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스플레인은 인권의 문제이다"

올해 뜨거운 이슈가 되며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린 말 중에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있다.

‘맨스플레인(mansplain)'은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를 결합시킨 조어로, ‘남성이 여성을 기본적으로 뭔가 모르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 붓는 태도’를 말한다. 이런 태도는 기본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무지할 것이라는 편견에 기대어 발생한다.

'맨스플레인'은 2000년대 초반부터 영미권 SNS에서 떠돌던 신조어였고, 2014년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라는 책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큰 공감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맨스플레인'은 여성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침묵을 강요당하던 상황을 매우 적절하게 포착한 용어였고,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에 환호했다. '맨스플레인'은 <뉴욕 타임스>의 2010년 올해의 단어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 2014년에는 온라인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되었다.

▲ 이장원 자유기고가

자기가 '남성'이란 이유만으로 여자 앞에서 말할 때 유독 자신감을 보이는 남자들이 분명 있다. 심지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든 과시하기 위해 계속해서 말한다는 것이 맨스플레인의 핵심이다.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인상적인 에피소드로 서두를 연다.

2008년 솔닛이 참석한 파티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났던 날의 일이다. 남자는 솔닛이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자, 거만한 태도로 최근 자신이 접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시종일관 솔닛의 말을 중간에 끊으면서 오직 자신의 의견이 더 낫다는 듯이 말을 이어 나간다. 그러다가 솔닛과 동행한 친구의 한 마디에 남자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게 바로 이 친구 책이라고요."

얼마나 자신의 설명에 도취된 상태였으면 그 남자는 솔닛의 친구가 '네 번이나' 거듭 얘기를 하고서야 정신을 차렸다고 적혀 있다. 정작 그는 책을 제대로 읽은 것도 아니었고 그저 <뉴욕 타임스>에 실린 북 리뷰를 읽은 것뿐이었다.

이런 일화는 여성들에게는 너무나 자주 겪어서 지긋지긋하고 괴로울 만큼 낯익은 경험담이다. "도움이 필요하다"거나 "네 의견이 궁금하다"고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거들먹거리며 “오빠가 설명해 줄게”라며 나서는 남성들.

리베카 솔닛은 말한다.

“남자들은 아직도 나를 자꾸 가르치려 든다. 그리고 내가 알고 그들은 모르는 일에 대해서 내게 잘못된 설명을 늘어놓은 데 대해 사과한 남자는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다.”

‘맨스플레인’의 핵심은 ‘거들먹거리거나 잘난 체하며’이다. 솔닛은 여성인 상대방은 (당연히) 해당 주제에 대해서 무지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상대방의 존재를 무시하는 이 한순간의 태도가 사회에 널리 퍼진 여성 혐오와 비하,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맞닿게 됨을 드러낸다.

여자라면 누구나 숱하게 겪어 본 일상의 맨스플레인 유형 코미디를 그동안 많은 여자들은 귀찮아하면서도 적당히 감수해 주었다. 그런데 솔닛은 거기에서 비탈길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여자들은 뭘 몰라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여자는 생각이 없고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발전되고, 여자는 남자 마음대로 해도 되고 여자가 내 뜻대로 안 움직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응징하는 변태적 합리화로 굴러 떨어지기 쉽다는 것, 끔찍한 여성 혐오의 징후가 사실은 이런 일상적인 행태로 드러난다는 것. 이 점을 솔닛은 명징하게 일깨워 준다.

'맨스플레인'이 단순히 대화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남녀 성 대결 차원의 사안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라는 일깨움.

리베카 솔닛의 표현처럼, '맨스플레인'에 담긴 현상은 "당신의 일이고, 나의 일이고, 우리 모두의 일"인 셈이다.

주의하는 것은 불편하다. 그러나 신호등을 주의할 때 우리는 보다 안전해진다.

상대에게 하는 말을 주의할 때 우리는 보다 친밀해질 수 있다. 여성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에 주의할 때 우리는 더 가까이에서 손을 잡을 수 있다.

일상에서 주의해야 할 일이 점점 늘어나는 만큼 불편하고 불온해지겠지만 그것이야말로 깨어 있는 삶이자 우리가 더 성장하는 길이기도 하다.

상대의 불편함을 들어 주고 상대를 평등한 선상에 자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결코 기득권(남성들)의 자리를 잃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성들이 온전히 지고 있던 많은 짐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는 길이자 진정한 삶의 파트너를 얻게 되는 일이다.

그래요, 남성들이여,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남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남성의 언어’로 설명하려고 하지 말아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공통의 언어로 서로의 이야기를 말하고 들어 주기로 해요. 사람들이 각자의 희망과 꿈과 욕구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 그 길을 함께 걸을 때 우리 모두가 차별받지 않는/ 경계가 없는/ 차이를 존중하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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