 옆을 흐르는 가좌천을 주목하여 이른바 특색 있는 공원으로 조성한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공연무대, 전시공간, 취미활동구간, 벼룩시장구역 등으로 꾸며 인근 주민들이 찾아오고, 진주시민이 찾아오고, 멀리 가까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하겠단다.

언론 보도를 보면, “가좌천문화거리 조성사업은 진주시 가좌동 가좌천변(개양오거리~경상대학교 정문) 1만 4000㎡(길이 700m×너비 20m)의 면적에 공연 무대, 전시 공간, 취미 활동 구간(그림ㆍ사진 등), 벼룩시장 구역 등 공간별 특색있는 공원을 조성하고 조명 터널, 독특한 디자인의 가로등, 수목 장식물, 스토리텔링 포토존 등 볼거리를 제공하는 사업이다.”라고 소개했다.

또한 “특히 2020년 설립 예정인 경상대학교 스포츠 콤플렉스와 연계하여 새로운 대학문화를 형성하고 청년 예술가들에게 공연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소통과 문화욕구 충족의 공간으로 형성하여 특색 있는 관광자원을 창출함으로써 경상대학교 후문 옛 대학가와 정문 상권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썼다.

가좌천 문화거리 사업이 완료되면 학생들은 방학이 되어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그 학생들을 바라보며 밥벌이를 하던 밥집, 술집, 당구장, 꽃집, 복덕방, 커피집, 닭집 사장들과 하숙집, 자취집 주인들은 가좌천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인정과 웃음과 추억을 팔면서 따뜻한 생계를 넉넉히 이어갈 수 있을까. 마땅한 공연장소를 찾지 못하던 젊은 예술가들은 가좌천에서 자신의 기량을 뽐내며 예술가로 성장해 갈 수 있을까. 그리하여 가좌천을 앞에 둔 경상대 후문 동네도 따뜻하고 밝은 햇살이 잘 드는 양지로 변화해 갈 수 있을까.

이 동네에 사는 주민들은, 이 동네를 거쳐 갈 학생들은 이 동네를 어떻게 기억할까. 가좌동 대숲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맞으며 골목골목을 걸어보는 심정은, 겨울바람만큼이나 차갑고 꺼진 가로등만큼이나 어둡고 육중하게 들어선 ‘빌’의 무게만큼이나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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