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은 나라를 송두리째 바꿀 근본적 개혁법이다."

경찰과 기자, 교사가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밥값은 누가 냈을까?

시쳇말로 ‘아재 개그’ 티가 나는 이 퀴즈는 나름 반전의 순간이 기름지다. 하지만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씁쓸함을 담고 있는 물음이다. 그 우스개의 이면에는 공동체를 건사해 나가는 주요기관인 치안과 언론과 교육의 종사자를 바라보는 소시민의 시선이 들어있다. 만연해 있지만 대놓고 떠들기 애매한 이야기는 그렇게 은유의 타래를 감다가 잘 깎인 수수께끼로 태어나는 것이다. 물론 이 퀴즈는 지금 세태에는 볼 수 없는 아주 오래된 농담이다. 그리고 이미 아시겠지만 밥값은 ‘식당 주인’이 냈단다.

진주경찰서 앞에 올망졸망 밝은 색깔의 점포들이 들어선 것이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대서방 두엇과 인쇄소가 댓 발자국 걸음 떨어져 있었던 70~80년대 이후에도 점포명색 옳은 것이 들어선 적은 없었다. 상업 인구나 업종의 수효가 미미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오가는 사람이 적은 탓이었다. 오랜 시절 동안 경찰서는 지은 죄 없을지라도 그 앞을 지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을 주는 곳이었다.

일제가 남긴 ‘순사’의 잔재는 군부독재 시절까지 ‘고문’이란 멍에를 뒤집어쓴 채 이어졌다. 국가의 이름으로 공공연히 사람을 두들겨 패는 짓은 갑오개혁 때에 이미 폐했다. 그러나 일제는 지네들 나라에서 폐지된 ‘태형’을 식민지 조선으로 끌어와 유지하며 그 적용대상도 조선인에 한했다. “사리를 모르고 생활 정도가 낮은 자에 있어 감옥에의 구금은 아무런 고통이 되지 않으며 외려 죄의식이 무딘 자에게는 강렬한 고통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선 놈과 명태는 두드려 패야 한다”는 것이 그놈들이 떠벌인 강변이었다.

▲ 홍창신 자유기고가

매질의 도구로 대나무는 쉽게 부러진다 하여 소의 음경을 말려 만든 이른바 ‘쇠좆매’를 사용했는데 그게 지독했다. 매 끝에 납을 달아 발가벗긴 엉덩이를 치면 납이 살 속에 파고들어 가 살점이 떨어지니 제 발로 걸어서는 못 나왔다 한다. 집 앞 청소 게을리했다고 10대, 웃통 벗고 일했다고 10대, 도살 허가 없이 개를 잡았다고 40대를 쳤다고 한다. 어느 곳에서 어떤 트집이 잡혀 끌려가 매를 맞을 것인지 불안에 떨게 되었고 “순사 온다”라는 말이 어린애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공포의 용어로 사용된 것이 이때부터란다.

일제의 잔재는 그대로 해방 정부에 들어차 자리 잡았다. 악습은 나쁜 위정자의 비호 아래 이어져 내려오고 그들에 대한 두려움은 돈으로 치환되어 거래됐다.

그 파리한 경찰서를 제집 드나들 듯 오가는 것이 기자더라. 중앙의 권부 언저리에는 이른바 메이저 언론이 정치 맛 톡톡히 들여 그 놀음에 빠져 있고 소읍 관공서 언저리서는 눈먼 돈의 용처를 두고 벌이는 기자와 관리의 협잡이 눈부셨다. 지방 정부의 청사 내에 기자실이라 붙인 방 하나를 얻어 어울려 고스톱이나 놀면서 고시 공고 등의 관급 광고를 배당받아 상부상조의 호혜를 누린다. 밥맛 그럴듯 하다 이름난 식당 문을 나서는 개기름 번들거리는 토호 곁에 이쑤시개 물고 나서는 자 중에는 어김없이 그들이 있다. 혈연 학연이 종횡으로 얽힌 것이 시골 저자의 풍토라 그들의 카르텔은 돌아앉아 알량하다 수군거릴 뿐 함락이 만만찮은 권력의 아성인 것이다.

그들의 바깥 권세가 제 아무리 높다 하나 자식 이기는 부모명색 또한 귀한 세태이니 하물며 그 자식의 성적을 쥐고 있는 선생 대접은 오죽하랴. 그러므로 이 나라 최고 학력의 지성 집단인 교사 또한 그들 소악패라 이를 만 한 권력자들에게 경외 받는 식사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그들, 나라의 들보와 뼈대가 기축으로 저질러진 부정과 부패는 미세한 정맥을 타고 반도의 전역에 만연된 묵은 병증이다. 자각증세마저 미미한 이 부패의 악습은 순진무구한 이 나라 갑남을녀 모두에 감염되어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 관행화된 이 망국적 고질병을 퇴치할 단방약으로 처방된 김영란법은 나라를 송두리째 바꿀 근본적 개혁법이다. 입법 당시의 시비를 딛고 이제 성공적 착근의 전망이 보인다. 개정에 관한 논란이 있으나 그만한 저항쯤이야 오감타. 권익위원회의 권고안을 보니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김영란법은 이 나라가 누추함을 씻을 반전의 카드다. 나는 이 법을 천지개벽법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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